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TV 매체에서도 은근히 많이 소개된 책이다. 모리슈워츠 교수와 그의 제자 미치앨봄이 나온다. 모리교수는 임종을 앞둔 3개월전 모리교수는 매주 화요일 마다 제자 미치를 만나 나눈대화가 있다. 온몸이 굳어가는 희귀한 루게릭 병에걸린 모리교수는 제자 미치에게 사랑을 어떤것인가 등 여러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책을 읽으면 우기가 무심코 지나친일을 되돌아 보게되고, 삶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준다. 모리교수는 인생안에서 모든것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현실에 쫒기며 이기적으로 각박하게 산다. 그래서 모리교수의 교후이 마음에 새겨진다. 모든것을 사랑하라는 교훈은 바쁜 현대생활을 살면서 자주 되새겨야 하는 가르침이다.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용서하라는 말이다. 나와 타인을 용서하라... 이것도 사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모두를 용서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리교수의 교훈을 들으면 정말 반성하게 된다. 우리에겐 정말 용서가 필요하다. 각박한 사회에서 내앞가림 만 하는 일을 용서하고 이제부터 모두 용서하여서, 사랑을 점차 키워야 할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소설에서는 '손님'이라 칭한다. 당시 '손님'이란 마마병으로 무서운병을 칭했던 말인데, 아마 6.25 전후에는 기독교와 맑스주의가 '손님'같은 존재였을것이다. 이 소설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소설은 기독교와 맑스주의에 대한 내용으로 당시 황해도에서 벌어졌던 양민학살의 내용을 주제로 하고있다. 이 사건은 처참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의 비극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런 비극을 제대로 전달을 못하는것 같아 아쉽다. 소설 전개방식도 특이한데, 전개는 양파까듯이 점점 사건에 접근해서 결국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데 왠지 이런 전개방식은 추리소설에나 있을법한 방식인데, 솔직히 이런 소설에서는 안 어울리는 방식이다. 또한 주인공이 보이는 환영들은 사건의 당사자들이여서 그들의 회고를 들어보면 사건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수있지만, 누가 말하지는지도 헷갈리고 이북사투리 또한 알아듣기 힘든 말이 있어 사건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작가가 이 왜 이런방식으로 양민학살사건을 소설에 등장시켰는지 모른다. 이 소설에 나오는 회고적인 방식보다는 그 당시 사건을 1인칭 또는 3인칭으로 전개했으면 더욱 처참하고, 비극적으로 느껴졋을것을 같고, 더욱 가슴에 와닿았을것 같았는데, 작가는 정말 어려운 방식을 고집한것 같다. 또한 책을 읽어보면 기독교와 맑스주의가 왜 격돌하게 됐는지도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 독자로서는 혼란스럽고, 작가는 마땅히 기독교와 맑스주의에 대해 그 당시의 이해관계와 6.25 전후의 상황을 설명했어야 한다. 단지 이 소설은 양민학살사건의 전모만 밝히려 들었지 기독교와 맑스주의의 이해관계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나와있지 않아, 나로서는 혼란스러웠다. 황석영이라는 대작가를 보고 작품을 선택했는데, 왠지 비극적이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민족적인 사건을 겉핥기 식으로 알게되어 기분이 씁쓸하고 찝찝하다. 아쉬울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외수 지음 / 동문선 / 1996년 2월
평점 :
절판


이외수님의 작품은 <벽오금학도>를 시작하여, 최근에는 <괴물>을 읽었다. 솔직히 <벽오금학도>는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는데,<괴물>은 정말 기대이하 였다. <괴물>을 읽은 내가 <칼>을 읽은 이유는 <괴물>에 대한 허무감을 빨리 없애기 위함이었다. 역시 그 허무감을 없애기에는 딱이었다.

소설은 분명히 이외수의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중편이 아니면 긴 단편을 읽는 느낌이었다. 상당히 무겁지 않고, 도(道)에 관련된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산뜻하고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 느낌이 이런만큼 하루만에 책을 읽을수 있었는데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학원가는 시간도 늦을뻔 했다. 그때마침 소설에서는 주인공 박정달이 노인을 죽이느냐, 내가 죽느냐 라는 갈등속에서 책을 덮어 학원에서는 머리속에 칼생각 밖에 들지않았다.

<괴물>에서 느끼는 무서움과는 다르다. 신검이 탄생하기 까지는 피를 먹어야 한다니... 섬뜩했다. 나는 주인공이 신검때문에 죽을때는 슬프기도 했고, 왠지 그 노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과연 피를먹인 신검은 어떻게 되었을까? 신검이 탄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왜 이럴까? 작가는 우리에게 세상의 존엄성을 밝혀주는 신검을 만들라는 부탁을 하는건가. 마음속에 신검이라도... 주인공 박정달의 칼에 대한 집념에 대해서는 본받을 만 하다. 이 시대의 존엄성과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잔인하고, 혹독한가. 소설에도 나오는 박정달이 폭행 당하는것은 아마 잔인하고도, 무서운 세상을 비판하는것이 아닐까? 책을 덮은뒤 다른책이 읽히지도 않고, 머리속에는 칼생각 밖에 없었다. 책 마지막의 암호는 정말 작가의 상상력을 폭발직전까지 몰아가는데, 아마 그 암호는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것이다. 지금이라도 마음속에 신검을 만들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 정벌기 1
안병도 지음 / 명상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역사소설 좋아하는 사람치고, 아니 한국사람 치고 구국영웅 이순신이 일본으로 쳐들어간다는 소설 싫어할 사람 어디있겠는가.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관심은 가질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제까지 이런 상상을 해보았을까? 단순히 여러 소문을 종합해 이순신은 원래 싸우다가 죽은것이 아니라는 이런 소문정도만 간신히 귀뜸으로 주서먹기식으로 알뿐.

이 소설은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이 마지막 싸움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서 천명(天命)을 받고, 광해군과 유성룡이 계획한 일본정벌을 정왜사(征倭使)라는 직책을 받고 일본으로 쳐들어간다. 그리고 항왜 김충선과, 홍의장군 곽재우, 그리고 김응서 까지 임진왜란때 활약한 장수들도 출전한다. 하지만 왠지 어설프다는 느낌이 든다. 과연 선조가 살아있는 이순신을 살려두었을까? 과연 유성룡이 일본정벌을 내세울만큼 입지가 단단했을까? 선조가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광해군의 의견을 따랐을까? 과연 이순신의 성격으로 일본으로 쳐들어 갈수 있을까? 그는 매사 신중하고 전쟁중에도 항상 신중하여 심하게는 욕마저 듣는 장수였다. 그런그가 무모하게 여겨질 일본정벌을 단순히 천명이라해도 일본으로 쳐들어 갈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또한 임진왜란때 활약한 장수들을 의심이 많던 선조가 기용했을지도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런 어설픔은 이 내용이 정사의 내용이 아니라 그거 작가의 논픽션이 아닌 픽션이어서 눈감을만 하고, 소설을 즐기면 되는것이리라.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감탄한것은 작가의 탄탄한 구성이다. 정말 실제로 있었던 전쟁인것 처럼 인물,배경,전쟁상황,군제편성등 치밀하고도 정확하게 작가는 세심한 배려까지 아끼지 않고 진짜처럼 느껴지는 소설을 썼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역사소설에서 으레 있을법한 지도한장 없이 전쟁상황을 실제로 느낄수있는것은 한계가 있다. 이건 정말 안타까운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책 제목 '일본정벌기'보다는 '왜국정벌기'라는 표현이 더욱 맞지 않을까 한다.

나는 도덕시간이나 국사시간에 배웠듯이, 우리민족은 남을 한번도 침략하지 않는 평화로운 민족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건 자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약하다는 우리민족을 좋은쪽으로 이끌려는것 같았다. 이런 내가 조선이 일본으로 쳐들어간다는 사실은 통쾌한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책의 흡입력은 하루에 한권씩 독파할정도로 놀라웠고, 내가 일본땅에 서있어 병사들을 지휘하는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난뒤 먼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과연 이책이 우리지금 이시대의 말하려는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비꼬는 객기에 지나지 않단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의 가야금
고사카 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인북스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김충선. 나에게는 적지않은 충격이었다. 임진왜란중에 항복한 왜인들이 있었다는것도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과연 그들은 자기 나라를 버리고 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선택하였는가. 그리고 그들의 활약은.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알고난 부터 이 궁금증이 풀리지 않을즘- 바다의 가야금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기는 마고이치로의 철포대시절부터 시작된다. 마고이치로는 김충선의 일본이름으로 당시 이름을 떨쳤던 유명한 철포대장이었다. 그렇게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에서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도 않고 철포로 명성을 떨쳤던 철포대의 이야기. 정말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얘기였다. 결국 철포대는 노부가나와 히데요시에게 차례로 항복한다. 히데요시의 야욕으로 그래서 임진왜란에 선봉장으로 마고이치로는 출전한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은 내내 실망을 감출수 없었다. 물론 일본 철포대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궁금했던것은 그 항왜들의 얘기였다. 왜 그들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귀화했고, 어떤 경로를 거쳐 들어왔나 등등... 책에서는 너무 조금밖에 언급이 안되었다. 책들이 모두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것은 아니지만, 내용의 90%는 거의 철포대의 활약과 나머지 10%는 조선에서의 이야기가 나왔다. 꼭 기본 철포대라는 이야기에 김충선이라는 항왜의 이야기를 엉성하게 뒤에 끼어맞춘것 같은 독자를 우롱하는 것때문에 실망감이 든다. 시바료타로라는 작가를 믿었지만,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이다. 김충선이라는 인물을 자세히 없다는 그런 허무감과 실망이 차례로 밀려오면서 혼란스러웠다. 김충선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알때는 언제일까? 아쉽다. 그를 정령으로 알때는 언제인간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