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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나이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A.J. 퀸넬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 아래 서평은 이 새로운 판의 책이 알라딘에 올라오기 전에 써서 2004. 9.26 구판인 책의 서평에 올려두었던 글입니다만, 이제 새로운 판의 서평으로 옮깁니다. 추천해주신 분이 있었는데 혹 옮기는 과정에서 추천 사실이 삭제되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9월 24일(금) 조선일보 영화면에 실린 기사이다.
“극장가 ‘검은 영웅’들의 맞대결
'크지만 슬픈 곰' 덴젤 워싱턴 VS '섹시한 흑진주' 할 베리
2002년 아카데미의 영광이 과연 2004년 추석의 한국 극장가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까. 그 해 나란히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검은 영웅’,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과 할 베리(Halle Berry)가 맞대결한다. 역할은 ‘보디가드’와 ‘고양이 여인’. 같은 날(24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맨 온 파이어(Man on Fire)’와 ‘캣우먼(Catwoman)’의 주역이다.
‘맨 온 파이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삶의 의미였던 아홉 살 소녀를 잃은 한 보디가드의 복수극. 전 CIA의 암살전문 요원이 과거를 후회하며 알코올에 젖어 살다가 9세 소녀 피타의 보디가드를 맡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탁한 영혼을 ‘세탁’하던 이 소녀가 눈 앞에서 납치·유괴되고, 덴젤 워싱턴은 복수에 나선다. 2년 전 영화 ‘아이 엠 샘’을 통해 ‘연기 신동’이란 별명을 얻었던 다코타 패닝이 피타 역을 맡았다.
토니 스콧 감독의 연출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강렬하면서도 개성적인 액션 장면들이 ‘열혈 액션관객’들의 피를 더욱 덥힐 것 같다. 유괴와 납치가 일상 풍경이 되어버린 멕시코를 거친 질감으로 스크린에 담아내면서, 덴젤 워싱턴이 호흡 빠른 연기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반백에 이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온몸을 던지며 액션 연기들을 소화해 냈다. 소녀를 향한 미묘한 감정의 떨림은 액션을 ‘혐오’하는 감성 관객의 피도 함께 데운다.
피타는 자신의 보디가드에게 “크지만 슬픈 곰”이라는 맞춤한 표현을 붙여줬다. 관객은 이 ‘슬픈 곰’을 통해 ‘부정(父情)’과 ‘우정(友情)’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그냥 평범한 추석 대목 영화 소개 기사라 스쳐 지나가려는 필자의 눈에 “맨 온 파이어(Man on Fire)”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혹시, 20여년 전 필자가 군대 생활을 할 때 시간 때우려 시작했다가 빠져들어 정신 없이 읽어 치웠던 대중 스릴러(thriller), 그 ‘Man on Fire”? 7,8년 뒤인 80년대 말, 당시 우리나라 추리문학계의 정상으로 꼽히던 “여명의 눈동자”의 작가 김성종 선정 세계추리소설선집에서, “불타는 사나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다시 읽어 봤던 바로 그 소설? (역자는 이종인 씨로 추리문학사의 세계추리소설선집이었고, 필자가 원본으로 읽었던 것 보다 약간 뒤인 1983. 6 나온 이 번역본은 그 뒤에도 재출간된 적이 있다.)
그런데 내용이 약간 달랐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소설 주인공 크리시(Creasey)는 외인 부대 출신의 미국인, 무대는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였는데, 위의 신문 소개에 의하면 “CIA 비밀요원” 출신이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바뀐 것 같다. 이번 영화는 핵 잠수함 내에서의 독수리파(Gene Hackman)와 비둘기파의 갈등을 보여주었던 1995년 영화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의 감독 토니 스콧(Tonny Scott)과 비둘기파 주연 배우였던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이 다시 뭉친 영화. 그런데 “크림슨 타이드(선홍빛 파도)”란 말은 미국 앨라배마 대학교의 스포츠 팀 명칭(Alabama Crimson Tide)에서 나왔는데(앨라배마주가 접하고 있는 멕시코 만의 석양빛을 받은 파도 색깔이자 앨라배마 대학의 학교 색깔), 주인공(?) 핵 잠수함 이름이 USS Alabama였던 것이다. 궁금한 마음에 약간의 웹 서칭(web searching)을 통해 추가로 알아낸 사실은 다음과 같다.
80년대 초 미국의 A. J. Quinnell이란 작가에 의해 쓰여진 이 소설은, 1987년 프랑스, 이탈리아 합동팀에 의해서 이미 1차로 영화화된 바 있었으며(Elie Cholaraqui 감독), 소설은 그 후 시리즈로 나오면서 계속 인기를 끌었고, 2004년 4월 지금 이 영화의 미국 개봉에 맞추어 재발간 되어 있다(A.J. Quinnell, Man on Fire, Avon Books, 2004.3, mass market paperback, 384 페이지, U$7.50).
한편 국내에서도 역시 이 영화 개봉에 맞춰 번역판이 다시 나왔는데, 서지 정보가 없어 종전 번역본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복간으로 보인다(불타는 사나이, 이종인 역, 시공사, 2004. 9, 9,000원.) 이 새로 나온 판은 아직 알라딘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할 수 없이 그 전판인 이 "크리시 1"이란 품절된 책의 서평에 올리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런데 영화 제목을 “맨 온 파이어”라고 해버리면, 이 번역본은 영화 덕 보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소설 쪽에서 제목 "불타는 사나이"를 "크리시 1"로 고친 것과 비교하면 피장파장이라고 할 수 밖에. 위의 미국 복간이나 국내 복간이나 둘 다 표지 사진으로 금번 이 영화 포스터를 쓰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런 설명이 없는 점은 아쉽다.
한편 조사 중 이번에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계속 크리시 시리즈는 출간이 되었고 국내에서도 5권까지 전부 이종인씨 번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시공사가 복간하는 김에 5권 세트를 다 해주면 적어도 필자는 꼭 구입하련만.
호평을 받은 소설과 달리 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 못하다. 미국의 All Movie Guide란 사이트(www.allmovie.com) 평점은 별 두 개(다섯 개 만점). 이 영화가 개봉된 지난 4월 그리 주목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는 벌써 DVD로 출시되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추석 연휴에, 시간을 내어 이 영화를 볼 작정이다. 예전의 그 원작 소설과 번역본에서 받았던 감흥이 다시 일어날 것인가? 단, 이 영화나 원작 소설은, 그냥 대중적인 오락거리에 불과하니, 무언가 얻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분은 그냥 무시하시기 바란다. 보시고 욕 할지도 모르니까.
20여년 전 이런 종류의 소설을 처음 보고 흥미를 느낀 필자는 그 후 Techno-thriller 하면 떠 오르는, Tom Clancy나 Stephen Coonts 소설의 광적인 팬이 되어 번역본, 원본 할 것 없이 나오는 족족 구해다 읽고 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틈이 나면 필자의 "나의 서재"에서 다시 하겠다.
필자 가족은 한 시간 뒤인 새벽 3시경 귀성길에 오를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도 재미 있는 추석 보내시기를…
p.s. I don't want to be a spoiler, but... 소설 재밌게 읽으신 분은 절대 영화 보시지 말기를. 별 둘도 아깝습니다 (2004.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