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나와 있는 단어공부(vocabulary) 책 중에 “Word Smart I + II, 한국어판, 넥서스사전편찬위원회역, 도서출판 넥서스”란 것이 있다. 이 책을 처음 보면 영어를 꽤 한다고 생각하던 분이라도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모르는 단어에다가, 아니 이 단어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말이냐? 라고 묻고 싶어지는 단어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ballywho, subterfuge, germane, apoplexy, angst, invidious, conjugal... 이 책 표지에 쓰인 단어들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미국에서 백만 부나 팔릴 정도로 그렇게 유명하다는 책이? 이렇게 놀라는 분들은 책 표지와 맨 앞의 책 소개에 나와 있는 “SAT/TOEFL/GRE/GMAT를 준비하는 미국인들의 필독서”라는 부분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미국의 표준화된 시험(standardized test)를 준비하는 사람들 외에는 거의 필요가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표지의 말도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닌데, TOEFL 시험과 GMAT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일반적 참고 외에는 전혀 소용이 되지 않는다. TOEFL 시험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부 특정 주제(학문)에 관련되는 단어 외에는 사용되는 단어가 여기 있는 것들보다 훨씬 일반적, 보편적이며, GMAT에서는 아예 단어와 관련된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 단어들 몰라도 시험 치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으며, 이 책에서도 특정 학문에 관련된 단어는 어차피 나오지 않는다. 한편, SAT나 GRE 시험에서는 특이한 유형의 단어 문제가 꽤 출제되는데(analogy나 antonym이라고 이름 붙은 part를 비롯하여 단어 문제가 많이 나온다), 이 시험에서 그간 많이 나오던 단어, 또 그 비슷한 단어들 모은 것이 이 책이라서 이 두 가지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거의 필수적일 것이다. 하지만, 2005년 3월부터 SAT에서는 analogy 부분이 완전히 없어지는 만큼, 전부는 아니더라도(sentence completion part에도 단어 시험이 있다), 유용성이 많이 떨어질 것이다.

* 발음 문제:
GMAT는 “지맷”이라고 발음한다. ‘지엠에이티’가 아니다. 그래서 책 표지에 ‘GMAT를’이라고 한 것은 틀렸다. ‘GMAT을’이라고 해야 한다. 또TOEFL은 ‘토플’이라고 발음하지만, ‘SAT’은 ‘에스에이티’, GRE는 ‘지알이’라고 한 글자씩 읽는다. TOEFL, GMAT식 발음은 ‘acronym(두문자어)’에 해당하고, SAT, GRE는 ‘abbreviation(약어)’식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SAT의 예비 시험인 PSAT(preliminary SAT)은 또 ‘피샛’이라고 읽는다. 그런데, 왜 어떤 놈은 acronym이고 어떤 것은 abbreviation이냐 하는 것은, 엿장수 마음대로는 아니고, native speakers인 언중들의 집단적 습관 즉 발음 상의 usage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처음 약자를 도입하는 측의 의도도 작용하겠지만 결국은 어감이나 사용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원래 이 책을 낸 출판사인 미국의 Princeton Review는 전문적인 사전 출판사가 아니고, 입시 전문 학원 겸 교재 출판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사전류에서 보는 정확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또 미국은 저작권이 아주 엄격하기 때문에, 프린스턴 리뷰사가 시험에 잘 나오는 단어를 골랐다고 해도, 사전의 설명과 예문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다. 전부 나름대로 paraphrase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설명이 조잡한 부분도 많고, 예문도 정통 영어로는 알 수 없는 미국식 ‘반(半) slang’같은 것들이 마구 섞여 있다. 예를 들어 ‘abject’란 형용사와 유의어로 든 ‘utterly bummed out’ 같은 표현은 slang이라서 일상 생활에서는 들을 수 있겠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들을 수 없는데, 하물며 시험에 나오겠는가?

또, 'circumvent'란 단어를 예로 들어보자. 이 책에 의하면 "to frustrate as though by surrounding(완전히 포위된 것처럼 실패하게 만들다)"라고 되어 있다. 믿어지시는가? 미국 영어 사전인 American Heritage 사전이든, Merriam-Webster's이든, Macmillan 사전이든, 하다 못해 영한사전이라도 이렇게 해석해 놓은 사전은 없다. 이 단어의 뜻은 "1. 포위하다(to surround, enclose, trap), 2. 우회하다(to go around, bypass), 3. 재주껏 피하다(to avoid or get around by artful maneuvering)", 이 세 가지라서 어디에도 'frustrate(실망시키다)'라는 함의는 찾을 수 없다.  'around, circle'이라는 뜻의 라틴어 접두사(prefix) 'circum-'을 가진 다른 단어들, 예컨대, circumscribe(둘레에 선을 긋다, 외접하다; 제한하다)', "circumstance(상황)', 'circumlocution(완곡; 완곡한, 에두른 표현)' 등과 같은 족에 속한다.

이 책이 물론 일부 시험의 수험생들에게는 선택된 어휘(시험에 잘 나오는, 소위 유행하는 족보 단어들) 때문에 유용하겠지만, 시험을 끝낸 나중에라도 진짜 사전과 대조해 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어휘책으로 그만큼 내용이 충실하고 정확하다(“미국 대학으로 가는 SAT 전략노트, 최선기 외, 넥서스, 2003.9”, P.139)고 생각하면 큰 오해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글 번역본을 추천하고 있는데, 이 한글 번역에 또 문제가 많다. 독자들은 이 두 책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영어책의 저자나 역자가 개인이 아닌, 무슨 위원회니 편집부니 하는 것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저자일 경우는 책임 안 지겠다는 뜻이며, 역자일 경우에는 비싼 외국책 저작권료만 해도 수지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에, 알바나 동원하여 만들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한글 번역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고, 그 중 몇몇은 여기 서평에서 필자가 아주 혹평을 한, “우리가 배운 것은 영어가 아니다, 김윤근, 이채, 2004”라는 책에 나와 있기도 하다. 한 번 보자.

“Emmanuel abhorred having anvils dropped on his head.
엠마누엘은 귓속의 뼈가 머리를 두드리는 것을 아주 혐오한다.”
(Word Smart, p.20)

“선생: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해석을 해 놓으면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참……, 너희들 anvil이 뭔지 아냐?
학생: 음 사전에는, 모루대, 그리고 침골(귓속뼈)이라고 나왔는데요?
선생: 대장간이나 철공소에 쓰는 것 있잖아, 쇠를 놓고 두드리는 받침대 같은 것. 그게 쇠로 되어 있는데 굉장히 무겁거든. 너희들도 본 적이 있을 거야. 그 왜 “톰과 제리” 같은 만화영화에서 제리를 쫓아가던 톰이 머리에 띵 ~ 하고 맞으면 쓰러지는 것.
학생: 아! 봤어요. 그거 굉장히 아프겠던데. 톰이 그걸 맞고 기절하고 그래요.
선생: 그래, 맞아. 그러니까 이 말은 보통으로 싫어하는 것은 hate를 쓰고, 그 정도로 심하게, 끔찍하게 싫어하는 경우는 abhor를 쓴다는 말이란다. 더구나 그 모루대가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잖아? 그런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김윤근 위 책, p.23)

anvil의 두 뜻 중에서 ‘침골(砧骨)’( = incus)을 찾아내어 그럴 듯하게 끼워 맞춘 번역자도 우습지만, 그걸 다른 한 뜻인 ‘모루대’라고 주장하며 그 걸로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에 머리를 맞으면 많이 아프기 때문에 그만큼 싫어하는 꼴이 된다는 비판자도 가관이긴 마찬가지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Word Smart’ 책은 미국 현지에서 쓰이는 반 속어적인 표현이 많다고 했다. 이 말 역시 그런 속어적인 관용구로서 “갑자기 방해해서 끝나게 하다 또는 제거하다(To drop an anvil on something means to bring it to a sudden, unexpected but definite end or to remove completely)”라는 뜻이다. 즉, “엠마누엘은 중간에서 방해 받는 것(또는 빠지게 되는 것. 속어식으로 말하자면 '딴지 걸리는 것')을 혐오한다”고 해야 맞는 것이다(‘have + 목적어 + p.p.’이면 수동의 뜻). anvil을 머리(head)에 맞는다는 것은 "생각(idea, thinking), 하던 일(what he was doing or project)"을 중간에 방해 받아 망치게 된다는 것의 비유적인 표현.

이 말의 어원이 만화영화에서 나온 것은 우연히 맞지만, ‘톰과 제리’가 아니라 ‘로드런너(Roadrunner)’라는 데서 나왔다. 죽자고 도망치는 주인공 새 한 마리와 그걸 뒤쫓아 가며 anvil을 떨어뜨려 식사용으로 잡으려는 coyote 한 마리가 나오는, 그런 만화영화를 기억하실 분들이 혹시 있을 것이다. 여기서 비유적으로 위의 표현이 나온 것이다. 실제 anvil이 당신 머리 위로 떨어지느냐 그럼 얼마나 아프고 싫겠는가?(죽을지도 모른다) 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속어 중에 예기치 못한 사태를 당해 극히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쓰는 "총 맞았다"라는 표현이 있다. 아마 "have anvils dropped on one's head"라는 표현에 가장 근접한 우리 속어일 것 같다. "그는 총 맞는 것 진짜 싫어해"라는 표현이 "총 맞으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만큼 싫어한다"라는 뜻일 수 있을까?    

Am I dropping anvils on Nexus Publishing Co. or the other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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