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모국어(a native language)가 아닐 뿐더러 제2국어(a second language)도 될 수 없고, 단지 외국어(a foreign language)일 뿐입니다. 조기유학이나 이민 가서 '영어의 바다'에 빠질 형편이 아닌 사람은 할 수 없이 영어를 '외국어'로서 터득할 수 밖에 없습니다(이걸 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환경이라고 그럽니다). 우리가 우리 말을 터득할 때 문법 따져가며 배운 것이 아니듯이(나중에 학교 가서 잠깐 배우는 게 국문법 아닙니까?), 조기유학 간 사람은 문법 따져가며 영어 배울 필요가 없는 거죠. 어느 책*에 보면 '13세 이전에 총 4,000시간(햇수로 1년 반에서 2년)을 집중적으로 투자(이건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가서 한국인 하숙집에서 한국인끼리 산다든지, 겨우 학교에서 몇 시간 공부하고 나머지는 한국말 하는 사람끼리 한국말하는 것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한국사람 없는 데서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외국인들하고만 부대낄 때 그렇다는 거지요)'해야 무의식적으로 영어를  터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 한학성, 영어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태학사, 초판 2쇄, 2003.6. 한편 이를 언어학에서는 'Critical Age Hypothesis: 결정적 연령가설'이라고 하며, 첫째 언어인 모국어 습득에는 뇌의 좌우반구가 모두 관여하나, 언어 기능이 뇌의 좌반구로 굳어지는 사춘기 후에는 외국어 습득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진다 또는, 유지비가 비싼 언어습득장치(LAD: Language Acquisition Device)가 일단 한 언어를 습득하고 나서 일정 연령에 달하면 버려지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이렇게 조기유학으로 영어를 터득했다고 해도 평생을 그 곳에서 살 것이 아니라면, 여전히 문제는 있습니다. 언제 돌아와야 되는지 하는 문제부터,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왕 배운 영어를 계속 사용하고 발전시킬지, 중고등학교는(외고? 민사고?)? 대학은 무슨 과로 가야 하나? 언제 다시 외국으로 유학가야 되는가? …이런 문제가 굉장히 중요해지니까요.  또 그 중요한 시기에 놓친 우리 말, 우리 역사, 우리 사회에 대한 공부는 어떻게 보충할 것인지? 조기유학 갈 사람은 이런 데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두어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해 외국어로서 영어를 공부하려면 영어의 사용 규칙(광의의 영문법)을 배울 수 밖에 없고  그 기초가 바로 문법(협의의 영문법), 어휘, 발음 세 가지입니다 (언어학에서 쓰이는 전문용어로 하면 각각 통사론(syntax), 형태론(morphology), 음운론(phonology)이라고 합니다). 이걸 못하면 그 위에 지어질 listening, speaking, reading, writing 네 채의 건물(네 개의 방이 있는 한 채의 건물이 맞겠군요)은 부실공사를 면치 못합니다. 하지만 이 기초만 평생 해도 외국인으로서 완전하게 master한다는 게 힘들기 때문에, 부득이 어느 정도 기초를 잡으면, 초보적인 것부터 해서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공부를 병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 다시 실력이 높아져 수준을 올릴 필요가 있을 때, 또 약간 고급스런 문법, 어휘, 발음을 공부하는 식으로 계속 순환함으로써 결국 단계가 높아지고 실력이 상승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다가 덧붙여 ‘영미문화’를 이해해야  영어를 사용할 때 ‘속(contents)’이 차게 되는 것이구요.

따라서 문법, 어휘, 발음과 위 4가지 기능은 같은 평면에서 비교할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닙니다. 왜 리스닝하는데 문법 필요하냐? 그런 말은 심각한 오해를 품고 있는 말이지요. 리스닝이든 리딩이든 문법, 어휘, 발음(이건 리스닝에만 해당) 기초 없으면 한 마디로 '꽝'입니다. '직독직해', '통문장(문장 통째로 외우기) 영어' 이런 것들이 이 세 가지의 확고한 기초 없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장사꾼에게) 또 당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문법을 따분하게 가르친다든지, 실지로 자주 쓰이는 문법 외에 쓸데없는 '문법을 위한 문법 놀음'이나 잘못된 문법을 가르치면 그것도 문제이지만요.

지금까지 성문종합영어 (그 외 맨투맨이니 학원에서 쓰이는 숱한 국산 영어교재들이 다 그 아류(亞流)들이지요. 특히 맨투맨 같은 책은 질로 보아서는 성문보다 나쁜 책입니다. 구태의연하고 가끔 틀리는 일본식 성문영어를 갖다가 구질구질 해설까지 붙이고 있으니까요. 그 책에 저자의 '독창적인 무엇'이 있습니까? 성문을 베끼다 못해, 거기다가 엉터리 해설까지 첨부하고 있습니다!) 같은 책의 해악*이 고리타분한 문법, 잘못된 문법이었다면, 90년대 근처(정확한 연도는 알지 못합니다만)부터 수능시험 경향 변경과 더불어 시작된, '문법 필요 없다, L/C, R/C면 되지' 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공부 방식은, 꼭 같이 아니 더 이상의 피해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기초인 문법마저 경시하는 경향을 가져왔으니까요. 제가 볼 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문법 과잉'이 아니라 '(바른) 문법의 부족'입니다. naver나 empas같은 지식검색에만 해도 수많은 질문들이(거의 90% 이상이) 질문하기 전에 사전이나 '기본 문법책' 한 권 보기만 해도 다 해결될 것들이지요. 개중에는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분명히 문법책 어디를 찾아봐야 될지 몰라서 못 찾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생전 제대로 된 문법책 한 권 오롯이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요. 말 배우면서 '문법(文法) 무시'하는 것과, 우리나라 정치 사회문화의 고질적인 병인 '법치(法治) 무시-즉, 무법(無法)'은 분명히 무관한 현상이 아니리라고 짐작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 성문종합영어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보론 형식으로 맨 밑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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