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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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이상하게 책을 읽는 습관이 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어 원서의 번역서 읽는 습관’이다. 책 내용에 빠지는 것이 독자로서의 온전한 독서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이 말의 원어는 무엇일까? 원래는 어떤 표현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굳이 ‘영어 원서’로 한정한 것은 물론 필자의 어학 능력 때문이다. 생경한 번역 투의 책에 골머리를 앓다가 차라리 원서로 보자 한 적도 있었으며, 결국 나름대로의 독서인생을 통해, 번역서가 술술 읽히기 위해서는, 첫째, 원서가 명확한 논리와 표현을 가져야 한다. 둘째, 번역자도 일정한 수준에 달해야 한다(좋은 책을 엉뚱하게 번역해서 결국 중간에 읽기를 포기한 적은 그 얼마이던가!). 마지막으로, 그러나 다른 것 만큼 중요하게(last but not least), 좋은 번역을 위한 물질적 조건, 쉽게 말해 번역에 허용되는 기간과 보수가 정당한가? 하는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어느 정도 조건을 갖춘 것으로 짐작되는 경우라도, 번역의 디테일에서 자주 접하는 오류나 누락을 보면, 어디까지가 옳은 번역, 제대로 된 번역의 한계이며, 어디까지가 상업과 번역과의  타협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때는 있지만, 어디까지를 번역가의 책임으로 돌려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이 글은 그런 의문에 대한 구체적인 조명이다. 텍스트로는 겉표지에 “KBS <TV, 책을 말하다> 선정 올해의 책”이라고 되어 있는,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김미화 역, 도서출판 소소, 서울, 2003”을 골랐다. 그 이유로는, 첫째, 책 내용의 우수성으로 보아 엉뚱한 책을 골랐다는 비난은 피할 수 있으리라는 점, 둘째, 책에 소개된 역자의 이력으로 보아 번역의 정확성이나 미려함은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는 점, 따라서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옥의 티(a fly in the ointment)’ 정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다. 사실 책 내용과 번역은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왜 주요 서점에서 2003년 올해의 도서로 이 책 대신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가 선정되었는지 개인적인 불만이 생길 정도였다. 부연하자면 일종의 사고유희, 언어유희인 베르베르의 책에 비하면, 이 책은 그 주제의 중요성, 현대의학과 의사에 대한 일반적인 무지와 편견을 타파하면서도, 일견 진지하고 일견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 전문 의학용어 투성이의 책을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번역해낸 점 등에서 더 소중하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책 자체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이 정도로 간략하게 하고, 후한 점수를 준 이 책에서도 군데군데 보이는 번역상의 사소한 문제점을 검토해 본 후, 책의 상업성과의 연관 하에서 어디까지 정당화될 것인지 생각해보려는 것, 나아가서 번역가들을 변호해보려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그들이 제 머리를 스스로 깎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필자의 지레짐작 아래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면, 필자는 번역가도 소설가도 아니고 영문학자(도)도 아니고, 순수한 아마추어 독자로서, 이렇게 좋은 번역의 책을 원서로 다시 구해 읽어볼 생각도 없으며, 누구를 폄하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순전히 필자의 편의를 위해, 내용별로 분류하고 재배치하는 수고 없이, 책 순서대로 앞에서부터 검토해 보기로 하자.

p.21  CPR(삼폐소생술) → 이건 분명히 심폐소생술의 오자이다.

p.85 따라서 M&M 프리젠테이션을 무난하게 치르기 위해 보고자들은 불가피하게 약간의 세부사항을 생략하거나 빈번하게 수동태 표현들을 쓰게 된다. 응급 기관절개를 잘못한 사람은 사라지고 그냥 “응급 기관절개가 시도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가 되는 것이다. → 수동태가 어떤 때에 사용되는가에 관해 이보다 더 적확(的確)한 설명을 한 영문법 교과서를 본 적이 없다.

p.89 ‘식스 시그마’가 ‘불량률 100만분의 1 이하’가 아니고 원래 불량률 ‘100만분의 3 이하’가 아니었던가? 이건 번역 때문인지 원문이 그런지 잘 모르겠다.

p.89 TMI 원자력발전소 → (약간 고심 끝에) 아! 미국 펜실베니아주(이크, 개그 콘서트 “샘과 토마스”의 고향) 주도 해리스버그 근처에서 1979년 일어났던 Three Mile Island 원자력발전소의 사고(Meltdown; 노심용융)를 말하는군.

p.106 중간쯤 “러시아워 시간대의 펜스테이션처럼 북적거렸다.” → 마침 시카고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참이니까 시카고의 유명한 Monorail의 한 역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결과는 Penn Station, 미국 뉴욕 34번가에 있는 역으로, 구(區; borough)간 특급열차의 정차역이며, 타임즈광장(Times Square)에 가까워 붐빈다고 되어 있었다.

p.117 “스파고(Spago)에서 멋진 밤을 즐기기도 했으며, 분명 연애사건도…” → 이건 분명히 시카고의 환락가처럼 보였다. 결과는 520 N. Dearborn St., Chicago, Illinois에 있는 유명한 식당이름으로 $21 ~ $28 정도의 가격대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pp.136 ~ 138 ‘전문가 사정(司正) 프로그램’  → 事情(state of things, affairs)도 아니고, 査定(assessment)도 아니고, 矯正(correction)도 아니고 그 어려운, 마치 우리나라 공무원들이나 들으면 벌벌 떨 만한 司正(audit and inspect)이라니?

p.149 맨 위 “잭 니클라우스는 골프 라운드를 돌 때마다 꼭 ‘페니화 동전’ 세 개를 주머니에 넣고 나갔으며” → 페니화(貨)라. 그건 어느 나라 돈일까? 영국의 화폐단위에는 한 때 페니(penny)라는 게 있었다가 1971년 없어졌다고 한다. 화폐 단위로는 없어졌지만 지금도 1펜스짜리 동전을 페니라고 한다니까, 미국사람인 Golden Bear가 영국의 동전 페니 세 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일까? 미국 화폐인 dollar의 동전 중에서도 제일 작은 단위인 1센트(cent) 짜리를 penny(복수는 pennies)라 부른다니까 그 페니를 세 개 가지고 다닌 걸까(1센트화 동전 세 개)?

p.253 “아니면 조 프라이데이 하사처럼 사무적인 목소리로” → 이 사람은 또 누군가? 계급으로 보아 의무병같은데 혹시 M*A*S*H에라도 나오는 사람일까? 해답은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미국에서 방영되었던 경찰 수사실화극 시리즈 Dragnet(수사망, 포위망의 뜻)에 나오는 주인공 (Detective) Sgt. Joe Friday 즉, ‘조 프라이데이 경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표정이 근엄하고 말투가 매우 직설적이었다나.

p.260 “묘지 교대조(graveyard shift) –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의 근무 교대조”라는 단어의 어원(etymology)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아, 내가 그 동안 대충 알고 있었구나.

p.343 이하 참고문헌에 보면 여러 군데서 지시페이지와 실제 본문의 페이지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건 역자 책임이 아니라 단순한 편집상의 오류로 보인다. 

여러 가지 정황(번역서의 수준)으로 보아 역자가 이런 걸 모르는 수준이어서 그랬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번역의 실수이고 어느 것이 편집상의 실수인지는 필자로서는 알 수 없다.

진짜 전문가들이 실수하는 번역상의 문제는 놀랍게도 “누구나 아는(안다고 생각하는) 단어”, “쉬운 단어”에서 튀어나오는 법이다. 언젠가 어떤 책(실리콘밸리 스토리, 데이비드 캐플런, 안진환, 정준희 역, 동방미디어, 서울, 2000, p.59)에서 “(시에라 네바다의) 아래쪽 48개 봉오리 가운데 최고봉인 (해발 4,300미터의 휘트니 봉)“란 표현을 봤다. 분명히 “the highest peak in the Lower(or lower) 48”이란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런 책쯤 번역하는 사람이 lower를 모르겠는가? 48이란 숫자를 모르겠는가? 더구나 시에라 네바다(산맥)이란 지명도 나왔겠다. 그러나 사전 찾아봐도 나온다. ‘Lower 48’이란 말이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 48개 주”라는 뜻이라고. 하와이는 미국 본토의 밖에 있는 섬이고, 알래스카에서 봤을 때 48개주는 더 낮은 위치에 있는(lower) 주니까. 그리고 알래스카에는 미국(북미)에서 가장 높은 맥킨리 봉(해발 6,194미터)이 있으니까.

또 이런 일도 있다. ‘가짜(이건 필자가 붙인 이름) “가짜영어 사전(안정효, 서울, 현암사, 2000)”’ 54페이지에는 이렇게 정당하게 써 있다. “( ~ 과 같은 아는) 단어를 만나면 자신이 아는 제한된 의미만 가지고 무작정 해석을 하려 덤비지 말고, 문맥이나 흐름에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구석이 보이면 사전을 찾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모든 단어에는 우리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안정효 선생 자신은 그 뒤 85페이지에서 영화제목 “The Thin Red Line”을 괄호로 (가늘고 붉은 선)이라고 친절하게 주석을 달았다. 단어 해석으로는 틀린 말은 없지만 역시 사전을 찾아보면(민중서림 엣센스 영한사전 제6판 p.1346 line 항목, 현재 판인 제9판에는 p. 1610), ‘공격에 굴하지 않는 용감한 소수자’라고 되어 있고, 필자가 알아본 바, 그 어원은 다음과 같다.

The Thin Red Line (1854 battle)

The Thin Red Line was a famous military action by the 93rd (Highland) Regiment during the Crimean War. The 93rd, led by Sir Colin Campbell, took part in actions at Alma and Sevastopol before routing a Russian cavalry charge on October 24, 1854, at Balaklava.

The Russian force of 25,000 rode down the road to Balaklava. It was countered, in part, by a clash with the British Heavy Cavalry, who charged uphill, led by the apparently fearless Sir James Scarlett. The rest of the Russian force went on to charge the 93rd.

Campbell is said to have told his men, "There is no retreat from here, men. You must die where you stand." Sir Colin's aide John Scott is said to have replied, "Aye, Sir Colin. If needs be, we'll do that." Campbell formed the 93rd into a line two deep --- the "thin red line" --- and had the regiment wait until very close quarters before the first line fired. The Russians continued to advance, and Campbell had his men wait until no more than 500 yards lay between the Highlanders and the charging Russians to fire the second volley. This broke the Russian charge. At that, some of the Highlanders started forward for a cavalry charge, but Sir Colin stopped them with a cry of "93rd, damn all that eagerness!"

It was the London Times correspondent, William H. Russell, who wrote that he could see nothing between the charging Russians and the British base of operations at Balaklava but the "thin red streak tipped with a line of steel" of the 93rd. Popularly condensed into "the thin red line", the phrase became a symbol, rightly or wrongly, for British sang-froid in battle. (www.nationmaster.com/encyclopedia/The-Thin-Red-Line(1854-battle))


그렇다면 우리나라 번역문학계의 손익계산서 또는 번역작가의 고료 수준을 전혀 모르는 필자로서도, 결론은 “영세한 출판 풍토”, “싼 고료”, “촉박한 시간” 등이 주원인일 거라고 짐작은 간다. 

이 정도라도 번역을 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전업(專業) 번역가(노동자)”은 우리나라에 과연 몇 명이나 되며, 그들의 한 달 평균 수입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들이 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투자한 금액(물질적인 것으로만 해석해 조금 죄송하지만)에 대비할 때, 과연 투자액 회수는 되고 있고, 회수 기간은 적당한가? 그들보다, 진지한 책, 양식이 되는 책보다는 가벼운 책, 흥미 오락 위주의 독자들(소비자)과 이런 세태에 적당히 부합하는 출판인(생산자)은 책임이 없는 것일까?

물론 개중에는 그러다 보니 돈벌이에 급급한 출판사, 그들이 발굴한 “얼치기 번역가”들도 끼일 것이고, “자기가 얼치기라는 것도 모르는 얼치기”들 또한 양념으로 끼여들어, 정말 번역가들을 울리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닐까? 덤핑이 횡행하면 그 계통으로는 좋은 물건이 제작되고 유통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래도 이런 (좋은) 책을 어찌 이렇게 무성의하게…”하는 분(솔직히 이 부분은 며칠 전 '전문가의 번역에도 오역이 많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자극을 받았다)은 무얼 먹고 사는 것일까?


한편 우리가 번역서 한 권에 지불하는 일만원의 돈은 어디까지의 대가일까? 이런 모든 세부사항까지 완벽한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또 역주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가 역자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그걸 읽는 독자가 스스로 찾아봐야 하는 몫일까? 필자처럼 ‘할 일 없고 현학적이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마땅한’ 아마추어 독자들이나 이런 것 따지고 있지, 실제 번역가들이나, ‘손가락을 보지 않고 가리키는 대로 달을 본’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미 강을 건너 배를 버리고 제 갈 길로들 다 갔으리라.

한편 독자로서 필자같은 부류(많지는 않겠지만)는 행복한 편일까? 불행한 편일까? “별을 보고 길을 찾던 사람들은 행복했다”고 했다.(누군지는 까먹었고, 번역작가들과 동기는 달라도 같은 원인으로, 솔직히 피곤해서 늦은 밤 다시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필자는 말하고 싶다. 책을 보고 그 내용에 빠지던 때는 행복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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