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부에서 문화적 차이로 말미암아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가 ‘관용구 또는 숙어(idiom)’이란 넘이다. 이 말의 정의가 “문법적으로 어떤 주어진 언어에 특정되거나 그 구성요소의 개별적 의미로부터 뜻을 이해할 수가 없는 언어 형식 또는 표현 (A speech form or an expression of a given language that is peculiar to itself grammatically or cannot be understood from the individual meanings of its elements)”(American Heritage Dictionary)인지라, 개별 단어의 뜻으로 짐작하면 틀리는 것이 다반사(茶飯事: 밥 먹고 차 마시듯이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표현에 따라 난이도는 차이가 있어 그래도 어느 정도 추리가 가능한 다음과 같은 것들도 있다.

move like a greased lightning (그리스, 즉 구리스를 칠한 번개처럼 움직이다 ⇒ 매우 빠르다, 총알 같다)
take a chance (기회를 취하다 ⇒ 운에 맡기고 한번 해보다)
stab someone in the back (등을 찌르다 ⇒ 뒤에서 비겁한 짓을 하다 ⇒ 배반하다)
put something on the back burner (가스 렌지의 뒤쪽 버너에 올려놓다 ⇒ 뒤로 미루다)
out of the blue (‘blue’에 정관사가 붙었으니 명사로 사용되었다. 여기서의 뜻은 ‘푸른 하늘’. 원래 문구는 ‘like a bolt out of the blue’이니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청천벽력 같은, 정말 뜻밖의, 불시의’ 이런 의미이다.)

하지만 도대체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다음과 같은 표현도 있다. 아래 것들은 모두 엣센스영한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even steven (동등한, 동점인)
fit as a fiddle (매우 건강한)
paint the town red (술집을 전전하며 화끈하게 놀다)
Break a leg! (성공을 빈다!)

이런 표현들은 의례히 그 어원(語源, etymology)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을 달고 다니며 그 신봉자들끼리는 아주 쓸데없는 논전을 벌이곤 하지만, 외국인학습자로서 우리의 관심은 그 싸움의 승자가 누구일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뜻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idiom과 informal/spoken/colloquial expression(비격식적 또는 구어적 표현) 또는 slang(속어)의 차이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중고급 영어학습자들이 공부 도중에 이런 표현과 닥쳤을 때 상식으로 글의 뜻이 이해가 안 가면 찾아볼 필요는 있지만, 이런 말만 골라서 일부러 공부한다든지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제목의 ‘the whole nine yards’란 표현도 어원에 대해 그런 논란을 가진 관용구이다. 직역하면 ‘9야드 전체 (1 yard ≒ 0.914m)’가 되지만 이 말의 뜻은 쉽게 말하면 ‘everything possible’이며, 통상 나열하는 뜻을 가진 문장의 끝에 대시(dash)나 쉼표(comma)를 하고 그 뒤에 쓴다.

I remember our high school prom. We had long dresses, white gloves, limousines – the whole nine yards. (Longman American Idioms Dictionary)

이 표현은 영어사전에도 올라가 있다. 다음은 “Macmillan English Dictionary for Advanced Learners of American English”의 ‘yard’ 항목 밑의 설명이다.

the whole nine yards  AmE informal  everything
go the whole nine yards ( = do everything possible)  We could go the whole nine yards and define every word in the sentence.

미국영어의 구어와 속어에 관한 좋은 참고자료인 “NTC’s Dictionary of American Slang and Colloquial Expressions”에는 “the entire amount; everything. (Origin unknown. Possibly referring to the standard size of a cement mixing truck, 9 cubic yards.)”라는 설명과 함께 “For you I’ll go the whole nine yards”와 “You’re worth the whole nine yards”를 예문으로 제시한다.

필자가 이런 표현의 어원이 궁금할 때 자주 찾는 사이트인 Wordorigins.org (http://www.wordorigins.org/)에 의하면 이 표현만큼 어원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도 없지만 어느 설명도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주요한 설로는,
(1) 2차대전 때 미국공군 전투기에 탑재된 50캘리버 기관총의 500발 탄환벨트의 길이
(2) 위 NTC Dictionary의 설명
(3) 스코틀랜드 고지(highland) 남자용 스커트인 킬트(kilt)의 길이
(4) 수의(壽衣)의 길이
(5) 돛배 돛대 사이의 길이 등을 들고 있으며, 마지막 가능성으로 미식축구설도 검토한다. 이에 의하면 이 표현이 미식 축구로부터 유래되었다면 반어법으로/비꼬는 방법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한다. “‘9야드를 전진한다’는 것은 10야드라는 목표에 아깝게 못 미치는 것 (One final possibility is that it derives from American football, but was originally intended to be ironic. To go the whole nine yards was to fall just short of the goal of ten yards.)” 미식축구에서는 공격 측이 4차례 다운(볼을 땅에 놓고 라인을 짜서 공격을 시작하는 것) 기회 내에 언제라도 10야드를 전진하면 다시 ‘처음 공격권(first down)’을 획득하는 것이므로 필자도 이 견해에 공감하며, 그러면 ‘everything’이라는 현재 뜻이 미식축구에서 유래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본 다른 여러 책이나 사이트에 의하면 위의 (1)을 주장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 같다.

한편 비슷한 뜻의 idiom으로는 ‘whole bag of tricks’, ‘the whole ball of wax’, ‘the whole enchilada’, ‘the whole shebang’ 등이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idiom 하나를 길게 설명한 것은 다음의 이유에서다. 최근에 우연히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 중 하나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교학사, High School English, 심명호•안현기•황종배•Chris H. Lee•김윤석 공저, Lesson 2 “Lessons from the Neighborhood”), 다음은 그 중 한 구절이다.

I planted trees a few years back. I carried water to them and sprayed them, the whole nine yards (about 8 meters). Now they expect to be waited on hand and foot. Whenever a cold wind blows, they tremble and chatter their branches.

우리가 이제까지 공부한 그 넘이 딱 버티고 있는데 그 뒤 괄호 안의 친절하신 해설을 보라!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the whole nine yards’를 미터법으로 환산하여 ‘about 8 meters’라고 토를 단 것이다. 혹시나 하여 그 자습서(교학사, High School English 자습서, 심명호•안현기•황종배•Chris H. Lee•김윤석 공저)를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해석되어 있다.

“나는 물을 날라서 9야드 전체에 뿌려 주었다. 이제 그것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돌보아 주기를 기대한다.”

도대체 뭐가 9야드란 말인가? 정원의 길이? 물을 나르는 거리? 나무의 높이? 이런 해석을 ‘두리뭉실 대충대충’이라 그러지 않으면 뭐라 그럴 것인가?

그 뒤의 ‘wait on somebody hand and foot’라는 표현 역시 ‘idiom’으로, 이 숙어는 ‘do everything for someone so that they do not have to do anything for themselves (남을 위해 모든 짓을 다해 그들이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되게 하다)’(위의 Macmillan 사전)라는 뜻을 가지므로 ‘go the whole nine yards’와 비슷한 내용이며, 여기서 'hand and foot'은 "끊임 없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with concerted, neverending effort)"(American Heritage Dictionary)란 뜻의 부사구. 즉 앞뒤 문장에서 비슷한 뜻을 다른 숙어를 써서 중복을 피하면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이를 수동태로 바꾸면 ‘somebody is waited on hand and foot’이 되고, 마지막에 ‘by me’가 생략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을 제대로 해석해 보자.

“몇 년 전에 나무를 심었다. 물도 나르고 뿌려도 주고 온갖 짓을 다했다. 그러자 이넘들이 이젠 손이야 발이야 온갖 시중을 들라고 한다.”

매일 수십 종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어지럽히는 영어잡담이나 남을 호리기 위한 영어비급(秘笈) 제목을 단 잡서가 아니라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참 씁쓸하다. 외국인이 영미문화의 모든 세세한 점을 알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따라서 숙어의 뜻을 놓칠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5명이나 이름을 걸고 만든 교과서가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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