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과 싸우는 법
린디 웨스트 지음, 정혜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통쾌한 그녀, 린디 웨스트.

타고날 때부터 유달리 컸던 덩치 때문에, 물리적으론 안 돼도 사회적으로는 한없이 작아지는 법만을 배운 그녀.

그녀가 세상을 향해 당당히 외치게 되는 과정이 담겼다. Shrill!!!! 

('SHRILL: NOTES FROM A LOUD WOMAN'이 원제다.)


자신의 변화 과정이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도,

혹시나 도움이 될지 모른다며 지극히 개인적 경험들을 낱낱이 까발린 그녀!

감탄사가 절로 튀어 나온다. 우와! 정말 멋져요!!!!


어린시절부터 보아온 매체들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뚱뚱한 너는, 엄마 혹은 괴물이 될거야! 라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마저 스스로 금기시하며, 절대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움츠러든 삶을 사느라 좋은 시절을 흘려보내던 그녀.


서서히 깨닫게 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삶을 바꾸는 과정은 영화처럼 단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녀의 변화 과정은 장황하게 설명되는데, 그 장황함마저 굉장히 유쾌하다.


완벽한 외모에 대한 억압을 때로는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받으며 살아가는 현대여성,

비만이거나 아니거나, 애초부터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완벽한 외모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획일적 외모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억압임을 강력히 설파한다. 


그녀가 자신의 몸이 곧 자신이라고, 자신은 몸 안에, 혹은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곧 자신이라고 선언하는 대목은 정말 통쾌하다.

그렇다. 

왜 우리는 내 몸을, 자연스러운 내 몸을 억압해야 하는가.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 그 담론은 생리로도 이어진다. 

몸에서 나오는 수많은 분비물 중에, 우리는 왜 질에서 나오는 피에 대해서 유독 은밀히 다루며 쉬쉬하는가.

그것은 문자 그대로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일 뿐이라고,

저자는 남자아이들에게 이상한 혐오나 환상을 심어주지 않고, 여성들이 생리 현상에 보다 당당해진다면,

그래서 더 산부인과에 잘 갈 수 있고 쉽게 치료받을 수 있다면, 

자궁암과 같은 여성질환으로 고통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스로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내 몸을, 나를 괴롭히는 괴물 쯤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다루는 화제는 방대하다. 낙태, 사방에 널린 강간 유머에 대한 일침 등.

그녀는 수많은 트롤(인터넷상에서 공격하는 자들)들의 견디기 힘든 모욕과 혐오를 상대하면서도, 꿋꿋이 일침을 날린다.


책은 그녀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녀가 남편과의 이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것이, 

그들의 만남으로서 그녀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세상에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외치는 그녀였음에도 자신은 사랑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여전히 갇혀 있었다는 것. 


남자들이 결혼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아내의 모습이 이미 되어 버려있는 자신, 이라는 표현에서는,

대체 우리는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한탄스러웠다. 

우리는 사람의 신체를, 외모를, 어떻게 억압하고 경제적 가치로 이용하며 도구화하는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봤으면 한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세상의 편견에 흔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 가치 있으리라 믿는다. 


번역서여도, 작가만의 독특한 작법은 느껴진다. 

린디 웨스트는 다소 장황하고, 괄호가 많은 작법을 이용하는데, 적응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낄낄대게 되고, (과장 조금 보태) 울다가 웃다가. 


표지 그대로, "까칠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우리의 뚱뚱한 복수천사"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그녀의 인간애였다.


사람들이 끝내, 대체 무슨 자신감이냐고 물어와도 (그 말의 함의를 모를 리가.)

그녀가 손잡고 있는 남자에게 여자들이 대놓고 추파를 던져도 (그들이 연인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 무례함),

죽은 아버지까지 사칭하는 악성 트롤들이 설쳐도,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다는 것. 


"인간은 서로 닿을 수 있다. 내게는 증거가 있다."


또한 세상이 조금씩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 

"우리는 모두 지금 이 자리에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우리, 그 세계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나가자."


그리고 또 한 문장 역시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측은지심이 넘치면 마음을 다치거나 두려운 마음이 들기 어렵다. 인간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사실을 기억한다면 냉정하거나 잔인해지기 어렵다."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 린디 웨스트 지음, 정혜윤 옮김/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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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발견 - 꼰대 탈출 프로젝트
아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 흠 많은 인간, 부디 꼰대만은 되지 않게 해주옵소서. 


얼마 전 포스팅에서, 내가 생각하는 꼰대를 정의한 적이 있었다. 

세상만사에 아는 척하기, 쓸데없이 가르치려 들기, 남에게 제 방식을 강요하기. 


저자가 정의하는 꼰대란 이렇다.

"남보다 서열이나 신분이 높다고 여기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에게 충고하는 걸, 또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하는 걸 당연하기 여기는 자"


내가 그들이 어떤 모습을 취하는가에 집중했다면, 저자는 그 원인에 집중한 듯 하다. 

그 바탕엔 우월감과 남에 대한 멸시가 있다고. 듣자하니 더 싫어진다.


꼰대들의 사례는 수두룩빽빽이고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다.

서열에 집착하고, 직접 언급하든 안하든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안달이 난 사람들. 

자신에 대한 특별대우는 당연하고, 타인에 대한 하대와 막말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들.

공감능력 제로에, 세상엔 오직 한 가지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한가지 방식은 당연히, '나의 방식'. 


저자는 유태인을 학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아이히만의 무사유를 꼰대의 특성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나로선 분명 같은 맥락이 있다고 느껴지는데, 그게 너무 심하다면 이건 어떨까. 


"어디서나 충고가 곧 상대방을 돕는 행동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로서 이런 견해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우리는 충고라는 사치를 만끽하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부터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충고란 자신과 이웃에게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충고를 건네고 싶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의미있게 생각하는지부터 알아볼 일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면 충고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도 상대가 당신을 좋은 충고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두 사람은 충고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것이다. 어느 쪽에 해당하건 당신은 침묵해야 한다. 앞으로는 충고의 대가들이 제멋대로 남의 인생을 재단하기 전에 먼저 거울을 주의깊게 들여다 봤으면 좋겠다."

-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 재인용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다 관심이고 애정인데, 남의 이야기 듣지 않아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속 터진다. 애정과 관심은 대화와 소통으로 충분하다, 묻지도 않은 충고가 아니라.

너무도 충고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면, 상대에게 가 닿는 방법을 택해야 하지 않겠나.

가닿거나 말거나 충고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충고이고, 진짜 애정인가? 자신의 살풀이지.

충고를 하려면 관계와 말투와 상황도 중요하고, 분위기도 중요하고 기타 등등 중요한데, 이 모든 것이 참도 복잡해서 더러워서 못하겠다, 싶으면, 안하면 된다.


물론, 이 책은 꼰대들을 지적하는데 의미가 있진 않다.

저자 스스로 어느 날 돌아보니 꼰대가 되어 있었다는 고백으로 시작하고, 책을 읽는 나 역시 뜨끔한 순간이 많았다.

내가 꼰대질을 한 순간들을 떠올리면 진짜 잠이 안온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려서.


꼰대는 도처에 널려 있고, 내 안에도 꼰대가 있다. 그 입 다물라, 매일 같이 다짐할 테다. 

끊임없는 성찰만이 살 길이다. 


누군가는 절대 자신만은 아니라고, 자신과는 완벽히 무관한 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만, 

저자는 말한 바 있다. 성찰하는 꼰대란 성립하지 않는다고.


다짐으로 리뷰를 맺는다. 

나야 영원히 스스로를 박박 긁어가며 피곤하게 살겠지만, 타인을 긁는 꼰대만은 되지 않겠다고. 적어도 노력은 멈추지 않겠다고.

화이팅!


<꼰대의 발견 (꼰대 탈출 프로젝트) 아거 지음 - 인물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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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보급판, 반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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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실제로 있었던 전쟁과 인간의 집단적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때까지, 모두가 지겨울 정도로, 그리고 모두 다 지겨워진 뒤에도.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최악의 사람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만이 살아남았다고 말한 바 있다. 

살아돌아온 자의 죄책감과 수치심.

이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지 못해야 할 자들은 따로 있건만 이들이 절망하는 것에 가슴이 미어지지만, 

그로 인해 나는 인간애와 마주한다. 

그 참혹함 속에서도 건져올린, 인간이라는 가치. 말살하려 했으나, 끝내 짓밟히지 않은 숭고함. 

살상무기를 만든 것도 인간이요, 타인을 위해 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1장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2장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3장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전반에 걸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에 다신 없을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라 해도,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시련을 맞닥뜨렸다 하더라도, 인간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가름한다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해도, 단 한 명의 사례로도 인간의 내면적 힘이 외형적 운명을 초월해 스스로의 존재를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니체 재인용) 


책에서 설명하는 '로고테라피'는 빅터 프랭클이 만든 것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환자의 미래, 즉 미래에 환자가 이뤄야 할 과제가 갖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이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시켜야 하고, 또 그 사람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자신의 의지를 충족시킨다는 의의를 갖게 된다."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 모든 삶은 지극히 개별적이므로 그 누구도, 어떤 운명도, 다른 사람과 비교될 수 없다. 

모든 시련은 자기만의 유일한 과제가 되고,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도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 기회다.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그의 이론은, 그를 살렸고, 타인을 살렸다.

그가 인간을 사랑하고, 진정성을 지닌 의사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삶을 바라보는 방식, 그 책임감에 대한 생각은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는 말한다. 삶은 일회적이지만, 그 일회성은 우리의 책임 아래 있다고.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그 고통을 겪고도, 인간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낙관적일 것이라고 말하는 의사이기에,

나의 이견을 떠나, 그의 신념 앞에서 숙연해지고 만다. 


특히 되새기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책임감을 자극하기 위한 로고테라피의 행동강령이었다. 


"두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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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2.0 - 실리콘밸리에 퇴근시간을 만든 기적의 강의
소렌 고드해머 지음, 정미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마음에 닿는 부분이 많았다. 

칭찬일색의 추천사가 가끔은 맞기도 하더라는.

똑똑한 자기계발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는 환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삶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행동은,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가 아니라, 지금부터 일치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도 남긴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직종상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해서 그게 지칠 때가 있다고 하면서도, 쉼 없이 대화할 상대를 만들고 마니, 자타공인 천직이다. 

일과 관련되지 않은 순간에도 쉴 새 없이 이야기 하거나, 듣거나.

어쨌거나 침묵을 허락지 않는다.

그녀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었는데.. 가만 보니 나도 다르지 않다. 

대상이 다를뿐, 나 역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든다. 가만히 있는 것을 불편해 한다. 


책에 의하면, 침묵을 회피하는 것은 내 안의 목소리와 맞닥뜨리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소음을 찾는다고. 

"그 결과 마음속 수다 이면에 숨겨진 지혜와 직관, 침묵 속에서 다가갈 수 있는 더 깊은 차원의 앎을 깨닫지 못한다."


여유와 침묵, 평정심은 창의적 사고, 그리고 삶의 행복과도 직결된다는 것이 책의 골자이다.

명상을 권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바쁘다는 핑계는 많지만, 결국 그건 시간이라기보다 여유의 문제라고. 

뭐, 법칙이란 게 없다면, 오늘부터 자기 전 명상 1일차.

라디오를 끄자. 


<위즈덤 2.0 - 소렌 고드해머 지음, 정미나 옮김/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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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연애 공백기 - 연애에 지치고 사람이 힘든 이들의 연애 효능감을 높이기 위한 연애심리책
최미정 지음 / 대림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철학박사 박은미가 쓴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에서, 

논리는 심리를 조종하고, 심리는 논리를 비튼다,는 말이 나온다. (그녀의 표현인지, 원래 유명한 표현인진 모르겠다.)

양자 모두 이상적이지 않다, 논리와 심리는 상호 보완적이야 한다는 것이 그녀가 풀어내는 썰.


<본의 아니게 연애 공백기>를 쓴 저자는 심리학 박사라는데, 위의 책과 이 책이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듯했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공존. 


발랄한 제목에 비해 리뷰를 좀 묵직하게 시작했나 싶다만.

책은 충분히 발랄하다. 그 와중에 예상 밖의 수확도 있으니, 좋은 책이다.


나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무엇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모두가 해봐야 하는 인생의 필수 항목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비혼 상태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비하하는 경우가 있다. 

말엔 생각보다 큰 힘이 있어서, 무한반복되는 그 말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우리 모두 자신의 현재에, 자신이 만들어놓은 모습에 만족하며 행복해야 하는 게 아닐까.


책으로 돌아가서, 저자는 말한다.

인생을 하나의 경주로, 연애를 결혼 전의 통과 의례로만 바라본다면, 현재를 즐길 수가 없이 조급해질 뿐이라고. 

결국 그 조급함 또한 인생을 획일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데 있는 것이라고. 

곧, 삶의 다양성과도 연결된다.

옳거니, 친구들에게 들려줘야겠다. 


저자는 말한다. 성격엔 좋고 나쁨이 없고, 서로가 맞고 안맞고만 있다고. 

자신과 맞는 성격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일단 자신의 성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옳거니 2!)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마음을 통제하는 것보다,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므로.

(이 말 때문에 처음 언급한 책을 떠올린 것 같기도.)


행복해지기 위해선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저자에게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

그런 이유로, 꼭 연애에 관심이 없더라도, 자발적 연애 금지 상태에 있더라도,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본의 아니게 연애 공백기 - 최미정 지음/ 대림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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