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 - 나의 첫 번째 심리상담
강현식(누다심) 지음, 서늘한여름밤 그림 / 와이즈베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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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에 관한 허와 실이 잘 나타나있다. 

삽화는 단순하면서도 사랑스럽고, 뜻이 매우 명료하게 전달된다.


본문 시작을 '심리상담은 미친 사람만 받는 게 아니야', 라고 하기에,

요즘 그런 오해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며, 설마 다 아는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겠지, 잠시 걱정했다.

그건 기우였던 것으로.

심리상담에 관한 새로운 정보들을 적잖이 알게 됐다. 


몇 가지 내가 알게 된 정보를 말하자면, 

심리상담은 시작전에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간다는 것.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그냥 저 우울해요, 사는 게 힘들어요, 라는 식으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게 다가 아니라,

성격을 고치고 싶다, 라든가, 인간관계에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하는 식의 명확한 목표 설정이 선행된다는 것이다.


내담자는 품고 있는 생각들을, 심지어 상담자에 대한 의심과 회의까지도, 분명히 전달하는 것이 낫다는 것.

어떤 해결책을 찾든 그 편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조언, 은근 놀라웠다.


비용에 대한 명확한 이야기까지, 솔직하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참 많았다. 

심리상담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노력한 저자들의 노력이 그대로 전달됐다. 

책은 내가 가진 편견을 불식시켰다. 


때때로 심리상담을 받아볼까 싶은데, 비용과 여러가지 편견 때문에 망설여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 - 강현식(누다심)쓰고, 서늘한여름밤 그리다/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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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블루 컬렉션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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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를 사랑하는, 일상이 무료한 스물 다섯의 콩스탕스.

"생일을 맞았는데도, 온 몸에 힘이 쪽 빠지게 하는 키스를 해 줄 사람 하나 없"어 속상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만나게(?) 된다. 밑줄 긋는 남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에 그어진 밑줄, 답신과도 같은 그녀의 밑줄이 이어지고, 

그녀는 마치 한번도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그가 곁에 있는 듯 느끼게 된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은근하면서도 자상하고 너그러우며, 인생을 사랑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모든 것에 신경을 썼다. 하다못해 소변을 볼 때도, 소리가 되도록 작게 나게 하려고 배를 끌어당겨서 오줌 줄기가 최대한 가늘게 나오도록 애썼다."


허황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기도 하나, 

다시 또 "모든 일에 구역질이 났고, 하찮은 일상 잡사에 특히 더 신물이 나"며, "세상 전체가 마뜩치 않았고,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뺨을 후려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용케 마음의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어떤 삶의 방식을 놓고 자신과 타협하고, 그것의 나쁜 면을 인정하되 좋은 면만을 보려고 애쓰면서, 아침마다 스스로를 달랜다. 다시 그것이 허사가 되면서 마음의 곡예는 계속된다."


그러다가 드디어 찾게 된 밑줄 긋는 그 남자, 클로드.

그러나 상상 속의 그 남자와 "평범한 세계, 표준적인 세계"의 데이트를 하자, 이내 시시해지는데..


책은 발랄했다. 

스무 살에만 가능한 감성이 있다. 물론 어느 나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나이와 무관한 감성의 글을 계속해 내는 작가들은 훌륭한 기량을 지닌 거라 생각한다.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감성.

지젤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 등 쉬이 넘겨버릴 수 없는 몇 가지 불편한 지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감성은 단연 이 책의 강점이었다. 


물론 소설 속 화자의 생각이 작가의 생각은 아니며, 소설 속 인물이든 작가든 완벽한(?) 인간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나대로 그들의 면모를 보는 것이고, 그 불편함 또한 문학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잠깐 등장한 이웃집 여인이 인상적이었다. 

남편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의 코고는 소리를 녹음한 여인. 

그래서 사별 후에도 그의 코고는 소리를 듣는 여인. 


<밑줄 긋는 남자 -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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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젠트리피케이션, 무엇이 문제일까?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50
정원오 지음 / 내인생의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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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지만 좋았다. 

잘 아는 사람에겐 의미없을테지만, 

대강은 알지만 정확히 모르거나, 알고 싶은데 복잡해서 미뤄뒀던 사람에겐 충분히 도움이 될 듯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되었던 곳이 좋아지면서 중상류층이 유입되고, 상승한 임대료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이 그곳에서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선진국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베트남·인도네시아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도 정부 주도 개발정책의 여파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3차 산업혁명 이후 새로 생긴 신중산층과 그들의 삶의 양상 때문이라는 시각과

지대 격차(토지와 건축물에서 얻는 이윤 사이의 격차)가 그 원인이라는 시각이 둘 다 소개되고 있다. 

책은 이들 모두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주거/상업/문화·예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나뉘는데, 

인간적 요소(낡은 동네를 예쁘게 꾸밀 수 있는 예술가의 재능)와 구조적 요소(지대격차)가 만나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를 일으키는 주체로서 구분하면 개척자/개발자/신축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나뉘어지며,

속도와 과정으로 구분하면 점진적/급진적/포용적 모델로 구분된다. 

점진적/급진적 모델이 각각 개척자/개발자에 의한 것이라면, 

마지막 포용적 모델은 실제 있는 현상이라기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바람직한 유형을 연구하며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곧 젠트리피케이션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거나, 혹은 무조건 배척할 필요없이 잘 관리하면 된다는 생각이 숨어있는 것으로 책은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시각으로, 긍정론도, 부정론도 있지만,

책은 균형론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예술가, 창의적 상인, 건물주가 함께 공생하는 관계를 주장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들이 합심해 대안을 마련하고 상생해야 한다는,

재개발이 아닌 인간 중심의 '재생'이 이뤄줘야 한다는 것이 골자이며,

서울 성수동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미리 주목하고, 시민의 상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니,

주목할 만하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인 나에게도 넉넉히 도움이 되는 책이어 반갑다.


<젠트리피케이션 무엇이 문제일까?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50) - 정원오 지음/ 내인생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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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을 위하여
정진주 외 지음, 사회건강연구소 기획 / 소이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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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안전건강 분야에서 애써온 활동가 네 명의 삶을 담았다.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활동가들의 생애사'가 부제이고,

책 표지엔 '역사와 전기의 교차점 찾기'라는 글귀도 적혀 있다.

그 말 그대로, 그들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을 돌아본다. 


많은 지표가 과거보다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드러내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건강과 안전이 성장과 이윤의 가치 아래 묵살당하고 있는 현실. 

경제 성장만이 유일한 목표였던 때는 핑계라도 있었지, 이제는 또 무슨 핑계를 댈텐가. 


다행인 것은, 분명 나아지고 있다는 것.

그 방향성에 의의를 두고 싶다. 


정부의 발암물질 관리체계를 바꾸게 되기까지, 팔다리가 잘리거나 피가 튀어야만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던 현실에서 근골격계질환 등을 산업 재해로 인정받기까지 등등, 그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피자배달 30분제나 마트 직원에게 의자를 놓기까지 등도.  


이미 죽은 사람을 어쩌겠냐며, 세상을 떠난 사람을 두고 투쟁하는 것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그렇기에) 산재 판결과 보상은 고인의 유언처럼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떤 노동을 했는지 그래서 그 결과 어떤 병에 걸렸는지 인정받는", 즉 자신의 존재와 삶을 인정받는 문제이다."


또한, 노동은 곧 삶과 직결되어 있고, 설령 노동과 무관한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누구의 삶도 완벽하게 독자적인 것은 없기에, 우리 모두를 위하여 모든 노동현장과 그곳의 생명들은 그 존엄이 지켜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생명까지도. 

"(그럼에도) 우리가 하는 운동은 노동자가 자기 몸과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자기결정권은 인간과 인간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인간과 관계 맺는 모든 생명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누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관계 맺음이 되어야 한다."


특별한 보상 없이 활동가로 살아온 분들에 대한 존중이자 지지로서 기획된 책이라고 머리글로서 밝히고 있으나, 낯간지러운 내용은 없었다. 

김신범 활동가가 자신의 "타협과 실패, 무지와 실수, 혼란, 무능 등 남에게 털어놓기 부끄러운 일들에 대해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과오를 인정하는 말이자, 그것을 승화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이 전해졌다. 

행여, 머리에 띠를 두르거나 핏대 높여가며 소리지르는 활동가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에 등장하는 활동가들 또한 처음엔 집회나 시위를 거부하던 사람들이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어떨지.

나는 이들을 시위 현장으로 뛰어들게 한 것이 참을 수 없는 '연민'과 '정의'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결국, 이들의 생애를 통해 노동현장에서, 아니, 우리 모두의 삶에서 정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노동자 자신이 직접 투쟁할 줄도 알아야 하며, 소비자이자 시민으로서의 운동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어떤 사람도 예외없이 한 배를 탄 사람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결국, 연대다. 


"자기 일터만 알았던 사람들이 다른 공장에 조사도 함께 하며, 연대의 폭이 넓어졌다. 사고의 폭도 넓어졌다. 더 중요한 깨달음이 퍼져 나갔다. 바로 노동건강권 문제는 더 이상 전문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자신의 노동과정에 대한 전문가라는 인식 말이다."


나는 아래의 '연구소'라는 단어를, 나도 모르게 '나'와 '우리'로 대체해서 읽고 있었다. 

"운동성이라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 생기는 것만이 아니라 관계하는 대상들과 여러 주체들과 우리 속에서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는 거 같아요. 그러니 앞으로 우리 연구소의 생존은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이냐에 달린 것 같아요. 더 건강한 세력들, 더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그들을 찾아가고 그들 속에 있으려고 하고 그런 식으로 가다보면 우리 연구소가 좀 오래 갈 수도 있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지요."


<결국 사람을 위하여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활동가들의 생애사) - 사회건강연구소 기획, 정진주, 김향수, 박정희, 정영훈, 진현주 지음/ 소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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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리는 괴물들을 키웠을까 - 학벌로 일그러진 못난 자화상 알지만 어쩔 수 없다? 1
송민수 지음 / 들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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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학벌로 일그러진 못난 자화상"이다.



'서연고'로 불리며 추앙되는 뿌리깊은 학벌 사회, 그 병폐를 드러낸다. 

정부 요직은 물론, 사적 기관에서도 높은 위치를 차지한 이들은 대개 세 군데 중 한 대학을 나온 현실.

분명 문제가 있다.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함이 분명하지만, 혹시 우리가 그 현실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혹시 그들 마음대로 함부로 해도 되는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닐까? 우리가 그런 괴물들을 만든 것은 아닐까?"


또한, 시스템이 바뀌길 바라는 것도, 그들이 주요 요직을 차지한 뒤에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고 의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우리 내면의 곪아 있는 편견들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며. 

저자의 문제의식도 좋았고, 혹시 학벌사회에 스스로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이 서연고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과 비정상적 감정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족하다."


다소 비약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부끄러운 서연고"라는 소제목으로, 무려 세 챕터나 그 대학 출신의 꼴불견들을 소개한다.

저자도 그 대학들을 나왔다고 무조건 폄하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하긴 하나, 

그럼에도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집중하게 되는 것은 시스템이지, 일반의 인식이 아니다. 

주요 요직을 차지한 사람들이 몽땅 특정 대학 출신이라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라고 보지만,

특정 대학 출신의 꼴불견을 나열하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 조장이 되진 않을지.


이런 말들도 불편하다.

"서연고 학생들의 상당수는 기존의 권위에 기대어 권위주의자가 되려는 자들일 뿐이다."


모두들 서연고에 들어가길 희망하는데, 그것에 성공한 사람들만 그렇다고 말하면 쓰나. 

어쩔 수 없이 입시제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하게 되는 것. 


그러나 몇가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이 좋았다.

보통의 시민들이 학벌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을 돌아보는 것은 필요할 듯하다.

언젠가, 이웃 주민이 던진 말이 생각난다.

2층 아들은 서울대에요, 하던.  

세상 생뚱맞던 그말. 


<어쩌다 우리는 괴물들을 키웠을까 (학벌로 일그러진 못난 자화상) - 송민수 지음/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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