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는 괴물들을 키웠을까 - 학벌로 일그러진 못난 자화상 알지만 어쩔 수 없다? 1
송민수 지음 / 들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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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학벌로 일그러진 못난 자화상"이다.



'서연고'로 불리며 추앙되는 뿌리깊은 학벌 사회, 그 병폐를 드러낸다. 

정부 요직은 물론, 사적 기관에서도 높은 위치를 차지한 이들은 대개 세 군데 중 한 대학을 나온 현실.

분명 문제가 있다.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함이 분명하지만, 혹시 우리가 그 현실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혹시 그들 마음대로 함부로 해도 되는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닐까? 우리가 그런 괴물들을 만든 것은 아닐까?"


또한, 시스템이 바뀌길 바라는 것도, 그들이 주요 요직을 차지한 뒤에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고 의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우리 내면의 곪아 있는 편견들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며. 

저자의 문제의식도 좋았고, 혹시 학벌사회에 스스로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이 서연고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과 비정상적 감정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족하다."


다소 비약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부끄러운 서연고"라는 소제목으로, 무려 세 챕터나 그 대학 출신의 꼴불견들을 소개한다.

저자도 그 대학들을 나왔다고 무조건 폄하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하긴 하나, 

그럼에도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집중하게 되는 것은 시스템이지, 일반의 인식이 아니다. 

주요 요직을 차지한 사람들이 몽땅 특정 대학 출신이라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라고 보지만,

특정 대학 출신의 꼴불견을 나열하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 조장이 되진 않을지.


이런 말들도 불편하다.

"서연고 학생들의 상당수는 기존의 권위에 기대어 권위주의자가 되려는 자들일 뿐이다."


모두들 서연고에 들어가길 희망하는데, 그것에 성공한 사람들만 그렇다고 말하면 쓰나. 

어쩔 수 없이 입시제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하게 되는 것. 


그러나 몇가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이 좋았다.

보통의 시민들이 학벌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을 돌아보는 것은 필요할 듯하다.

언젠가, 이웃 주민이 던진 말이 생각난다.

2층 아들은 서울대에요, 하던.  

세상 생뚱맞던 그말. 


<어쩌다 우리는 괴물들을 키웠을까 (학벌로 일그러진 못난 자화상) - 송민수 지음/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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