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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ㅣ 블루 컬렉션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로맹 가리를 사랑하는, 일상이 무료한 스물 다섯의 콩스탕스.
"생일을 맞았는데도, 온 몸에 힘이 쪽 빠지게 하는 키스를 해 줄 사람 하나 없"어 속상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만나게(?) 된다. 밑줄 긋는 남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에 그어진 밑줄, 답신과도 같은 그녀의 밑줄이 이어지고,
그녀는 마치 한번도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그가 곁에 있는 듯 느끼게 된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은근하면서도 자상하고 너그러우며, 인생을 사랑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모든 것에 신경을 썼다. 하다못해 소변을 볼 때도, 소리가 되도록 작게 나게 하려고 배를 끌어당겨서 오줌 줄기가 최대한 가늘게 나오도록 애썼다."
허황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기도 하나,
다시 또 "모든 일에 구역질이 났고, 하찮은 일상 잡사에 특히 더 신물이 나"며, "세상 전체가 마뜩치 않았고,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뺨을 후려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용케 마음의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어떤 삶의 방식을 놓고 자신과 타협하고, 그것의 나쁜 면을 인정하되 좋은 면만을 보려고 애쓰면서, 아침마다 스스로를 달랜다. 다시 그것이 허사가 되면서 마음의 곡예는 계속된다."
그러다가 드디어 찾게 된 밑줄 긋는 그 남자, 클로드.
그러나 상상 속의 그 남자와 "평범한 세계, 표준적인 세계"의 데이트를 하자, 이내 시시해지는데..
책은 발랄했다.
스무 살에만 가능한 감성이 있다. 물론 어느 나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나이와 무관한 감성의 글을 계속해 내는 작가들은 훌륭한 기량을 지닌 거라 생각한다.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감성.
지젤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 등 쉬이 넘겨버릴 수 없는 몇 가지 불편한 지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감성은 단연 이 책의 강점이었다.
물론 소설 속 화자의 생각이 작가의 생각은 아니며, 소설 속 인물이든 작가든 완벽한(?) 인간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나대로 그들의 면모를 보는 것이고, 그 불편함 또한 문학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잠깐 등장한 이웃집 여인이 인상적이었다.
남편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의 코고는 소리를 녹음한 여인.
그래서 사별 후에도 그의 코고는 소리를 듣는 여인.
<밑줄 긋는 남자 -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