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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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아내이자 취재기자인 이사도라는 남편 베넷과 함께 빈에서 열리는 정신과학회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매혹적인 남자 에이드리언을 만나 광기와 같은 열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안전을 상징하는 베넷, 열정을 상징하는 에이드리언을 두고 고민에 빠지는 이사도라. 

다른 남자를 갈망하며 남편과 있든, 스스로의 열정과 남편을 배반하고 다른 남자와 함께 하든, 그녀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녀의 갈등과 선택, 그 이후.

그것을 큰 축으로 하되,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 발랄하고 경쾌하게, 도발적으로 쏟아진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결혼관, 페미니즘, 가족, 작가로서의 사명감 등. 


이야기는 시종일관 퍽 유쾌하고 재미있다. 

그러나 넘쳐나는 유머와 유쾌함은 이 책의 덤일 뿐. 

핵심은 삶을 돌아보는 진지한 고찰에 있다.


에이드리언은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헛된 약속이나, 달콤한 감언이설일랑 없다.  

"나하고 여행을 떠나는 거야. 나는 유럽을 발견하고 당신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이제 사랑 타령 그만하고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보는 게 어때?"

"당신 삶의 그 위선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어. 정절이니, 일부일처제니 하는 헛소리와 수백만 가지의 모순 속에 살면서 남편 품 안에서 어리광이나 부리는 재주 많은 어린애처럼 살면서 자립할 생각은 절대 안 하잖아."


첫번째 선택은 에이드리언. 

그와 함께 하는 모험을 감행한 뒤, 그녀는 행복할까?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데가 된 기분이라니, 말 다했다. 그것의 핵심은 목숨 구걸이고 종속적인 운명 아니었던가.


예상되듯, 페미니즘은 책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모든 매체와 광고와 별자리들마저 합세해 여성들에게 심어주는 구원환상.

"아이큐가 170이건 70이건 상관없다. 여자라면 누구나 세뇌당한다. 단지 덫의 생김새가 다를 뿐이고 말이 조금 더 세련되어질 뿐이다. 그 말속에서 여자들은 여전히 사랑에 굴복당하기를, 한눈에 반하기를, 정액을 뿜어대는 거대한 페니스로 채워지기를, 거품목욕, 실크와 비단 그리고 물론 돈을 욕망한다."

열여섯에 진즉 삶의 지향점을 결정한 똑똑한 소녀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남자를 찾는 우리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세상은 편견으로 공고해진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의 성차별적이고 편견으로 똘똘 뭉친 언행들은 도처에 널렸다.

그것이 상호모순적이고 양립할 수 없는 말들로 이뤄져있더라도, 여자들은 그것에 스스로를 가둔다. 

"조금씩, 조금씩, 여자들은 여자에 대한 그런 편견들을 믿기 시작한다. 결국 그런 편견의 그늘에서 수세기동안 살아온 여자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게 무언지 알지 못하고 그 어떤 일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의 그러한 우유부단함을 조롱하고 그 모든 걸 생물학적인 문제, 호르몬 문제, 생리전증후군 탓으로 돌리고 그들의 약점을 공격한다."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라고, 우리와 상관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완전히 부정할 수 있을까. 


진정한 자유와 쾌락을 주창하던 에이드리언은 결국 글감과 배신감만 주고 떠난다.

혼자가 되고, 그녀는 깨닫기 시작한다. 

"나의 모든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건 바로 혼자인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음을. 

페미니즘을 주창하면서도, "남자한테 사랑받지 못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왔음을.


그러나 잘못된 선택을 한 자신을 향한 비난은 접기로 한다. 

그것 또한 스스로에게 충실한 방법이었음을,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처였음을 받아들인다. 

주장은 더욱 선명해진다. 

"다른 사람은 결코 나를 완성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완성할 힘이 없을 때, 사랑을 찾는 건 자살 행위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기희생이 곧 사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자기희생 따윈 이제 관심없다. 로맨틱한 여주인공이 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빌린 날개들은 내가 필요로 할 때 붙어 있어주질 않았다. 아무래도 내 날개를 길러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결혼에 대해, 환상의 커플에 대해 그녀가 완전히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두 사람의 결합은 영혼의 틈을 서로 메워 주고 그로 인해 우리는 좀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의 응석을 받아주고 서로를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두 사람. 단지 그런 결합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결혼은 온갖 불이익을 감수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결혼은 이 무정한 세상에서 단 한명의 진정한 친구를 갖는 것이다."

해석은 독자의 몫이 될 듯. 

나로선 의지와 의존이 다르고, 쌍방의 결합과 일방의 종속 역시 완전히 다르므로, 결혼과 독립이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상호 배타적 존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조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에이드리언과 헤어진 이사도라는 남편 베넷을 찾아가고, 그와의 재회 직전에 책은 끝난다.

나로선 남편에게 돌아간 것이 그녀가 안정을 찾아, 편견 속으로 복귀하는 거라고 해석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가 받아주든, 받아주지 않든, 더이상 종속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는 그녀의 선언은 이행될 것이므로. 

당당하게 사랑을 찾아가는 것 또한 내 삶을 쟁취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 아니겠는가.


그녀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중에서도 "문득 내가 강제수용소에서 태어났다가 살해된 유대인의 유령 아닐까 하는 환상에 빠지곤" 한다.

훗날 극복했지만 지나온 어느 한 때, 그녀는 결백을 주장하는 독일인들을 용서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들의 위선이 역겨웠다. 차라리 터놓고, 우린 히틀러를 사랑했다고 털어놓았더라면, 차라리 인간적이고 정직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어쩌면 용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의 거짓 앞에, 그녀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고는 확장된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 자신에게 정직할 수 없다면 호르스트 앞에서 큰 소리 칠 자격도 없다는 것을. 물론 그와 나의 직무태만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본질은 같았다. 내가 쓴 글로 나 자신의 정직함을 증명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의 글이 정직하지 않다고 화낼 수 있겠는가?"

작가로서의 소명을 깨닫는 과정이 놀랍고, 이 책이 고맙다. 


전세계 어디서나 모녀간의 애증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엄마에 대한 나의 사랑과 증오는 너무도 심하게 뒤엉켜 있어서 엄마 자체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엄마와 나. 나는 그 둘을 결코 분리하지 못하리라."

그것은 결국 종속이다. 끊어내지 않으면 영원한 고리로 연결될 뿐. 

독립과 해방은 모든 것으로부터 이뤄져야 한다. 남자와 결혼만이 아니라. 


저자는 진실을 말하기가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열렬한 찬사와 날선 비난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고.

"그러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 작가는 오래갈 수 없다"고. 

그 정신이 좋다. 남을 위한 것으로 포장하지 않는 것도. 스스로에게 당당하고자 하는 것도.  


그녀의 센스는, 책을 관통하는 핵심마저 "고속도로 다리 밑에 누군가 써놓은 낙서"로 보여주는 것으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FEMMES! LIBERONS-NOUS! (여성들이여! 스스로를 해방시켜라!)"


<비행공포 - 에리카 종 장편소설, 이진 옮김/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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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이 대산세계문학총서 75
사무엘 베케트 지음, 김경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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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편의 "옮긴이 해설"에 의하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몰로이>의 페이지들은 채워져간다. 그래서 지면을 채운 내용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한다. 그런 다음 끝에 가서 그동안 써진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지금까지 쓴 것은 모두 거짓말이며, 지어낸 것은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1부는 글을 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시작되었다. 

"이것을 쓰느라 무척 힘들었다. 첫 부분이었으니까, 이해하겠는가. 반면 지금은 거의 끝부분이다. 지금 내가 쓰는 것은 좀 나은가? 잘 모르겠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게 내가 쓴 서두다. 그들이 이걸 간직하는 걸 보면, 이것에 뭔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게 그것이다."

"이번엔 잘 쓸 거야, 그러고나서 아마도 한 번은 더 가능하겠지만, 그러면 끝일 거야. 이런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도 하나의 생각이니까."

"그러던 중 갑자기 나는 내 이름 몰로이를 생각해냈다. 내 이름은 몰로이요. 난 불쑥 소리쳤다. 몰로이, 방금 생각났어요."


내러티브란 없다. 

무언가 진행되다가도 스스로 엎어버리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그것을 내러티브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된다. 

그의 작문의 원칙은 본문에서 엿볼 수 있다. 

"말하길 원치 않는 것,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믿는 바를 말할 수 없는 것, 그리고 항상 말하는 것, 혹은 거의 항상 말하는 것, 그것을 작문의 열기 속에서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작가는 끊임없이 말한다. 아무 것도 의미가 없다고. 

"내가 이것이나 저것 혹은 다른 것을 말한다고 해도,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말하는 것은 새롭게 지어내는 것이다. 이 말은 당연히 틀리다. 우리는 아무것도 지어내지 않는다. 지어낸다고, 탈출한다고 믿지만, 우리는 오직 배운 학습, 배웠다가 잊혀진 벌과의 토막들, 우리가 탄식하는, 그런 눈물 없는 삶을 더듬더듬 말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고리타분함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만, 완전히 반대다. 

책장을 펼치고 난 뒤 시장기도 잊은 채 단숨에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내러티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면, 그가 무슨 말을 던질지 기대되어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알 수 없음과 무의미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다. 심지어 종종 유머러스하고, 선정적이기까지.

"나는 그녀를, 어머니를 그리 원망하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나를 갖지 않기 위해 모든 수를 다 썼다는 것을 난 알고 있고, 물론 가장 중요한 것만 빼고, 그런데도 나를 떼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운명이 나에게 수월한 배설 구멍이 아닌 다른 구멍을 예정해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는 좋았고 그것으로 내게 족하다."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고민하는 사람에게 끌린다. 

그게 직업이든, 업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그것이 숭고하다고 떠드는 사람보다, 그래봐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의미할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빠져들고 만다.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데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그런 이들에게, 그런 정신에 홀린다. 그들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으로서, 유의미함을 증명한다. 그 탐구를 존경한다. 


"내가 이 상황을 그에 맞는 적절한 곳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을 적절한 장소에서 언급할 수가 없고, 대신 언급될 필요가 없는 것들과 그보다도 더 언급될 필요가 없는 것들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언급하려면 우린 결코 끝내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끝나는 것, 끝내는 것. 아 난 안다, 현재 있는 몇몇 상황만 언급한다고 해도 우리는 역시 끝내지는 못한다는 것, 안다, 아다마다. 다만 똥같은 소리를 바꾸는 것이다. 모든 똥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상관없다, 똥더미를 바꿔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때때로 좀 더 멀리 있는 똥더미로 가보는 것, 뭐 훨훨 날아서, 마치 하루살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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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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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대학 신입생 때 사랑했던 리아나와 재회하게 된다.

헤어진 뒤 20년간 재회를 꿈꾸게 한 동시에 그를 두렵게 만든 존재, 리아나. 

한 명은 확실히 죽였고, 다른 한 명도 죽였을 확률이 높은 수배 중인 범죄자.


그는 이미 20년전 그녀의 실체를 알았다. 

"작지만 꽤 부유한 마을"인 조지의 고향 얘기를 듣고 싶어했던, 스스로를 변호사 아버지를 둔 보수적인 남쪽 지방 출신이라고 소개했던, 그러나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었던 그 소녀의 실체를.

훗날, 조지는 어린 커플이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낸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녀에게, 사람의 태생은 부정될 수 없다고 말했던 자신의 대답을.


20년만에 나타난 그녀는 다시 그의 일상을 뒤흔든다.


주목하게 되는 것은 범죄 자체보다 그녀에게 순순히 협조하는 조지의 모습이었다. 

과연 그것은 팜므 파탈에 홀린 남자의 모습이었을까. 


책은 시종일관 보스턴의 지겨운 늦여름에 관한 묘사와 함께, 조지가 느끼는 권태를 표현한다. 


"마흔이 다 되어가니 세상이 서서히 바래가는 듯했다. 누군가와 미친듯이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룬다거나, 출세를 하겠다거나,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대부분은 멍한 상태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아직 상조 회사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지난 몇 년간 설레는 일은 전혀 없었다."

아내를 기다리는 남자들을 보며 "그들에게는 정체되고 축처진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치 더 이상 인생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듯이."


리아나와 재회 후,

"그것이야말로 바라던 바였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언가 일어날 것이다."

"조지는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살아 있는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이런 흔치 않은 상황이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그를 망친 것은 일상을 지긋지긋하게 만들던 한없는 권태로움이 아니었는지.


그런 면에서, "한마디로 그 쌍년이 처음부터 날 가지고 놀았어." 라며 격분하는 매클레인의 모습은 좀 한심하다.

죽어가는 아내를 두고 불륜을 저질러놓고, 그 자책감에 상대를 비난하는데 열올리는 모습이란.

그러나 그의 결말을 아는 지금, 욕은 접는다. 값비싼 대가를 치렀으니.


뜬금없는지 모르지만, 역시 내면이 아닌 바깥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공고히 하게 된다.


단, 조지의 권태가 마흔 줄에 접어들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차 안에서 조지는 희열을 느꼈다. 단지 자기가 아는 오드리가 살아 있어서가 아니라 평생 바랐던 것보다 훨씬 더 기이한 일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마더 대학과 고향 집의 따분한 현실은 무미건조한 잿빛 과거로 물러났다."

현실이 따분한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권태, 박진감 넘치는 인생이 힘겨운 누군가에겐 꿈같은 그 환상, 권태. 

이건 타고난 캐릭터일까. 

훗날 조지는 생각한다.

"변신이 그녀의 재능이라면 조지는 그녀가 왜 자신에게 끌렸는지 알 수 있었다. 조지는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늘 똑같을 것이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도 남편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다가 돌연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다짐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두권으로 단정짓긴 섣부르지만, 피터 스완슨이 삶의 권태로움에 관심이 있는 작가는 아닐까한다.  


조지는 여러가지 사건 사고를 접한 뒤 "불현듯 단조로운 일상을 왜 그토록 싫어했는지 의아해졌다" 하고,

광장공포증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끼며 편안했던 이전의 일상을 놀라워 한다. 

마치 독자에게 지루하리만치 평온한 일상을 행복히 여기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것처럼. 

그러나 과연. 

조지는 리아나를 잊고, 평온한 일상을 택할까.  

그의 선택은 책의 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먼저 출간되었지만, 

저자의 첫 작품은 이 책 <아낌없이 뺏는 사랑THE GIRL WITH A CLOCK FOR A HEART>이라고 한다. 

그말인즉슨, 뒤로 갈수록 -적어도 내겐- 더 좋은 작품이 쓰여지고 있다는 말씀.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아낌없이 뺏는 사랑 -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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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 상
사노 요코 지음, 윤성원 옮김 / 펄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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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는 어머니에게서 다정한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이들에겐 좋은 친구였고, 고민을 들어주는 믿음직한 여인이었으나, 그녀에게만큼은 유독 차가웠던 어머니, 시즈코상.

사생대회에서 상을 타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지만, 죽은 오빠를 언급하며 딸에게 상처를 주었던 엄마. 

그녀는 어머니가 기분이 좋을 때면 불안감에 휩싸여야 했다. 갑자기 튀어나올 히스테리가 무서웠으므로. 

졸다가 발길질을 당해 어차피 죽을 거면 빨리 죽자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었다는, 그 상황에 빗자루로 배를 찔리자 간지러워서 웃음을 터뜨렸다는 대목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어머니와의 좋지 않은 관계 때문에 힘들었고, 또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종종 그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안심은커녕, "자책감은 해를 거듭할수록 차곡차곡 쌓여갔다"고.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을 서술하는 대목은 누군가에겐 거부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편지는 늘 감상적이고 가식적이었으며, "마지막의 '어머니가'라는 글이 연극의 클라이맥스였다"고, 비위가 상할 정도였다고.

실버 타운에 계신 어머니에게 싸구려 옷을 사드리며 양심에 거리끼지 않았고, 어머니가 좋은 옷을 입고 외출할 일은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한다. 

누군가 본인의 어머니를 목졸라 죽이고 싶을 지경이라는 말을 했을 때, 사노 요코는 그가 자신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생각할 정도.

"맨손으로 목을 조를 수 있다니. 나는 맨손으로 어머니 목을 만지는 것도 싫었다." 

나는 그녀의 거친 표현들이 이제와 착한 딸의 역할로 자신의 죄를 포장하지 않겠다는, 가슴 깊이 각인된 자책의 일부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다만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 죄로 자책감에 시달렸다."


세월은 흘러 강인하고 억센 존재였던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고, 사노 요코 역시 병마에 시달리는 노인이 된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일흔 살의 사노 요코는 어머니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서른두 살의 나이에 여섯 아이를 낳고 한 명을 떠나보낸 다섯 아이의 엄마", 시즈코상. 

본인은 그 나이에 두살짜리 아이 딱 하나였는데, "머리를 산발한 채 광란의 나날을 보냈"음을 깨닫는다. 

이모가 아무리 다정하게 대해줘도 본인이 이모의 자식이 될 수는 없음을, 어머니로 인해 누렸던 긍정적인 면 또한 분명 많음을.

어머니 덕분에 가난을 아랑곳하지 않는 강인함과 배짱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녀 덕분에 전후의 가난 속에서도 괜찮은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요리도 뜨개질도 바느질도 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임을.

그녀 스스로의 젊음을 멍청했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어머니를 언젠가는 분명 어렸던 한 여인으로서 이해하는 과정으로 보였다. 

"가엾은 어머니". 

사노 요코는 어머니의 거칠고 마른 손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그 손. 90년동안,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해낸 손. 


저자는 일흔이 되어서야  치매 환자가 된 어머니 옆에 스스럼없이, 친근하게 누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온다.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나는 거의 흐느끼다시피 말했다.

"전 못된 아이였어요. 미안해요."

어머니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던 것일까?

"나야말로 미안하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란다."


그 사과는 모든 것을 바꿨다. 

"수십 년 동안이나 내 안에서 응어리져 있던 혐오감이 빙산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처럼 녹았다."

"나는 50년도 넘는 세월동안 스스로를 괴롭혀왔던 자책감에서 해방되었다."

"신에게 용서받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용서받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이제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면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나는 누군가에게 용서받았다고 느꼈다. 세상이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면서 온화해졌다."


어머니를 한 여인으로서 바라보는 것이, 그 용서가, 왜 그렇게 오래 걸려야 했을까 싶은 마음은 접는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는 없으므로. 모든 상처는 결코 같지 않으므로.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울기라도 하잖아. 아예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라는 친구의 위로에도, 저자는 죄책감과 눈물을 쉬이 그치지 못하지만, 깊은 애증과 자책 또한 사랑의 다른 모습임을 생각해 본다. 

그녀가 자신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독자들로 하여금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면에서도 의미있는 책으로 느껴진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니까. 


"일흔 살이 되는 나는 하루하루가 공포다. 가속도가 붙은 건망증이 예사롭지 않다."

그럼에도 그녀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곳에는 "나의 엄마, 시즈코상"이 있으므로. 


"고요하고 그리운 그곳으로 나도 간다.

 고마워요.

 엄마, 곧 갈게요."


전사회적으로 생각해볼 문제도 보였다. 

저자는 실버 타운에 어머니를  모신 뒤, 어머니를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이 부분만큼은 이 모녀의 특수성이라기보다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으로 여겨졌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치매 환자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 환자를 돌보느라 나머지 가족이 온 인생과 시간과 행복을 저당잡히는 건 환자 본인에게나 가족에게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실버 타운에  보내드릴 수 있는 가족이라 해도 가슴에 죄책감이 남고,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가정은 고통에 몸부림친다.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더이상 누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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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밴 어린시절 - 개정판
W. 휴 미실다인 지음, 이석규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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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책의 서두인 아래 문단에 모두 담겼다.


"어디선가, 언제인가 당신은 어린이였다. 이 점은 어른으로 사는 우리의 삶에서 참으로 명백하지만, 겉보기에는 그다지 의미없어 보이며, 그래서 대개는 간과되고 있는 사실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이 한때 어린이였다는 사실은 현재 당신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우리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어린이로서 자기 생애를 무시하거나 어린 시절을 도외시하고 생략해버리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은 많은 어른들에게 고민과 불행의 근본적인 요인인 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그릇되게 대하고 있는 일면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많은 정서적 고통들이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문제의 반복임을 발견한다. 

이 책의 핵심 개념으로 볼 수 있는 내재과거아(內在過去兒)는 정서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고질적인 어린 시절을 말하고, 저자가 프로이트 심리학의 무의식 개념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새롭게 도입한 개념이다. 


지금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듯 한데, 저자가 이 내재과거아라는 개념을 최초 도입한 당시에는 생소한 이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당신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당신이 하는 모든 일과 정서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또한 친구나 동료, 배우자는 물론, 자녀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때론 그 관계를 지배하기까지 한다고.  

"우리는 지난날의 정서적인 분위기에 묻혀서 살아가면서 현재의 삶에 끼어들고 있는 어린이이기도 하고, 동시에 한편으로는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면서 오로지 현재에 집착해서 살아가는 어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당신의 내재과거아는 당신이 어른으로서 얻는 만족감을 방해하거나 무산시킬 수도 있고, 당신을 난처하게 만들거나 괴롭힐 수도 있으며, 당신을 병들게 할 수도 있고,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는 것. 

"한때 당신이 거쳐온 그 어린이(내재과거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당신은 자신의 내재과거아를 어떻게 다루는가?"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가 몇가지 충격적 사건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일상적 분위기와 태도로 말미암아 굳어진 것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당신이 정작 어른으로서 행동할 때는 실제로 당신 자신에 대해서 부모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당신은 당신의 부모가 어린 시절의 당신을 대하던 감정이나 태도를 이용한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풍부한 사례들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부모로부터 나오는 적개심에 노출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커서도 스스로에게 적개심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각자가 제 부모의 역할을 답습하는 스스로의 부모가 된다는 것.


당연하게도, 저자의 목표는 부모, 혹은 그에 상응하는 양육자를 탓하거나 원망하는데 있지 않다. 

"당신이 부모의 인간적인 단점들과 장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성숙의 지표이다. 부모는 거의 예외없이 그리고 흔히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또한, 당신이 가진 부정적 요소 이상으로 긍정적이고 유용한 태도들도 있으며, 이 또한 부모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원망은 무의미 할뿐 아니라 난관을 극복하는 것을 회피하게 만들 뿐이며, 어릴 때는 표현할 수 없던 적개심과 공격 성향을 지속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를 구속하는 모든 해로운 영향들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기 위함일 뿐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부모 역할을 하면서 실수를 반복하는 괴로움을 중단시키기 위함이다. 

"당신이 자신의 내재과거아에게 훌륭한 부모 노릇을 한다면, 당신의 내재과거아는 값진 존재가 될 수 있다. 당신의 내재과거아는 당신의 노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당신의 세계가 젊고 활기차며 경이로움이 넘치는 세계가 되도록 도울 수 있다."


그 단계는 간단히 말해 깨닫고, 존중하고, 제약을 가하는 3단계로 이뤄진다. 

"첫째 단계는 이렇듯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에 대해서 파악하고 그 감정들이 어린 시절에 비롯되었음을 깨닫는 일이다. 둘째 단계는 어린 시절이 우리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듯이 이런 감정들 또한 우리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일이다. 셋째 단계는 이러한 어린 시절의 감정들이 자신의 행동과 능력 발휘를 제어하거나 지배하지 못하도록 제약을 가하는 일이다."


제2부는 <부모의 지나친 태도들: 이 태도들이 현재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라는 제목으로, 완벽주의, 강압, 유약, 방임, 심기증, 응징, 방치, 거부, 성적 자극이라는 9개의 항목을 풀어 설명하고 있다. 

각 항목은 흥미로웠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은 아닐 듯 하다. 보통의 가정에서는 각 항목이 복합적으로, 대신 아주 조금씩 발현되지 않을까 한다. 

세부적이고 자칫 지루한 2부보다는, 1부와 3부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이 책의 정수는 뽑아낼 수 있다고 여겨진다.


저자는 독자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으로 책을 마친다.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어떤 설명 - 또는 탐구- 도 당신의 문제를 없애주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이 처한 난관들의 근원을 찾는 것만이 어디에서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인생을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쨌든 당신이 노력해야 한다."


<몸에 밴 어린 시절 - W. 휴 미실다인 지음, 이석규· 이종범 옮김/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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