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로이 대산세계문학총서 75
사무엘 베케트 지음, 김경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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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편의 "옮긴이 해설"에 의하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몰로이>의 페이지들은 채워져간다. 그래서 지면을 채운 내용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한다. 그런 다음 끝에 가서 그동안 써진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지금까지 쓴 것은 모두 거짓말이며, 지어낸 것은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1부는 글을 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시작되었다. 

"이것을 쓰느라 무척 힘들었다. 첫 부분이었으니까, 이해하겠는가. 반면 지금은 거의 끝부분이다. 지금 내가 쓰는 것은 좀 나은가? 잘 모르겠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게 내가 쓴 서두다. 그들이 이걸 간직하는 걸 보면, 이것에 뭔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게 그것이다."

"이번엔 잘 쓸 거야, 그러고나서 아마도 한 번은 더 가능하겠지만, 그러면 끝일 거야. 이런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도 하나의 생각이니까."

"그러던 중 갑자기 나는 내 이름 몰로이를 생각해냈다. 내 이름은 몰로이요. 난 불쑥 소리쳤다. 몰로이, 방금 생각났어요."


내러티브란 없다. 

무언가 진행되다가도 스스로 엎어버리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그것을 내러티브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된다. 

그의 작문의 원칙은 본문에서 엿볼 수 있다. 

"말하길 원치 않는 것,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믿는 바를 말할 수 없는 것, 그리고 항상 말하는 것, 혹은 거의 항상 말하는 것, 그것을 작문의 열기 속에서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작가는 끊임없이 말한다. 아무 것도 의미가 없다고. 

"내가 이것이나 저것 혹은 다른 것을 말한다고 해도,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말하는 것은 새롭게 지어내는 것이다. 이 말은 당연히 틀리다. 우리는 아무것도 지어내지 않는다. 지어낸다고, 탈출한다고 믿지만, 우리는 오직 배운 학습, 배웠다가 잊혀진 벌과의 토막들, 우리가 탄식하는, 그런 눈물 없는 삶을 더듬더듬 말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고리타분함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만, 완전히 반대다. 

책장을 펼치고 난 뒤 시장기도 잊은 채 단숨에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내러티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면, 그가 무슨 말을 던질지 기대되어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알 수 없음과 무의미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다. 심지어 종종 유머러스하고, 선정적이기까지.

"나는 그녀를, 어머니를 그리 원망하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나를 갖지 않기 위해 모든 수를 다 썼다는 것을 난 알고 있고, 물론 가장 중요한 것만 빼고, 그런데도 나를 떼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운명이 나에게 수월한 배설 구멍이 아닌 다른 구멍을 예정해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는 좋았고 그것으로 내게 족하다."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고민하는 사람에게 끌린다. 

그게 직업이든, 업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그것이 숭고하다고 떠드는 사람보다, 그래봐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의미할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빠져들고 만다.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데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그런 이들에게, 그런 정신에 홀린다. 그들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으로서, 유의미함을 증명한다. 그 탐구를 존경한다. 


"내가 이 상황을 그에 맞는 적절한 곳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을 적절한 장소에서 언급할 수가 없고, 대신 언급될 필요가 없는 것들과 그보다도 더 언급될 필요가 없는 것들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언급하려면 우린 결코 끝내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끝나는 것, 끝내는 것. 아 난 안다, 현재 있는 몇몇 상황만 언급한다고 해도 우리는 역시 끝내지는 못한다는 것, 안다, 아다마다. 다만 똥같은 소리를 바꾸는 것이다. 모든 똥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상관없다, 똥더미를 바꿔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때때로 좀 더 멀리 있는 똥더미로 가보는 것, 뭐 훨훨 날아서, 마치 하루살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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