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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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대학 신입생 때 사랑했던 리아나와 재회하게 된다.

헤어진 뒤 20년간 재회를 꿈꾸게 한 동시에 그를 두렵게 만든 존재, 리아나. 

한 명은 확실히 죽였고, 다른 한 명도 죽였을 확률이 높은 수배 중인 범죄자.


그는 이미 20년전 그녀의 실체를 알았다. 

"작지만 꽤 부유한 마을"인 조지의 고향 얘기를 듣고 싶어했던, 스스로를 변호사 아버지를 둔 보수적인 남쪽 지방 출신이라고 소개했던, 그러나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었던 그 소녀의 실체를.

훗날, 조지는 어린 커플이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낸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녀에게, 사람의 태생은 부정될 수 없다고 말했던 자신의 대답을.


20년만에 나타난 그녀는 다시 그의 일상을 뒤흔든다.


주목하게 되는 것은 범죄 자체보다 그녀에게 순순히 협조하는 조지의 모습이었다. 

과연 그것은 팜므 파탈에 홀린 남자의 모습이었을까. 


책은 시종일관 보스턴의 지겨운 늦여름에 관한 묘사와 함께, 조지가 느끼는 권태를 표현한다. 


"마흔이 다 되어가니 세상이 서서히 바래가는 듯했다. 누군가와 미친듯이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룬다거나, 출세를 하겠다거나,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대부분은 멍한 상태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아직 상조 회사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지난 몇 년간 설레는 일은 전혀 없었다."

아내를 기다리는 남자들을 보며 "그들에게는 정체되고 축처진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치 더 이상 인생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듯이."


리아나와 재회 후,

"그것이야말로 바라던 바였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언가 일어날 것이다."

"조지는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살아 있는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이런 흔치 않은 상황이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그를 망친 것은 일상을 지긋지긋하게 만들던 한없는 권태로움이 아니었는지.


그런 면에서, "한마디로 그 쌍년이 처음부터 날 가지고 놀았어." 라며 격분하는 매클레인의 모습은 좀 한심하다.

죽어가는 아내를 두고 불륜을 저질러놓고, 그 자책감에 상대를 비난하는데 열올리는 모습이란.

그러나 그의 결말을 아는 지금, 욕은 접는다. 값비싼 대가를 치렀으니.


뜬금없는지 모르지만, 역시 내면이 아닌 바깥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공고히 하게 된다.


단, 조지의 권태가 마흔 줄에 접어들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차 안에서 조지는 희열을 느꼈다. 단지 자기가 아는 오드리가 살아 있어서가 아니라 평생 바랐던 것보다 훨씬 더 기이한 일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마더 대학과 고향 집의 따분한 현실은 무미건조한 잿빛 과거로 물러났다."

현실이 따분한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권태, 박진감 넘치는 인생이 힘겨운 누군가에겐 꿈같은 그 환상, 권태. 

이건 타고난 캐릭터일까. 

훗날 조지는 생각한다.

"변신이 그녀의 재능이라면 조지는 그녀가 왜 자신에게 끌렸는지 알 수 있었다. 조지는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늘 똑같을 것이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도 남편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다가 돌연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다짐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두권으로 단정짓긴 섣부르지만, 피터 스완슨이 삶의 권태로움에 관심이 있는 작가는 아닐까한다.  


조지는 여러가지 사건 사고를 접한 뒤 "불현듯 단조로운 일상을 왜 그토록 싫어했는지 의아해졌다" 하고,

광장공포증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끼며 편안했던 이전의 일상을 놀라워 한다. 

마치 독자에게 지루하리만치 평온한 일상을 행복히 여기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것처럼. 

그러나 과연. 

조지는 리아나를 잊고, 평온한 일상을 택할까.  

그의 선택은 책의 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먼저 출간되었지만, 

저자의 첫 작품은 이 책 <아낌없이 뺏는 사랑THE GIRL WITH A CLOCK FOR A HEART>이라고 한다. 

그말인즉슨, 뒤로 갈수록 -적어도 내겐- 더 좋은 작품이 쓰여지고 있다는 말씀.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아낌없이 뺏는 사랑 -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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