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코 상
사노 요코 지음, 윤성원 옮김 / 펄북스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노 요코는 어머니에게서 다정한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이들에겐 좋은 친구였고, 고민을 들어주는 믿음직한 여인이었으나, 그녀에게만큼은 유독 차가웠던 어머니, 시즈코상.

사생대회에서 상을 타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지만, 죽은 오빠를 언급하며 딸에게 상처를 주었던 엄마. 

그녀는 어머니가 기분이 좋을 때면 불안감에 휩싸여야 했다. 갑자기 튀어나올 히스테리가 무서웠으므로. 

졸다가 발길질을 당해 어차피 죽을 거면 빨리 죽자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었다는, 그 상황에 빗자루로 배를 찔리자 간지러워서 웃음을 터뜨렸다는 대목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어머니와의 좋지 않은 관계 때문에 힘들었고, 또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종종 그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안심은커녕, "자책감은 해를 거듭할수록 차곡차곡 쌓여갔다"고.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을 서술하는 대목은 누군가에겐 거부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편지는 늘 감상적이고 가식적이었으며, "마지막의 '어머니가'라는 글이 연극의 클라이맥스였다"고, 비위가 상할 정도였다고.

실버 타운에 계신 어머니에게 싸구려 옷을 사드리며 양심에 거리끼지 않았고, 어머니가 좋은 옷을 입고 외출할 일은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한다. 

누군가 본인의 어머니를 목졸라 죽이고 싶을 지경이라는 말을 했을 때, 사노 요코는 그가 자신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생각할 정도.

"맨손으로 목을 조를 수 있다니. 나는 맨손으로 어머니 목을 만지는 것도 싫었다." 

나는 그녀의 거친 표현들이 이제와 착한 딸의 역할로 자신의 죄를 포장하지 않겠다는, 가슴 깊이 각인된 자책의 일부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다만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 죄로 자책감에 시달렸다."


세월은 흘러 강인하고 억센 존재였던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고, 사노 요코 역시 병마에 시달리는 노인이 된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일흔 살의 사노 요코는 어머니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서른두 살의 나이에 여섯 아이를 낳고 한 명을 떠나보낸 다섯 아이의 엄마", 시즈코상. 

본인은 그 나이에 두살짜리 아이 딱 하나였는데, "머리를 산발한 채 광란의 나날을 보냈"음을 깨닫는다. 

이모가 아무리 다정하게 대해줘도 본인이 이모의 자식이 될 수는 없음을, 어머니로 인해 누렸던 긍정적인 면 또한 분명 많음을.

어머니 덕분에 가난을 아랑곳하지 않는 강인함과 배짱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녀 덕분에 전후의 가난 속에서도 괜찮은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요리도 뜨개질도 바느질도 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임을.

그녀 스스로의 젊음을 멍청했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어머니를 언젠가는 분명 어렸던 한 여인으로서 이해하는 과정으로 보였다. 

"가엾은 어머니". 

사노 요코는 어머니의 거칠고 마른 손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그 손. 90년동안,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해낸 손. 


저자는 일흔이 되어서야  치매 환자가 된 어머니 옆에 스스럼없이, 친근하게 누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온다.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나는 거의 흐느끼다시피 말했다.

"전 못된 아이였어요. 미안해요."

어머니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던 것일까?

"나야말로 미안하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란다."


그 사과는 모든 것을 바꿨다. 

"수십 년 동안이나 내 안에서 응어리져 있던 혐오감이 빙산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처럼 녹았다."

"나는 50년도 넘는 세월동안 스스로를 괴롭혀왔던 자책감에서 해방되었다."

"신에게 용서받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용서받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이제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면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나는 누군가에게 용서받았다고 느꼈다. 세상이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면서 온화해졌다."


어머니를 한 여인으로서 바라보는 것이, 그 용서가, 왜 그렇게 오래 걸려야 했을까 싶은 마음은 접는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는 없으므로. 모든 상처는 결코 같지 않으므로.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울기라도 하잖아. 아예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라는 친구의 위로에도, 저자는 죄책감과 눈물을 쉬이 그치지 못하지만, 깊은 애증과 자책 또한 사랑의 다른 모습임을 생각해 본다. 

그녀가 자신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독자들로 하여금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면에서도 의미있는 책으로 느껴진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니까. 


"일흔 살이 되는 나는 하루하루가 공포다. 가속도가 붙은 건망증이 예사롭지 않다."

그럼에도 그녀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곳에는 "나의 엄마, 시즈코상"이 있으므로. 


"고요하고 그리운 그곳으로 나도 간다.

 고마워요.

 엄마, 곧 갈게요."


전사회적으로 생각해볼 문제도 보였다. 

저자는 실버 타운에 어머니를  모신 뒤, 어머니를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이 부분만큼은 이 모녀의 특수성이라기보다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으로 여겨졌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치매 환자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 환자를 돌보느라 나머지 가족이 온 인생과 시간과 행복을 저당잡히는 건 환자 본인에게나 가족에게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실버 타운에  보내드릴 수 있는 가족이라 해도 가슴에 죄책감이 남고,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가정은 고통에 몸부림친다.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더이상 누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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