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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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듯 아닌 듯, 아슬아슬 줄타기 하며 내달리는 이야기 폭포. 

끊임없이 숨겨진 이야기와 다음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장르를 넘나드는 즐거움은 기본, 여성, 가족, 사랑, 결혼, 삶 등등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독창성이란 고명까지 기막히게 얹어져 있으니, 내가 원하는 소설의 모든 요소 충족.

[대괄호]를 이용하여 지문처럼, 해설처럼, 작가 자신처럼 등장하는 -옮긴이가 부르는 말로- 코러스는,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자신이 단 한 명의 사랑을 받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마틸드와 "모두의 사랑을 원하"는 로토. 

1부는 <운명>, 로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전쟁은 아주 먼 곳의 이야기인 이 번영의 시대에, 남자로, 부자로, 백인으로, 미국인으로 태어"난 로토의 이야기로. 


로토는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어머니에 의해 뉴햄프셔의 부유한 학생들이 있는 기숙 학교에 가게 된다. 

그 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마틸드를 만나기 전까지, "영혼을 섹스에 헌납했다고 생각"하며 방탕한 나날을 보낸다. 

마틸드를 만나고, 그야말로 첫눈에 반해 그 자리에서 청혼하고, 결혼. 앤트워넷은 그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로토는 배우로 성공할 것을 꿈꾸지만 좀처럼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마틸드는 장시간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로토는 자신의 실패에 대해 절망하다가 술에 취해 글을 쓰고, 마틸드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다. 

이후 극작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마흔 여섯. 마틸드에게 한 때 다른 남자(에어리얼)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혼란을 느끼다가, 가족 내력인 동맥류로 사망한다. 


2부, <분노>. 마틸드의 이야기. 

로토가 모르던 많은 비밀이 드러난다. 

로토의 분노는 그녀가 그가 만든 이미지 "착한 여자! 아름다운 여자! 사랑스러운 여자!"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는 그녀를 잘 알았을까? 


마틸드는 네 살 때 동생의 죽음을 방치(또는 유도)했다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할머니로부터 버려진다. 

매춘으로 살던 외할머니마저 죽자, 냉담한 외삼촌에게 맡겨지고, 그는 어떠한 애정도 관심도 없이 그녀를 법적 의무기한인 열 여덟살까지만 부양한다.  

학비와 생계비가 필요했던 마틸드는 에어리얼과 소위 '비즈니스' 관계를 맺게 된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그 관계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다 부유한 로토를 알게 되고, 계획적으로 접근, 결혼에 골인한다.

마틸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앤트워넷은 그들을 갈라놓으려 하고, 그들은 평생 악의에 찬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그녀는 결혼생활에 충실하며 남편의 성공을 위해 모든 일을 다한다. 

생계를 유지하고,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주고, 삼촌을 협박해 그의 작품 초연을 지원받는 등.


이 정도가 큰 줄거리다. 말하지 않은 내용이 더 많다. 

동생의 죽음을 지켜본 나이, 네 살. 

그녀에게 진정 악의가 있었을까. 진실은 알 수 없다. 있었다면, 그것이 정말 '악의'인지도.   

다른 사람에 의해 편집된 이야기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녀 안에는 믿는 그녀가 존재했고, 그녀가 품은 이 모순은 그녀에게 모든 것의 근원이 되었다."

훗날, 또 한 명의 중요한 등장인물이 하는 말. 어쩌면 어린 그녀가 하고 싶었을 말. 

"나를 행복하게 해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자신을 만든 사람에게 간청했다. 그러면 나도 다시 도덕성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일찍이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그녀.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남편을 만나 사랑하면서도 무작정 행복에 몸을 맡기지 못한다.

"그녀는 이렇게 순수한 형태의 기쁨은 신뢰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로토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평생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살아간다.  


그가 죽은 뒤에야 뒤늦게 깨닫는 것. 미리 알 수 없었던,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 

"로토는 나를 결코 떠나지 않았을 거야. 그 사실은 내 뼛속 깊이 알 수 있어. 당신이 무슨 짓을 했건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을 거야.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했던 삶은 당신이 무슨 짓을 해서 망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어."


작가가 드러내놓고 천착하는 것은 이것으로 보인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의 문제. 태양의 위치에서 보면 결국 인류란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그저 회전하며 깜박거리는 빛일 뿐이다. (...) 구체적인 것은 한곳에 초점을 맞출 때에야 보인다. 콧구멍 옆의 점, 잠자는 동안 건조해진 아랫입술에 들러붙은 치아, 겨드랑이의 종잇장 같은 피부." 

"비극, 희극. 그건 오로지 관점의 문제다."

내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을 이유이기도. 


결혼에 대한 서사 또한 이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결혼이 뭐냐는 질문에 로토는 말한다. "끝나지 않는 향연. 먹고 또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것."

마틸드는 말한다. "키플링은 그걸 아주 긴 대화라고 했어." 

로토의 환상 속에서 엄마 앤트워넷이 말하길, 

"결혼이란 건 거짓말투성이야. 대체로는 친절한 거짓말이지만. 말하지 않는 거짓말 말이지. 날마다 배우자에 대한 생각을 입 밖에 내어 말한다면 결혼생활을 짓밟아 뭉개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야."

그녀가 정의하는 결혼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눈이 번쩍 뜨이는 흥미로움은, 그 역시 하나의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줄거리를 요약하며, 나는 과연 로토가 아내를 잘 알았을까, 질문했다. 

사실, 나는 그가 그녀를 아주 잘 알았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오해가 있긴 했지만.

"결혼생활의 패러독스, 즉 결코 누군가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알고 있음을."

그가 아는 그녀 역시, 분명한 그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미화된 모습뿐 아니라, 그가 느끼는 막연한 옭아맴도, 그녀를 "자신의 표현 수단을 찾지 못한 예술가" 같다고 보는 면도. 


물론, 그럼에도 따로 또 함께, 동상이몽은 삶의 묘미 정도가 아닐지.

어느 날, 마틸드는 말 그대로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피했다는 사실에 "감사와 죄의식과 두려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울고", 로토는 그 울음이 "그들에게는 자식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운다. 그렇게 다른 생각으로 울고, "벌어졌던 그들 사이에 다리가 놓였고,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로토와 마틸드 부부뿐만 아니라, 앤트워넷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남편에게 신앙을 갖게 하는 것에 실패하자, 아들을 위해 한밤중에 묵시록을 읽어주는 장면은 일면 소름이 끼친다.

"그녀는 구름 속에 마련된 자신들의 자리에서 아들과 함께 슬픔에 잠겨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 두 사람(남편과 시누이)이 저 아래에서 영원히 불타는 것을. 로토만큼은 기필코 구원해야 했다."

신앙 또한,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전술한 것처럼, 대괄호 코러스는 기막히게 활용되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이 죽은 소녀를, 이 죽은 소년을 소환해 성적으로 흥분시킨 뒤 섹스를 하게 하는 건 어딘가 잘못되었다.]" 

때로 잔인한 이야기도 해야 하는 작가의 숙명이자 죄의식으로 읽혔다.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께와 성인에게 적당할 문장과 내용 전개 등은 이 책의 호불호를 확연히 갈라놓을 듯하다. 

누군가 한줄평을 묻는다면, 앞의 열 장쯤 읽어 보라는 말로 대신하겠다. 딱 열 장 정도야.

인내력 발휘할 필요없이 결정날 듯하다. 집어 던질지, 밤을 꼴딱 새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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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세계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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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프stiff는 "딱딱한" 상태, 즉 사후경직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시체를 가리키는 말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렇다. 죽음 그 이후의 이야기. 부제는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이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책에 죽음 이후의 '삶'?

책을 펼치고 곧 의문이 풀린다. 


경악할 만한 이야기들을 독특한 유머로 서술한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과학적인 이야기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끔찍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해, 끝내 끔찍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그 이상은- 생각해봐야 할 소재를 던져준다.

우리는 분명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봐야할테고, 적어도 나의 죽음은 맞이할 테니까. 


어떤 이들은 죽은 사람에게 매장이나 화장 이외의 다른 것을 하는 행위를 불경스럽게 보기도 하고, 그 이야기조차 꺼려하지만, 

저자는 죽음에 대한 과학에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가치가 있음을 주장한다. 

"사체들은 지난 2,000년 동안 자발적으로 또는 자기도 모르게 과학이 가장 대담한 한 걸음을 떼는 과정에 참여해왔다"고. 

"사체는 우리의 슈퍼 영웅"이라고. 


사체는 인간 대신 수술, 교통사고, 낙하, 총알과 폭탄 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과학을 발전시키고, 더 나은 기구와 안전장비들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사체 대신 다른 것이 대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나은 대안이 되진 못한다고. 

가령, 내시경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면서 최소한의 절개만을 통해 수술하게 되었고, 따라서 보다 상세한 해부학적 지식이 필요하게 됐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모든 걸 벗겨내 눈앞에 펼쳐놓고 보았"다면,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는 것. 

사체를 해부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연습을 해선 안되기 때문에 필연적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해부학의 정보가 축적되었다고 해서, 책과 도제식 교육에만 의존해 의학을 배우게 된다면,

그들의 첫 연습이 곧 실전이 될 수 있다. 이는 위험하다. 


해부는 기원전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지지만, 18~19세기까지도 해부학자는 사형집행인과 같은, 실은 더 나쁜 부류로 비쳤다고 한다.

해부는 죽음보다 더한 처벌로 여겨졌고, 실제로 1752년 영국에서는 해부를 살인자들에게 내리는 형벌로 집행하기도 했다고.

그 인식은 지금도 남아있다.

사람들은 매장이 해부에 비해 덜 소름끼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체가 구더기에 덮여 있다가(유충들의 식사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린단다), 서서히 액화되어 가는 과정은 결코 해부보다 아름답지 않다. 

보존처리도 이를 막진 못한다. 단지 장례식을 위해 그 과정을 유예시킬 뿐, 결과는 똑같다. 

매장의 대안으로 유행(?)한 화장은 편견과 달리, 자연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시신을 정말 흙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냉동건조를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심장이 뛰는 한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제 심장이 단지 연료 펌프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심장이 뛰는 사체' 개념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고. 

이로서 생명을 살리는 장기 기능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산 채로 장기를 적출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거의 전적으로 근거가 없다." 

('거의 전적으로'가 마음에 걸릴 수 있으나, 본문에는 그 두려움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을 말하더라도 장기 기증 등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저자의 주장은 선명하다.

"우리는 생물학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시작과 끝에, 태어나고 죽을 때 기억하게 된다. 그 나머지는 그 사실을 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자신의 시신처리를 두고 세밀하고 복잡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필시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럴 것이다. 

 (중략) 즉 어떤 면으로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 있기 위한 방편이다."


장기 기증을 마친 사체를 보며 저자는 말한다.

"그녀는 아픈 사람 셋을 낫게 해주었다. 그들이 지상에서 머물 시간을 더 늘려주었다. 죽은 사람으로서 이 정도의 선물을 할 수 있다는 건 경이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에도 해내지 못하는 일이다. H 같은 사체는 죽은 사람들의 영웅이다."


그녀의 호소는 사뭇 감상적이면서도, 동시에 논리적이다.

"심장과 간과 콩팥의 기증을 기다리며 줄을 선 사람이 8만 명이나 되고 그 가운데 16명이 매일 죽어가고 있는데, H의 가족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기증을 거절하고 그 장기를 불태우거나 썩어가게 버려두기를 택한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놀랍고 사무치게 슬프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외과의사들의 수술칼을 받아들이지만, 낯선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서는 그러지 않는다."


비행기 사고에서 제1의 사망원인은 화재라고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사고에서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별이라고. 

성인 남성의 생존 확률이 가장 높다. 저자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밀치고 탈출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인간에게, 우리는 이타심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읽다보니 적응이 되기도 했으나, 끝내 몸서리처지는 부분이 없진 않았다. 

나의 책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처음으로 내 말을 막았다. 어우, 하지마. 나 그런 이야긴 아직 끔찍하거든?

그럼에도, 훌륭하게 잘 씌어진 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죽음으로 이야기하는 생명에 관하여. 


샤먼 앱트 러셀의 <배고픔에 관하여>가 떠오르기도 했다. 

주제도, 서술 방식도 판이하게 다르지만,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윤리적 각성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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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문장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 지훈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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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때로 명확하고 확신에 찬 말투가 반갑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마저. 


쇼펜하우어는 현명한 독서를 강조한다.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지만, 누구나 이를 통해 사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서에 매몰되지 않아야 하며, 그보다 스스로의 사색이 중요함을 반복해 주장한다.

"독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색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독서는 사상을 유도하는 역할로 충분하다."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으로 정신에 재료를 공급할 수는 있어도 우리를 대신해서 저자가 사색해줄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암요, 그렇고 말고.


잘못된 독서는 낭비일 뿐. 특히 순전히 돈을 목적으로 쓰인 글들이 그렇다고.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조건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단순히 원고지를 메우기 위해 집필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저자에게 기만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신간을 찾는 "어리석은 민중"에게 각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책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싶은 독자라면, 혹은 책을 통해 어떤 학문적 연구를 진행시킬 작정이라면 될 수 있는 한 새로 나온 책에서 멀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쇼펜하우어 역시, 많은 이들이 그렇듯 고전을 읽을 것을 권한다.


많이도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글처럼 쉬운 것은 없다. 반대로 중요한 사상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글을 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표현이 모호하고 불명확한 문장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빈곤하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표현이 모호해지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이 사상적으로 불명료하기 때문이며, 작가의 사상이 불명료하다는 것은 사색의 오류, 모순, 부정에서 시작된다."


"작가가 모든 것을 다 쓰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독자가 권태를 느끼게 하는 비결, 그것은 모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한 문제의 핵심과 중요한 부분만 언급하고,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남겨둬야 한다."

<교수와 광인>에서 느꼈던 불편함도 떠오른다. 작가가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생각의 박탈에, 권태와 거부감을 느꼈다.  


쇼펜하우어는 모국어, 즉 독일어가 파괴되고 있음에 분개한다.

"마치 사냥을 즐기듯 독일어를 마구 살해하고 있다."

"단 한마디라도 존재하는 모국어를 삭제하는 것은 한 명의 동족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 범죄이다."

언어에 대한 사랑은 선명하게 느껴진다. 

"언어는 일종의 예술품이므로 객관적인 규칙으로 다뤄야 마땅하다.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작품은 일정한 규칙을 따라야 하며, 그 의도에 부합해야 한다."


그 사랑은 이렇게 표현되기까지.

"이처럼 모국어를 문란하게 만드는 행위는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독일만의 심각한 사태다"

"미친듯이 자행되는 모국어 파괴의 풍조는 독일인의 국민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말은 자주도 나타난다. 

"내가 생각할 때 독일인의 국민성은 아둔함이다."

"독일인을 제외한 다른 민족들은 거짓된 지식의 파편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 찬양하는 것은 오직 독일인뿐이다."

"독일인에겐 분노가 없다. 멍청한 비둘기처럼 먹이를 던져주는 손길에 감사의 눈물만 흘린다."


독일인에겐 없다지만, 그에겐 있는 이 강한 분노. 

기타 배경을 파악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익명 평론가들의 후안무치한 행동 중에서도 가장 비열한 행위는 국왕처럼 1인칭 복수 '우리는' 이라고 발언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1인칭 단수도 과분하다."

실생활에서도 느껴지는 '우리'의 불편함. '우리'의 권위주의. '우리'에 내포된 타자화.  

본인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갑자기 바로 앞의 사람을 특이한 것처럼 몰고, 자신과 불특정다수를 '우리'로 엮어버리는 사람들. 


"문학도 일상생활과 마찬가지다. 어디를 둘러봐도 쓸모없는 인간쓰레기들을 만나게 된다."

"악서는 독자의 돈과 시간과 인내력을 고갈시키는 주범이다."

"양서를 읽기 위한 조건은 악서를 읽지 않는 데 있다. 인생은 짧고, 시간과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

공감하지만, 때로는 존경스러워서가 아니라, 배우지 말아야 할 본보기로서 배울 것도 있는 법이라 생각한다. 사람에게서도, 책에게서도. 

악서와 양서를 만나며 책을 고르는 법도 배우게 된다. 물론 많은 시간과 체력을 뺏겨선 안되겠지만.  


무슨 일인지, 공감하지 않더라도 확신에 찬 문장들이 좋았다. 

내겐 확신이 필요하다. 어차피 남의 말을 그대로 흡수할 기질은 되지 못한다. 

나만의 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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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자
실비아 플라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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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억압에 대한 인식과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질병. 

어느 한쪽에 무게를 실을 수가 없다. 

페미니즘으로 나아가기엔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멈춰졌으며, 개인적 영역으로만 몰기엔 시대와 상황이 그녀의 병을 열심히도 악화시켰다. 

그녀의 혼란과 함께 나조차 머릿속이 뱅글뱅글.

어지럽다. 


대학졸업반의 에스더 그린우드. 

지역 신문의 대학 통신원이자 문예지의 편집자, 우등생위원회의 간사이고, 유명 여류 시인인 교수의 대학원 추천서와 전액 장학금이 약속되어있다. 

소설은 그녀가 잘나가는 패션잡지사에서 뽑은 열두 명의 객원기자 중 한 명이 되어 뉴욕에서 여름을 보낸던 때부터 시작된다.

이제 패션 잡지의 최고 편집자에게 일을 배우게 되기까지 했으니, 그녀의 선택만이 남았다. 교수, 편집자, 소설가 혹은 아내 등등. 

하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로젠버그 부부가 매카시즘에 의해 전기의자로 처형되던 1953년.

"그 여름,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로젠버그 부부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인식하고, 그것에 무지한 자들에게 분노를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더불어, 그 사형 방식이 후일 그녀를 괴롭히는 전기에 의한 것이라는 것에도 시선이 간다. 


가능한 많은 미래가 있지만, 어떤 것도 결정할 수가 없는 에스더. 

"열매를 몽땅 따고 싶었다. 하나만 고르는 것은 나머지 모두를 잃는다는 뜻이었다. 결정을 못 하고 그렇게 앉아 있는 사이, 무화과는 쪼글쪼글 검게 변하더니, 하나씩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지내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런 질문을 떠올리자 슬프고 고단했다. 이어서 어째서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면서 지내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오랫동안 교제한 버디와 그의 가족은 자연스레 그들이 결혼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또 버디는 뻔히 알지 않느냐는 듯 못된 말투로 말했다. 내가 아이를 가지면 느낌이 달라질 거라고, 그때는 시를 쓰고 싶지 않을 거라고. 여자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가지면 세뇌가 되고, 나중에는 전체주의 국가에 사는 노예처럼 둔해지는 게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버디는 그녀에게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보였던 듯하다. 

"여자는 순결한 삶만 살아야 하는데, 남자는 순결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 두 가지를 산다는 생각을 참을 수가 없었다."

버디가 성경험을 고백하자, 그녀는 그를 상종못할 위선자로 여긴다. 


유엔의 통역사인 콘스탄틴과의 데이트는 아버지와 함께 했던 아홉살 이후 "가장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하나, 그를 선택할 수도 없다.

"(...) 나는 결혼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결혼 전에 남자는 장미며 키스며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퍼부으면서도, 속으로는 결혼식만 끝나면 여자가 윌라드 부인의 부엌 매트처럼 자기 발밑에 납작 엎드리기를 바란다는 것을."


그녀가 느끼는 부조리와 분노는 건강하게 밖으로 표출될 기회를 찾지 못하고 그녀를 더욱 안으로만 침잠하게 만든다. 

그녀에게 나머지 열한 명의 평범한 일행들은 "지긋지긋하게 따분"하고, "메스껍"게 보일 뿐이다.

자신도 찾아간 극장, 뻔한 내용의 영화. "관객들은 하나같이 멍청이로 보였다."

"사람들은 먼지 덩어리에 불과했고, 그런 먼지 덩어리를 치료하는 게 시를 쓰는 일보다 뭐가 대단한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오던 남자에 대한 말은 어떤가.

"귀가 튀어나오거나 이가 이상하거나, 다리가 불구인 창백한 남자가 있었다. (...) 내가 왜 그런 꼴을 당해야 하나. 내가 모자란 것도 아닌데, 그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고, 언제 멈추어야 할지 모르는 것뿐인데."


나는 이런 그녀의 시각이 진심으로, 참 안타깝다. 

자신만이 특별하다는 생각. 그 덫. 

그렇게 완벽하게만 보이던 모범생 에스더의 마음 속엔 지옥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난처한 상황에 처한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길에서 싸움이 벌어지거나, 실험실 유리병에 담긴 아기를 발견하면, 난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어찌나 골똘히 봤던지 그 장면이 잊히지 않았다." 


노이로제, 우울증, 신경쇠약,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병은 점점 깊어간다. 

그녀의 병이 깊어갈수록, 소설은 점점 읽기 힘들어진다. 그녀의 병을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럽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내지도 않는 그녀의 모습은 섬뜩하다. 

"핏자국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고 볼 만해서, 그대로 놔두고 돌아다니기로 했다. 마른 자국이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죽은 연인의 유품이라도 되는 양 간직할 작정이었다."

"왜 사람들이 날 빤히 쳐다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보다 이상한 사람들도 많은데, 뭐."


집에 돌아와 소설을 써보려고도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제야 문제가 뭔지 알았다. 난 경험이 필요했다. 남자랑 자본 적도 없고,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이 죽는 걸 본 적도 없이 어떻게 인생에 대해 글을 쓸 수 있을까?"

독일에 갈까, 논문을 쓸까, 무엇을 할까 생각해보지만, 이런저런 공상들만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뿐,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열아홉 번째 전봇대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든 엄마를 보고 하는 생각 역시 또 한 번의 섬뜩함을 불러일으킨다.

"돼지 소리 같은 소음이 짜증스러웠다. 코 고는 소리를 멈추게 할 방법은, 소리를 내는 살과 그 안의 움푹한 부분을 양손으로 잡고 비트는 길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행동엔 한층 광기가 어리고, 결국, 자살에 골몰하기 시작한다.

투신한 자살자의 신문기사를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일본인의 할복을 상상한다. 손목을 그을까, 익사를 할까 생각한다.

"익사가 가장 친절하게 죽는 방법이라면, 최악의 방법은 불에 타 죽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목에서, 저자 실비아 플라스가 -불에 탄 것은 아니라 해도-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녹초가 될 때까지 수영하며,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하는 대목에서, 그녀가 나아지길 기도한다.

그러나 그 날, 그녀는 목매달기에 실패하고 약물을 과량 복용하나 역시 미수에 그쳐,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병원에서의 치료는 충격적이다. 

의사는 당시의 의학대로 제 역할을 하는 듯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을 바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고, 충격요법이라는 전기치료는 끔찍할 뿐이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는 그녀 때문에 하얗게 질리고 울며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녀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엄마는 말했다. 자기에 대해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생긴 병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 게 치료법이라고. 그래서 테레사는 나를 동네 병원의 자원 봉사자로 등록해주었다."

엄마는 그녀를 그렇게 진단하고, 의사들은 엄마의 양육과정을 확인하며 문제 삼는다. 

어쩌면 그들의 판단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아팠다. 왜 수상한 늙은 여자들이 내게 관심을 퍼부을까? 그 유명한 시인, 필로메나 기니, 제이 시, <크리스천 사이언티스트>지 여자 상사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날 옆에 두려 했다. 보살피고 영향을 주어서 자기를 닮게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무엇이 진짜 원인이었든, 어디서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립감은 그녀를 또 한 번의 벨자(종 모양 유리그릇)에 가두지 않았을까. 


퇴원을 앞두고, 엄마는 지난 일이 나쁜 꿈이었던 것처럼 행동하자고 한다. 

"나쁜 꿈.

 벨자 안에 있는 사람에게, 죽은 아기처럼 텅 비고 멈춰버린 사람에게 세상은 그 자체가 나쁜 꿈인 것을."

"내가 돌아갈 대학의 브리지 게임을 하고 소문에 대해 떠들고 공부하는 여학생들과, 벨사이즈의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그 여학생들 역시 어떤 종류의 벨자 밑에 앉아 있는 것을."


결국 퇴원하지만, 그녀는 달라지지 않았다. 

"예전부터 퇴원할 때는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을 알고 확신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내가 '분석'되었으니 모든 게 분명해질 터였다. 그런데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물음표뿐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작가 자신일 것이라는 진부한 오해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문학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오해인데다가,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입을 막는 부당한 도구가 될 수 있으므로. 

그러나. 

이 소설이 너무도 명백히 자전적 소설로 보인다는 것에, 깊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니까, 에스더는 가공의 인물이지만, 

나는 그녀가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퇴원 후 주어졌던 십년은 그녀에게 무엇이었을까. 

축복이었을까. 재앙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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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광인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무려 70년의 세월이 걸려 만들어진 옥스퍼드 영어 사전. 

현대 학자들에 의해, "남녀 성차별주의, 인종 차별주의 및 야단스럽고 케케묵은 제국주의적 태도"로 비판받기는 하나, 

훌륭한 사전이며, 쉽게 이룩할 수 없는 대단한 성취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 사전을 편찬하는데 큰 공을 세운 머리와 마이너, 그리고 또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대와 열정과 아이러니가 담겼다. 


교수, 제임스 머리: 

타고난 공부광. 열다섯 살에 라틴어는 기본이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그리스어를 습득하고, '아는 것' 자체를 위한 공부를 계속한다.

그가 직접 쓴 글에 의하면, 로망스어(이탈리아, 프랑스 등), 프로방스어(포르투갈 등), 튜턴어(네덜란드), 플라망어(독일, 덴마크), 켈트어 등등을 할 줄 안다고. 

가난 때문에 열네 살에 학교를 떠나야 했으나 계속된 공부로 1869년 언어학회의 평의회 회원이 되고, 1878년 옥스퍼드 사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광인,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선교를 위해 실론으로 간 미국인 선교사 가정에서 탄생. 생모와 형제들 대부분이 이른 나이에 사망.

훌륭한 교육과 여행, 다양한 문학과 신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 덕분에, 일찍이 여러 나라 언어를 습득. 

열세 살 때 원주민 여성들을 상대로 한 '외설스런 생각'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고 섹스와 죄책감이 결합되어 평생 고통스러웠다고 후일 고백한다. 

열네 살, 부모에 의해 귀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무난하게 의사가 되어, 남북전쟁이 벌어지던 1864년 군의관으로 입대한다. 

그 후, 광기가 전면적으로 드러난다. 

육탄전으로 붙어 싸우는 잔인한 전투, 열악한 의료 상황, 그야말로 "미친 전쟁"이 그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 존경받는 삶은 세 줄로 요약했으나, 실패한 삶은 간단히 요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느낀다. 실패란 이렇게도 매력적인가. -


군의관인 마이너는 명령에 의해 아일랜드 탈영병의 얼굴에 낙인을 찍어야 했고, 그 후 아일랜드인에게 보복 당할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사건 직후에는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던 마이너는, 그로부터 몇년 뒤 총을 상시 소지하기 시작하고, 매춘굴의 단골손님으로 각종 성병에 걸리게 된다.

군에서 강등당한 후, 그는 두통과 현기증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1868년 그의 정신 이상에 대한 확실한 진단이 나와 강제 퇴역하게 된다. 

유럽을 여행하다 매춘이 쉬운 런던의 빈민가에 머무르던 중, 지나는 행인 조지 메리트를 살해하고, 정신이상이 인정되어 브로드무어 수용소에 구금되게 된다. 

망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침입자를 주장하며, 밤새 어린 소년이 괴롭힌다는 등의 망상은 물론, 사회의 부정부패가 자기 때문에 벌어진다는 망상까지. 

구금 이후의 그의 삶 48년 중 47년간을 국가가 운영하는 수용소 몇 곳에서 보내게 된다. 


세대를 뛰어넘어 칭송받는 옥스퍼드 사전의 편집자 머리와, 수용소에 구금된 정신이상자 마이너.

이들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엔 옥스퍼드 사전이 있다. 

사전을 만드는 과정, 사전에 대한 학자들의 열망, 그렇게 만들어진 사전의 성취 등이 이야기될 땐 흥분과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옥스퍼드 사전의 특별함은, 다른 사전과는 달리 각종 문서에서 인용문을 발췌해 어휘의 뜻을 정의한다는 것이다.

"영어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심지어 그 모든 것을 설명하는 여러 문장의 인용문이라니. 불가능해보이는 목표는 결국 성취된다.

"빅토리아 시대는 위대한 사람들과 위대한 비전과 위대한 성취가 넘쳐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의 노력으론 불가능하기에 보수를 받지 않는 아마추어 수백 명, 바로  '자원봉사자'가 필요했다. 

머리는 적극적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수용소에서 그 소식을 접한 마이너는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사전을 만들기까지의 우여곡절도 매우 흥미로울뿐 아니라, 그들의 열정도 놀랍다. 때로는 반어적 의미로. 

"하나님이 영국인이라고 생각했던 런던의 언어학회 사람들은 하나님이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기본장치로서 영어의 보급을 허락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하나님이 영어를 전세계에 파급시킨 뜻은 전세계에 퍼진 기독교의 성장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영어와 기독교를 동일화한 것은 아주 간단한 일로 그것은 세상의 선을 독려하기 위한 공식이었다."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마이너는 사전 제작에 몰두하게 된다. 사전 제작은 그에게 곧 "사회의 일원"임을 의미했으므로. 

그 이유 때문일까. 옥스퍼드 사전 제작에 큰 공을 세운 광인-으로 알려진 사람-은 한 명 더 있다. 닥터 피체드워드 홀. 


머리는 처음엔 마이너의 상황을 몰랐지만, 알게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교류하며 친분을 쌓는다.

또한, 그는 옥스퍼드 사전에 대한 홀과 마이너의 공을 치하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마이너는 1902년 끔찍한 자해를 저지르는 등 병은 더 깊어가고, 여러사람의 도움 끝에 1910년 고국으로 돌아가 그곳의 수용소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여전히 정신병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 당시보다는 -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 환자에 대한 대우, 치료, 병의 호전 등이 다르다뿐.  

저자는 아이러니한 사실에 주목한다. 

만약 마이너가 좋은 치료를 받았다면 사전 편찬 작업에 그렇게 열심이진 않았을 것이라는 점.

그의 편집증이 치료되거나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었다면, 그가 그렇게 몰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 

"마이너에게 사전 편찬을 위한 인용문은 약이었고, 인용문 작성 작업은 치료과정이었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그가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사전 편찬에 그토록 집착하게 된 데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 그는 정신 이상자였는데, 그것이 우리에겐 다행스러웠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잔인한 아이러니다. 그 생각을 하면 인생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 느껴진다."


책은 풍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되, 합리적 추론과 저자의 상상력이 결합되어 독특한 결과물이 되었다. 

(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저널리스트가 쓴 소설이라는 점 역시 그 독특함에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 전반에 걸쳐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의 생각은 의도가 있든 없든 드러나고 있지만, 

교수와 광인, 즉 머리와 마이너가 굉장히 유사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마이너가 돌이킬 수 없이 깊이 미쳐 있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을 제외하면 두 사람의 조건은 똑같았다."

"여러 가지 비슷한 요소에다가 수염까지 더해져서 두 사람이 마주섰을 때, 낯선 사람을 만난 게 아니라 거울 속의 자기를 보는 것 같았다."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본 사람이 있다면, 두 사람의 환경이 이상하게도 양쪽으로 대칭을 이룬다는 사실에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 모두 어마어마한 책더미에 파묻혀서 오로지 숨겨진 지식 탐구에만 온 정신을 쏟고, 매일 폭풍우처럼 밀려들어오는 종이와 잉크의 홍수 속에서 유일한 배출구는 서신 왕래뿐이란 점에서 말이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이 결합해 만들어진 패기 넘치는 소설이다.

인류의 역사적 쾌거가 된 사전을 만들 수 있게 한 시대의 열정, 그 시대의 불운아, 그 불운으로 이룩한 성취 등이 커다란 아이러니를 이룬다.

내가 느끼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뜻밖에도, 저자가 마이너의 손에 불운하게 죽어야만 했던 조지 메리트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이 책을 그에게 바치고 있다. 

"예상치 못한 때에 그가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여기 나오는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이 이야기도 결코 하지 못했으리라." 


<교수와 광인 -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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