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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세계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스티프stiff는 "딱딱한" 상태, 즉 사후경직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시체를 가리키는 말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렇다. 죽음 그 이후의 이야기. 부제는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이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책에 죽음 이후의 '삶'?
책을 펼치고 곧 의문이 풀린다.
경악할 만한 이야기들을 독특한 유머로 서술한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과학적인 이야기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끔찍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해, 끝내 끔찍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그 이상은- 생각해봐야 할 소재를 던져준다.
우리는 분명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봐야할테고, 적어도 나의 죽음은 맞이할 테니까.
어떤 이들은 죽은 사람에게 매장이나 화장 이외의 다른 것을 하는 행위를 불경스럽게 보기도 하고, 그 이야기조차 꺼려하지만,
저자는 죽음에 대한 과학에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가치가 있음을 주장한다.
"사체들은 지난 2,000년 동안 자발적으로 또는 자기도 모르게 과학이 가장 대담한 한 걸음을 떼는 과정에 참여해왔다"고.
"사체는 우리의 슈퍼 영웅"이라고.
사체는 인간 대신 수술, 교통사고, 낙하, 총알과 폭탄 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과학을 발전시키고, 더 나은 기구와 안전장비들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사체 대신 다른 것이 대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나은 대안이 되진 못한다고.
가령, 내시경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면서 최소한의 절개만을 통해 수술하게 되었고, 따라서 보다 상세한 해부학적 지식이 필요하게 됐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모든 걸 벗겨내 눈앞에 펼쳐놓고 보았"다면,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는 것.
사체를 해부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연습을 해선 안되기 때문에 필연적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해부학의 정보가 축적되었다고 해서, 책과 도제식 교육에만 의존해 의학을 배우게 된다면,
그들의 첫 연습이 곧 실전이 될 수 있다. 이는 위험하다.
해부는 기원전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지지만, 18~19세기까지도 해부학자는 사형집행인과 같은, 실은 더 나쁜 부류로 비쳤다고 한다.
해부는 죽음보다 더한 처벌로 여겨졌고, 실제로 1752년 영국에서는 해부를 살인자들에게 내리는 형벌로 집행하기도 했다고.
그 인식은 지금도 남아있다.
사람들은 매장이 해부에 비해 덜 소름끼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체가 구더기에 덮여 있다가(유충들의 식사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린단다), 서서히 액화되어 가는 과정은 결코 해부보다 아름답지 않다.
보존처리도 이를 막진 못한다. 단지 장례식을 위해 그 과정을 유예시킬 뿐, 결과는 똑같다.
매장의 대안으로 유행(?)한 화장은 편견과 달리, 자연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시신을 정말 흙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냉동건조를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심장이 뛰는 한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제 심장이 단지 연료 펌프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심장이 뛰는 사체' 개념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고.
이로서 생명을 살리는 장기 기능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산 채로 장기를 적출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거의 전적으로 근거가 없다."
('거의 전적으로'가 마음에 걸릴 수 있으나, 본문에는 그 두려움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을 말하더라도 장기 기증 등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저자의 주장은 선명하다.
"우리는 생물학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시작과 끝에, 태어나고 죽을 때 기억하게 된다. 그 나머지는 그 사실을 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자신의 시신처리를 두고 세밀하고 복잡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필시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럴 것이다.
(중략) 즉 어떤 면으로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 있기 위한 방편이다."
장기 기증을 마친 사체를 보며 저자는 말한다.
"그녀는 아픈 사람 셋을 낫게 해주었다. 그들이 지상에서 머물 시간을 더 늘려주었다. 죽은 사람으로서 이 정도의 선물을 할 수 있다는 건 경이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에도 해내지 못하는 일이다. H 같은 사체는 죽은 사람들의 영웅이다."
그녀의 호소는 사뭇 감상적이면서도, 동시에 논리적이다.
"심장과 간과 콩팥의 기증을 기다리며 줄을 선 사람이 8만 명이나 되고 그 가운데 16명이 매일 죽어가고 있는데, H의 가족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기증을 거절하고 그 장기를 불태우거나 썩어가게 버려두기를 택한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놀랍고 사무치게 슬프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외과의사들의 수술칼을 받아들이지만, 낯선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서는 그러지 않는다."
비행기 사고에서 제1의 사망원인은 화재라고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사고에서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별이라고.
성인 남성의 생존 확률이 가장 높다. 저자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밀치고 탈출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인간에게, 우리는 이타심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읽다보니 적응이 되기도 했으나, 끝내 몸서리처지는 부분이 없진 않았다.
나의 책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처음으로 내 말을 막았다. 어우, 하지마. 나 그런 이야긴 아직 끔찍하거든?
그럼에도, 훌륭하게 잘 씌어진 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죽음으로 이야기하는 생명에 관하여.
샤먼 앱트 러셀의 <배고픔에 관하여>가 떠오르기도 했다.
주제도, 서술 방식도 판이하게 다르지만,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윤리적 각성을 이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