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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저자의 결론은 뭘까.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 물론 가능하지만, 가난한 행복의 허구에는 빠지지 않는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다양성 받고.
시원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행복은 전적으로, 철저히 다른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다. 가족, 친구, 이웃, 게다가 우리가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무실 청소부까지도 모두. 행복은 명사도, 동사도 아니다. 접속사다. 연결 조직."
여행은 네덜란드에서 시작한다.
마리화나가 허용된 네덜란드에서 저자는 생각한다.
만약 인체에 무해하고, 부작용이 전혀 없는 기계가 있어서, 뇌를 자극하는 것으로 쾌락을 느낄 수 있다면, 이용할 것인가.
아니오, 를 택한다면, "우리는 행복을 성취하고 싶어 하지, 그냥 행복을 경험하기만 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네덜란드인들은 무슨 일에도 관용을 베푼다. 심지어 비관용에도 관용을 베푼다."
"관용은 훌륭하지만, 쉽사리 무관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 다음 목적지는 스위스. 완벽한 일 처리, 어딜가나 청결한 스위스.
"그(쇼펜하우어)의 믿음처럼 행복이 정말로 불행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라면, 스위스인들이야말로 행복해야 마땅하다."
"프랑스에 와인이 있고, 독일에 맥주가 있다면, 스위스에는 권태가 있다. 그들은 권태를 완벽하게 다듬어 대량생산 했다."
저자가 만난 스위스인들은, 행복의 요소로 자연과의 깊은 유대감을 꼽는다.
밤 10시 이후 변기를 내리거나 일요일에 자기 집 잔디를 깎는 것이 불법인 나라, 하지만 자살이 합법인 나라.
국민행복지수는 1973년 부탄의 왕축 국왕이 최초로 퍼뜨린 개념이라고 한다. 부탄에서는 국가가 행복을 관리한다.
그곳의 누군가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가까이 하기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난하지만 효율과 생산성의 신에게 무릎을 꿇지는 않는" 나라, 부탄.
"미국에는 행복한 사람이 거의 없지만, 모두들 끊임없이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부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하지만,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나라에는 자기 성찰이 없다. 자기계발서도 없고, 안타깝게도 실존적인 고뇌도 없다."
더 나은 세상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고, 가짜 행복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알지 못해도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탄 사람들에게 행복은 집단적인 노력을 뜻한다."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의 행복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행복은 관계 속에 있어요."
이상적으로 보이는 나라만 찾아가지 않는다. 다음 나라는 카타르.
"번쩍거리는 졸부들"의 나라.
"석유와 천연가스라는 복권에 당첨"되자 겨우 50년전 고기잡고 진주잡던 일일랑 깡그리 잊고 온 세상 사람을 카타르인과 그 외 "하인"으로 나눠버린 나라.
저자가 카타르인을 만나기까지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 특별한 사람을 만나자는 게 아닌데. 미국에서 미국인을 만나고, 한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듯, 카타르에서 카타르인을 만나려고 한 것 뿐인데도, 부탁을 받은 아랍인 친구는 난색을 표한다.
잭팟. 그들은 전보다 행복해진걸까.
"예전에 카타르 사람들의 삶은 문화를 가꿀 수 없을 만큼 가혹했다. 지금은 문화를 가꾸기에는 삶이 너무 편안하다."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은 타인이다. 그럼 돈의 역할은 뭐지? 돈은 우리를 타인에게서 고립시킨다."
다음 국가는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흔히 따뜻한 나라를 낙원으로 상상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추운 나라가 더 행복하다고.
"우리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협력한다. 처음에는 순전히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부분은 흐릿해지고 협력만 남는다. 우리가 남을 돕는 건 그럴 만한 능력이 있거나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답을 받으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이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하나 있다. 사랑."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이 요상한 달나라 같은 땅에서 훌륭하게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고통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는 데에도 성공했다. 심지어 행복해지기까지 했다."
행복한 사람들만 보다 보니 질려서 찾았다는 몰도바.
새치기와 부패, 불신이 만연해있다. 학생은 교수에게 돈을 주고 낙제를 면하고 학위를 산다.
신뢰란 찾기 힘들다. 슈퍼마켓도, 은행도, 이웃들도 믿지 않는다.
몰도바인은 불행의 이유로 절대적 빈곤을 꼽는다. 저자는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함을 주장할 생각은 없으나, 그 역시 사실임을 주시한다.
"문제는 몰도바인들이 자신을 나이지리아인이나 방글라데시인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을 이탈리아인이나 독일인과 비교한다. 몰도바는 부자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다. 이런 처지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개인적 측면과도 직결해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몰도바의 불행의 이유로 정체성의 부족을 꼽는다. 루마니아인도 아닌, 러시아인도 아닌 어정쩡한 몰도바의 처지.
"몰도바인들이 불행한 건 자기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존재는 행복의 선행조건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저자는 몰도바에서 비교 우위의 행복감조차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한결 불행해진다. 그가 느낀 교훈은 이렇다.
교훈 1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라는 태도는 삶의 철학이 아니라 정신병이다. 비관주의와 나란히 붙어 있는 병. 다른 사람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다."
교훈 2 "가난, 즉 상대적인 가난은 흔히 불행의 핑계가 된다. (..) 하지만 그들이 불행한 건 가난뿐만 아니라, 경제문제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종교가 곧 생활이고 문화인 태국.
내세의 세계관은 시야를 멀리로 확장시킨다. 지진해일로 수천명이 사망해도 정부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지만,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다면, 갑자기 삶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삶은 그냥 한바탕 놀이일 뿐이다."
그 외 영국, 인도, 미국이 나온다.
부 혹은 그 어떤 조건도 행복과 필요충분조건을 맺고 있지 않다.
단지 국가와 사회는 그 가망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는 거고, 개인은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일 테다.
책의 결론은 서두에서 이미 말했다. 이것은 저자의 결론.
본문에 인용되는 바에 의하면, 샤르트르는 완전히 반대되는 말, "지옥이란 바로 타인"이라 했다고.
뻔한 말이지만,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나는 샤르트르가 안쓰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