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호모 라피엔스homo rapiens란, 약탈하는 사람.

현생 인류 종을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를 '약탈하는' 이라는 뜻의 rapacious로 바꿔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놀랍고, 날카롭고, 논쟁적인 책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자유의지가 있으며, 고로 선택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은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이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과학이 아닌 종교로부터 기인했음을, 

그것도 휴머니스트들이 맹렬히 비난했던 기독교 신앙에서 나왔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휴머니즘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이며, 진보는 환상임을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생물 종은 변화하는 환경과 무작위로 상호작용하는 유전자 조합에 불과하며, 자기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 생물 종은 실존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흔히, 동물은 태어나 짝을 찾고 음식을 구하다 죽지만, 인간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격체이며, 우리의 행동은 스스로 선택에 의한 결과이며, 의식과 자아와 자유의지가 있어서 다른 모든 생명체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그러나 이는 오류일 뿐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고. 

"우리는 이성이 우리의 삶을 이끈다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성 그 자체도 단지 '의지'가 추동하는 힘에 밀려 움직이는 하인이다."

여기서 의지란, 계획하고 목적에 따라 의도한다는 의미의 의지가 아닌, 생명을 추동하는 근원적이고 맹목적인 에너지를 의미한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인류'의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도 없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인생은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각 인생들의 알 수 없는 총합을 뜻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삶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의 삶은 비루하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인식과 지각은 의식하는 능력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자각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감각과 인식은 동식물의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는 자신이 일관되고 단일한 개체라고 믿으면서 행동한다. 하지만 우리는 분절된 것들의 연속체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영속적인 자아'라는 생각을 없앨 수는 없지만, 실은 영속적인 자아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거룩한 인간에 대한 환상은 역사적으로 수없이 깨져왔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살해의 테크닉도 발달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희망이 자라면서, 대규모 살해도 증가했다."

저자는 기술이 진보해도 인간 본성의 취약함은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다. 


변하지 않는 정의란 없음을 주장한다.

"소크라테스 철학과 기독교는 정의란 시간을 초월하며 영원하다는 생각을 권장한다. 그러나 사실 이 생각보다 더 영원하지 않은 것도 별로 없을 것이다."

"정의는 관습의 산물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다면, 인간의 여러 본능들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안전을 갈구하지만 쉽게 지루해한다. 평화를 사랑하지만 폭력을 열망하기도 한다. 생각하기를 원하지만 생각이 가져오는 불안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이런 모든 욕구를 다 충족할 수 있는 삶은 없다. 다행히, 철학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자기 기만이라는 선물 덕택에 자기 본성을 모른 채 번성한다."

"몇몇 사람들이 자유를 추구한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자유를 원할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날아다니는 물고기가 있다고 해서 나는 것이 물고기의 본성이라고 믿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루소에 대한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논평. 


이어지는 통렬한 인식. 

"호모 라피엔스는 많은 생물 중 하나일 뿐이고, 딱히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머지않아 인간 종은 멸종할 것이다.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지구는 회복될 것이다. 인간 종의 마지막 흔적이 사라진 후, 인간이 파괴하려고 했던 다른 많은 종이 다시 번성할 것이다.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종들도 함께 번성할 것이다. 지구는 인간을 잊을 것이다. 삶의 놀이는 계속될 것이다."


"인간의 의지에 의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의 근저에는 자신의 필멸성을 부정하려는 마음이 깔려 있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의 주장을 따라가다가, 이것은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환상에서 벗어나 진실을 대면하는 것.

인간 본성의 취약함을 똑바로 바라보고, 경계하는 것. 그리고 좀 더 가벼워지는 것.


"오늘날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좋은 삶은, 과학과 기술을 한껏 활용하되, 그것이 우리에게 자유롭고 합리적이며 온전한 정신을 주리라는 환상에는 굴복하지 않는 삶이다. 평화를 추구하되, 전쟁 없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은 갖지 않는 삶이다. 자유를 추구하되, 자유라는 것이 무정부주의와 전제주의 사이에서 잠깐씩만 찾아오는 가치라는 점을 잊지 않는 삶이다. 

 좋은 삶이란 진보를 꿈꾸는 데 있지 않고 비극적인 우연성을 헤쳐 나가는 데 있다. 우리는 비극의 경험을 부정하는 종교와 철학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는 '행동'이 주는 위안에 기대지 않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니면, 너무 무식하고 게을러서, 그런 삶을 꿈꾸지도 못하는 것일까?"


"인간은 세상을 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일은 아니다. 세상은 구원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세상에 살게 될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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