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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 사이행성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에 큰 울림을 느꼈다. 그녀가 쓴 소설이 나온다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21개의 단편 거의 모두에 걸쳐 살색이 찬연하다. 깊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슬픔이 반갑다. 깊은 슬픔을 마주한다는 것은, 때로 한없는 희망으로 향하는 방법임을 알고 있음으로.
소설을 생각한다. 왜 인간은 허구의 이야기를, 그것도 끔찍한 이야기마저 지어내며 울고 사랑하는가.
이야기가 되었을 때, 더이상 이것은 타자의 일이 아니다.
여자들이라는 단서도 필요없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지독한 슬픔에 젖어 숨조차 쉴 수 없는 누군가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 모두의 슬픔이 아닌가.
저자의 이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페미니스트가 쓴 소설이라는 꼬리표는 따라 다니겠지만, 그 어떤 배경을 떠나서 소설 자체로서도 매우 훌륭했다. 꼭 성뿐만이 아니라, 인종, 빈부, 교육 등 그녀가 관심을 기울이는 모든 주제들이 총망라된다.
<언니가 가면 나도 갈래>의 "피터 씨를 겪고 살아 돌아온 소녀들"은 거액으로 보상받지만, 그것은 "우리 삶의 가치"를 되돌려 주지 않는다.
<물, 그 엄청난 무게>의 비앙카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무엇으로 평생 버림받고, 희망은 매번 좌절된다.
이 소설집의 제목이 된 <어려운 여자들>은 헤프거나, 불감증이거나, 미치거나 한 등의 여자들을 정의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 모두는 누구였는지.
<플로리다>의 다르고 또 같은 삶들. 이 짧은 단편에 여러개의 시점이 펼쳐진다.
누군가를 가난하다고, 비만하다고,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무시하며 그것으로 살아갈 동력을 얻는 사람들.
차별하다 못해, 젊고 건강한 백인의 노동을 질투하며, 동시에 불편함을 느끼는 아이러니.
<라 네그라 블랑카>는 '흰 피부의 흑인 여자'를 뜻하는 스페인어라고 한다. 많은 단편에서 옅은 피부색을 지닌 혼혈 여성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백인 처녀로 살아가는 것이 "종류를 막론하고 흑인 처녀로 지내는 것보다 무조건 훨씬 쉬웠"으므로, 그렇게 살아간다.
대체 그 차이는 뭘까. 백인 같은 흑인, 흑인 같은 백인. 이미 사장되어야 마땅한 그 의미없는 기호.
섬뜩하기까지 한 <우리 아버지의 죽음에 부쳐>는 그들만의 사랑, 그들만의 추모가 그려진다.
어머니의 과도한 기대에 <나쁜 신부>가 되어버린 미키. 그 타락은 예정된 일은 아니었는지.
"가망이 없는 연애를 할 때 제일 신나"하는 리베카와 사제관에 머물 용기도, 벗어날 용기도 없는 미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방 결혼>은 씁쓸하다. 단 한 장 반으로 말하는 사랑과 결혼.
<어떤 격려>는 영화 [룸]에서 주인공의 절규를 떠올리게 한다. 착한 여자가 되라는 엄마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쌍둥이에 대한 모티프는 많이 등장한다. <카인의 표식>에서 그녀의 남편(들)은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은 일란성 쌍둥이다.
<어떻게>의 한나와 안나 역시 쌍둥이다.
서로를 교감할 수 있는 쌍둥이라는 설정은 약한 자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잃은 상심도 여러번 변주된다. 다행히도, 모두 치유를 향해 간다.
피부색 때문에 디트로이트에서 왔냐는 질문을 수십 번 들어야 하는 <노스 컨트리>의 케이트는 매그너스를 만나 치유되기 시작한다.
<끝까지 남김없이 부서져라>의 나타샤는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다 뜻밖의 아이를 만나고 치유의 여행을 결심한다.
<나는 칼이다>는 쌍둥이와 상실, 그 모두 다 등장한다.
그녀들은 더없는 일체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우리한테 서로 뭔가 특별한 교감을 나누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을 한다."
환상적인 분위기의 소설도 있었다. 돌 던지는 사람과 유리 아내의 사랑인 <유리 심장을 위한 레퀴엠>,
빨간 비행기 한 대로 날아가 태양을 없애버린 광부 하이럼의 이야기 <어둠의 희생제물>. 은유와 상징이 가득하다.
"우리 세계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다른 세계에 끔찍한 불균형을 초래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
세상을 바로잡는 것은 그들의 탐욕이 아니다.
<고귀한 것들>은 탐욕으로 미국이 갈라져 버린 시점을 상정한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 존 그레이는 우리가 가진 "거룩한 인간"이라는 환상을 깨고자 했다.
우리의 악한 근성마저 똑바로 직시했을 때, 최악을 예방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에세이든, 소설이든, 인간의 이해심을 기대하고, 약한 자들의 연대를 촉구하는 록산 게이.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