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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아웃 보이 ㅣ 문지 푸른 문학
정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평점 :
문학과지성사 서평단을 신청하여 책을 증정받아 읽게 되었다.
낯선 제목, 선명한 듯 희미한 듯 모호해 보이는 표지 속 소년의 얼굴, 이 두 가지가 책을 읽기 전 시선을 사로잡는다.
책을 읽으면서는 독특한 분위기가 글 전체를 휘감는데,
그 분위기는, 모자이크를 한 것처럼 이목구비가 희미한 포커스아웃 보이인 진이와
세상의 속도에 한참 떨어져 엇박자를 놓는 싱크아웃 걸 유리라는 등장인물의 설정에 기인하는 듯 하다.
"다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내 얼굴을 나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건,
인간에게는 내 얼굴을 봐주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되겠지."(116쪽)
사람의 인상을 이야기할 때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고 흐릿하다는 말을 하기는 한다.
그런데 이것이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모습이 그렇다는 게 어떤 얼굴일지 쉽사리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포커스아웃 보이인 진이처럼 외적으로 나타나는 '얼굴' 그 자체의 가치를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내 얼굴이 나를 대변하는 하나의 가치가 되듯,
결국 나를 둘러싼 관계속의 나를 외면해버릴 순 없는 것이다.
"나와 세상에 약간의 시차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시차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내 세계가 완전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129쪽)
싱크아웃 걸 유리의 목소리를 통해서는 '세상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살아가는 '개인의 시간'을 생각해보았다.
세상의 시간에 맞춰 사느라 나라는 존재를 지우는 것보다
나와 세상의 시차를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존재를 새로이 확인하는 것이 개인의 '성장'이지 않을까.
이처럼 작가는 진이를 통해서 '관계'를 이야기하고, 유리를 통해서 '성장'을 이야기해나간다.
이 책은,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청소년 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포커스아웃 보이와 싱크아웃 걸의 걸음이 궁금하여 그들과 계속 발맞추며 책을 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세상과 정면으로 대면하고 싶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163쪽)
진이와 유리는 앞으로 마주하게 될 수많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자신의 포커스아웃된 얼굴과 싱크아웃된 속도에 여전히 좌절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정면으로 대면하고 싶다는
그 무모하고도 무한한 가능성을, 그들과 발걸음을 같이한 독자로서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