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처음 읽는 책인데, 여기에 쓰인 문장들을 읽으며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어쩐지 저자 이름이 익숙해서 확인해봤더니, 그에게서 예전에 맞춤법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줌(ZOOM)으로 온라인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이메일로 받은 수업 교재를 파일집에 넣어서 잘 정리해뒀었다. 바로 아래와 같이.





문장이 익숙한 건 당연했다. 그때 수업 자료로 받았던 글이 고스란히 책에 실려있었으니까. 그러니 기시감이 아니라 같은 글인 거다. 책 본문에서 강의에 필요한 내용만 발췌해서 여기에 실었나 보다. 책 날개에 수록한 작가의 약력은 다시 봐도 신기하다. 서울대 금속학과 졸업 →  제련소  취업 → 학부 국문학과 편입 후 동대학원 졸업 → 현재는 시인 겸 대학 교수(사실 교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계속 국문학 강의를 한다고 한다). 비슷한 사례로 공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 강신주 씨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흔한 이력일 수는 없으니까. 


(혹시 내가 들었던 강의를 듣고 싶으신 분은 '말과활아카데미' 홈페이지에서 강사 이름인 '정제원'을 검색해보시길 바란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글쓰기와 맞춤법을 주제로 하는 저자의 강의가 열린다. '말과활아카데미'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신규 강의를 안내하는 이메일을 보내준다. 인문학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플랫폼이다.)


우리말 맞춤법을 다룬 책을 살면서 많이 읽었지만, 오로지 '띄어쓰기'만을 다룬 책은 이번에 처음 읽는다. 이 책 한 번 읽고, 나의 글쓰기에서 '띄어쓰기'가 완벽하게 해결될 수는 없겠으나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국어 문법에 관한 지식을 쌓아야 하고, 국어사전을 가까이 해야 하지만 독서 습관을 바꿀 필요도 있다. 책을 읽으며 내용만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고 띄어쓰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도 유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띄어쓰기를 제대로 지킨 좋은 글들을 눈으로 익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9쪽)


"곁에 두고 있는 책 중 하나를 집어들고 읽으며 어떻게 띄어쓰기를 하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국어사전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 단어라고 생각했던 말이 실은 두 단어이고, 두 단어라고 생각했던 말이 실은 한 단어였다는 사실을 국어사전에서 깨닫게 되는 순간, 띄어쓰기의 대원칙은 정말로 단순해진다." (11쪽)


지은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문법은 암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익숙해져야 하는 대상이라는 말을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당연히 완벽하진 않겠으나 우리가 오늘날 최소한의 맞춤법을 지키며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자의든 타의든 수없이 많이 글을 읽고 써오면서 문법을 체화한 덕분일 테니까. 더 나아가 아예 처음부터 맞춤법을 어느 정도 의식하면서 읽는다면 더 좋다. 물론 사전과 함께 한다면 최상이다.




요즘엔 종이 사전이 잘 나오지 않는데, 종이사전만의 손맛을 느껴보고 싶어서 작년에 질렀다. 어릴 땐 하도 많이 봐서 사전이 시꺼매질 정도였는데, 요즘엔 네이버를 이용하다 보니 아직도 새 책 같다. 그래도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앞으론 열심히 이용해야지. 사전에 관해선 온/오프라인 포함해서 전달하고 싶은 정보가 있는데, 할 얘기가 많을 거 같으니까 그건 다음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맞춤법을 다룬 책이라지만, 내가 봤을 때 시중에 나와있는 대중서의 대다수는 보통 '단어'만을 다룬다. 아니면 이 분야 최고의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이오덕 선생의 『우리 글 바로 쓰기』(5권 다 갖고 있다) 처럼, 내가 쓴 문장을 교정할 수 있게 도와준다던가. 내가 검색을 잘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우리말 문법을 전체적으로 쉽게 설명하는 책은 찾기 힘들었다. 


'문법'이라는 것 자체가 대중의 눈높이에서 쓰긴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일까. 그런 점에서 『(글쓰기를 위한) 4천만의 국어책』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을 상당히 만족하는 책이다. 사실 내가 이걸 사서 읽었던 당시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꼈다. 그때도 쓰기와 읽기를 좋아했지만 맞춤법에 크게 관심은 없었던 듯하다. 완독을 했는지 못 했는지도 기억 안 난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이만한 책이 드물다.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까 절판됐는데 ebook은 볼 수 있다. 2006년에 출판됐으니 오래됐지만, 그 사이에 국어 문법의 틀이 크게 변하진 않았을 테니 지금 봐도 상관 없지 않을까 싶다.




이 책 역시 맞춤법을 전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오랜 경력을 지닌 출판편집자가 썼기에 더 신뢰가 간다. 나도 한때 출판편집자가 되고 싶었는데. 몇 년 전에 사놓고 완독을 한 번도 못했지만, 이 책의 특성상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으면 된다. 괜히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려고 욕심 부렸다가 도리어 얘한테서 멀어진 듯하다. 앞으로는 곁에 두고 알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만 봐야겠다.




산 책과 빌린 책이 섞여있다. 내가 원래는 좀처럼 특정 분야 책을 몰아서 읽는 타입이 아닌데, 어째서인지 요새는 이 분야만 계속 읽는다. 연말의 나는 아무래도 대단히 '언어에 진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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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2-13 0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종이 사전을 찾는 손맛이 있는데. 저도 사전이 그저 책꽂이에 꽂혀만 있네요. 새삼 사전을 가까이 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언어에 진심인 꾸준하게님의 추천책들에서 많이 배웁니다. 공부에 깊이가 느껴집니다.

꾸준하게 2022-12-13 09:58   좋아요 1 | URL
깊이는 없어요. ㅋㅋㅋ 그냥 취미 삼아 가볍게 읽을 뿐인걸요. 근데 국어 문법서를 취미로 읽는 비전공자 출신 일반인이라니... 저도 참 특이하죠? ㅋㅋㅋㅋ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