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예전에 읽은『오후도 서점 이야기』 후속편이 책으로 나와 있다고 해서 며칠 전에 같이 빌려왔다. 후속편을 읽기 전에 『오후도 서점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그런데 웬걸. 아예 처음 보는 내용이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오래 지난 것 같지는 않았을 텐데? 다른 책을 먼저 읽느라 독서가 밀려 책을 빌려 놓고도 읽어보질 못하고 그냥 반납해버릴 때가 가끔 있는데 이 책도 아마 그런 경우였나 보다. 책을 빌린 기억은 분명히 있는데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서점을 배경으로 한 다른 소설과 착각했나 보다.
『오후도 서점 이야기』는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서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책 제목만 봐서는 '오후도 서점'이 주 배경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긴가도 서점'과 '오후도 서점' 두 서점 둘 다 이야기의 주요한 배경이다. 오래된 백화점 내 긴가도 서점에서 일하는 문고본 담당 잇세이는 숨은 명작을 찾는 달인이다. 그의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소리소문없이 묻혀 결국은 절판되었을지도 모르는 좋은 책을 베스트셀러로 이끌 정도다.
물론 그가 고른 모든 책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서점원과, (대형 서점도 아닌) 그가 속한 서점의 노력으로 단 몇 권이라도 그런 성과를 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이는 단지 소설 속 판타지만은 아닌 게 실제로 일본에서는 유능한 서점원이 기획한 서점 발(發) 베스트셀러들이 있다고 들었다. 한국 사례는 아직 못 들어봤다. 물론 한국에도 있는데 내가 못 들어봤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잇세이의 눈에『4월의 물고기』라는 작품이 들어온다. 왕년에 유명했던 드라마 작가가 쓴 소설 데뷔작이었다. 하지만 그건 옛날이야기. 현재는 무명에 가까운 작가였지만 작품의 성공을 확신한 잇세이가 마케팅을 기획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긴가도 서점을 떠나게 된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잇세이는 블로거 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서점 사장이 운영하던 '오후도 서점'이라는 곳을 방문하면서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후 이야기는 '오후도 서점'과 '긴가도 서점' 에서 진행된다. 후속편인 『별을 잇는 손』에서는 오후도 서점을 이끄는 잇세이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텐데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기대된다.
2. 앞서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내가 서점에 관한 책이라면 다 좋아하는데, 한때 서점원이었던 적도 있다 보니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보다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오래 일하지는 못했고 지역에 있는 중형서점에서 반년 정도 일했었다. 아쉽게도 『오후도 서점』에 나오는 것처럼 - 출판사와의 긴밀한 공조와 함께 - 특정한 책을 적극적으로 마케팅해서 판매한다든가 하는 경험을 해보진 못했다.
서점에서 내 주된 업무는 매입(새로 들어온 책을 서점의 도서관리 프로그램에 등록하는 일)이었고 그외에는 도서 진열과 안 팔리는 책 반품과 다른 기관에 책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건 우리 서점뿐만 아니라 모든 서점에서 해야 할 필수 업무지만 난 그외에도 더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싶었다. 서점만의 독자적인 프로그램 기획이라든가, 특정한 테마로 책을 큐레이션한 서가를 만든다든가. 안타깝게도 내가 일하던 서점에서는 그런 시도가 전혀 없어서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해보고 싶었는데 그만한 신뢰를 쌓기엔 서점원으로 머물렀던 기간이 너무 짧았다.
사실 그런 경험을 해볼 기회가 한 번 있긴 했다. 내가 서점에서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페친이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에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었다. 그가 운영하던 서점도 지역의 중형 서점이었지만 - 손님으로 직접 가본 적이 있는데 - 내가 앞에서 이야기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페친도 알고 있었지만) 거주지에서 너무 멀기도 하고 당시에 내가 대학원 합격을 받아놓은 상황이라서 감사한 마음으로 사양했다. 대학원이야 휴학하고 갈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내가 과연 좋은 서점원으로 자격이 있는지 자존감이 엄청 떨어져 있어서 굳이 위험부담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서점원으로 서점과의 인연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때가 벌써 7년 전이다.)
그러다가 아마도 몇 달 전인가? 무심코 인스타그램에서 예전에 일했던 서점을 검색해봤는데, 계정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서점원의 계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점 공식 계정이었다. 세월이 가니 여기도 변하는구나 싶었다. 반가운 마음에 내 전 직장의 서점원과 소통을 시도했다. 전직과 현직의 만남. 관심사가 같았기에 대화는 순조로웠고 당장 약속을 잡았다. 약속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만나는 건 쉬웠다. 서점원은 서점에 가면 (쉬는 날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나도 집에서 버스로 1시간만 있으면 갈 수 있었으니까.
둘이 만나 우선 점심을 같이 먹으며 얘기를 들었는데, 그가 들려준 나의 전 직장 이야기가 반가웠다.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젊은 서점원 두 사람이 서점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내가 거기에서 일할 때 하고 싶었던 일도 일정 부분 그들이 하고 있었다. 그는 서점 일에 열정적이었고 자신과 함께 일하는 동료도 그렇다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서점의 앞날이 밝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그는 지금도 SNS 계정에 서점 이야기를 부지런히 업데이트하고 있다. (2대에 걸쳐 운영되는) 내가 초딩 때부터 들락거렸던 그곳이 부디 오래 살아남아줬으면 좋겠다.

여기서 서점을 다룬 책은 『전국 책방 여행기』 한 권 뿐이다. 그런데도 이 글에 책 네 권을 모아둔 까닭은 이 책들의 저자가 서점원 출신이어서다. 나는 그가 작가가 되기 전, 아직 진주문고에 있었(지금은 내가 페이스북을 하지 않지만) 페이스북에서 그를 알고 있었는데, 그가 진주문고에서 서점원으로 아직 일하고 있었을 때 문예지로 정식 등단한 것으로 기억한다. 석류 작가의 브런치에 방문하면 아직 책으로 나오지 않은 이야기도 읽을 수 있다.
이 책도 서점원이 썼다. 앞서 말했던 석류 작가처럼 진주문고 출신이다.(이 분도 페이스북으로 알게 됐다.) 퇴사 후 다른 지역에서 직접 서점을 차렸는데 지금도 그 서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암에 걸린 아내와 떠난 세계여행 이야기다. 진주문고와 책의 저자와 모두 페친이어서 출간 직후부터 책을 알고 있긴 했는데, 아직도 안 읽어봤다. 7년 전에 출간된 책인데 지금도 아내 분과 잘 살고 계시려나.

며칠 전에 도서관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잘 안 보이겠지만 확대해서 보면 '장유서점'에서 추천한 책이라고 되어있다. <10월 우리동네 북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김해도서관에서 이번에 마련한 테마서가다. 책을 추천하는 서점이 달마다 바뀌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무튼 지역 서점과 상생하려는 이런 노력은 훌륭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