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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 -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1월
평점 :
세상에는 다양한 여행책자가 있다. 당장 내가 서평을 쓴 책만해도 몇 권이고, 서평을 쓰지 않은 무수한 여행기가 있다. 보통 여행에세이, 책자를 보면 여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아주 날것의 여행에피소드가 있다. 타 에세이와 달리 여행에세이가 늘 인기가 있는건, 어디를 누가 가던 <여행>이 주는 날것, 생동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책에서 날티가 난다고 해야할까? 글을 못썼다, 작품성이 없다는게 아니라 생동감과 신선함이 느껴진다. 글을 잘 쓰는 작가의 여행기는 유려한 글솜씨로 내용이 더욱 깊이 느껴지고, 신인의 경우 다듬어지지 않은 신선함에 읽다보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은 이제껏 봐온 여행기와 좀 달랐다. 평균 나이 칠십, 네자매가 함께 국내도 아니고 ‘효도관광’도 아닌 유럽을 다녀온 이야기다! 책을 다 보고나서야 ‘어머 이거 1999년에 다녀오셨어?“, ”어머 심지어 미국은 70년대야?!” 무척 놀랐다.
책에선 작가의 뛰어난 글솜씨와 깊이 있는 통찰, 혜안이 느껴진다. 글만 보면 아주 우아하다. 거기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세련됨은 20년 전 다녀온 여행기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러면서 책은 여행기의 ‘날 것’과 ‘여행지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일상’을 놓치지 않는다. 호텔과 레지던스를 이중으로 예약해서 번거롭게 되거나, 날치기를 만나 뜻밖에 고행을 겪는다. 그 상황을 굳이 지우거나 과장하지 않고 사건의 흐름에 따라 적어냈다. 생동감도 느껴지고 안타까움도 생기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책에 날것의 이야기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공감가는 부분은 종교를 떠나 모든 종교적 건물에 들어가는게 좋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무교지만 유럽을 돌아다니며 성당, 바티칸 등지를 엄청 다녔다. “누가 보면 엄청난 천주교 신자인줄알겠다”고 남동생은 혀를 내둘렀다. 평소 종교를 믿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보이지 않는 신을 온전히 믿고 따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그 웅장하고 장대한,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신도들의 음성을 들어왔을 건물들을 보면서 “아, 어쩌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p.362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모든 종교적 건물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산속에 지어진 한국의 고찰들도 그렇지만, 고딕 스타일의 사원들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넓이를, 그리고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갈망을 시각을 통하여 보여주어서 좋다.
/p.8
역마살이 끼어 있는지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일상의 잡사를 훌훌 털어버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나는 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버거운 삶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의 재충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런데 내게는 오랫동안 그게 허용되지 않았다. 직장이 있는데다가 아이가 셋 달려 있었고, 보살펴드려야 하는 어른이 양가에 세 분이나 계셔서 여행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60이 가까워오니 아이들은 커서 떠나고, 어른들은 돌아가셔서 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겨우 만들어졌는데 이번에는 몸이 협조하지 않았다.
이 서문을 읽는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작가는 인후암에 걸려 두 번이나 수술을 받고, 나이가 많았고, 몸도 예전같지 않았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이유가 나보다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기꺼이 타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용기와 다짐에 존경을 표하며, 나 또한 내년에는 꼭,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어디론가 가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