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 목사 독서법 인터뷰
민영진 목사 약력
1940년 출생
2003년 창조문예 시부문 등단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신학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신학석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철학박사)
감신대학교 교수 역임.
현) 재단법인 대한성서공회 총무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던 청소년기
재단법인 대한성서공회 총무 민영진 목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하였다. 감신대학교 교수로 17년간 후학들을 가르쳤고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담당 부총무로 일하다가 2006년 현재 대한성서공회 총무로 4년째 봉사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세계성서공회연합회 학문용 성서 편집위원, 아시아태평양지역 몽골성서 번역 고문, 불교권 독자를 위한 해설성서 집필위원이다. 그는 용두동 감리교회(김한옥 목사)의 소속목사이기도 하다.
목회자(부친 민영호 목사)의 자녀로 성장한 그는 중학교 때 문예반장을 했고, 당시 학교에 마련된 2, 3백 권의 학급문고와 선생님의 추천도서를 열심히 읽었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손에 닿는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다보니, 중학교 2학년 때 <청춘극장>같은 책도 접하였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그는 부친이 읽었던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었고, 대학 시절에는 토머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으며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대학교 시절, 철학을 강의하시던 한 교수님으로부터 <고백록>의 허구성에 대한 강의를 듣고, 얼마 동안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이나 고백록은 독자가 저자에 대해 실망할만한 내용을 넣지 않기 때문에 신뢰할만한 기록이 아니라는 한 교수의 생각이 그에게 영향을 미쳐서, 다른 고백록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백록>을 이야기하던 중, 민 박사는 미국 아퀴나스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친구 선한용 박사(전 감신대 조직신학 교수)가 번역한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를 추천해 주었다(선한용 박사는 그 외에도 <성 어거스틴의 기도>를 편역하였고, <시간과 영원>을 썼다. 신학교 2학년 때부터 어거스틴 사상에 심취한 선 박사는 평생 어거스틴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
민 박사는 대학생 시절,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家)의 형제들> 같은 장편소설들을 읽었고, 신정통주의 신학자로 분류되는 문화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의 <조직신학>을 탐독했다. 그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제기한 문제를 틸리히도 그의 조직신학에서 다루었다. 나는 총신대학교 대학원 시절에 박아론 박사의 지도를 받으며 한 학기 동안 폴 틸리히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 민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10여 년 전 읽었던 틸리히의 글들에서 받은 인상을 떠올렸다. 당시에 나는 한 한기를 끝내면서 폴 틸리히에 관한 소논문을 학기말 리포트(term paper)로 제출한 적이 있었다. 비록 틸리히의 신학적 사고의 틀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철학적 신학’으로 불리는 그의 접근 방식과 학문적 독특함은 흥미를 끌만하였다.
민 박사가 신학대학에서 공부할 때였다. 교과서나 참고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도서구입비를 아버지에게 청구한 적이 있었다. 아마 살림이 넉넉했더라면 사랑하는 자식이 돈 좀 달라는데, 그것도 공부하기 위해 책을 산다는데 선뜻 내줄지언정 야단을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골 교회 목회자였던 아버지는 현금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뜸 아들에게 한다는 말이, “신학을 공부하면 성경 책 하나만 있으면 되지, 달리 무슨 책들이 그렇게 필요하냐? 다른 책들이야 다 한 번 보고 나면 그만인데, 그런 책들은 도서관에 가서 보면 되지 않느냐? 돈 없다. 이거(도서구입 명세서) 치워라!”
민영진 학생은 매우 섭섭했다고 한다. “시골 교회 목회자가 무식해서 그런다고 생각했지요.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네요. 책 많이 읽었고 개인서재 장서도 한 때 4천 권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른 책들 그 수많은 원서들 다들 내 옆을 지나갔고, 그 때 그 때마다 내게 하루 세끼 밥처럼 나를 살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은 다들 지나가 버리고, 어느 신설 신학대학원 도서실에 기증했습니다, 아직도 내 옆에 남아 있는 책은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전서>와 국어사전을 포함한 몇몇 어학 사전들입니다.”
나는 민 박사에게 ‘내 삶을 바꾼 책,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준 책’이 있었는지 물었다.
“목사님께서는 지금 ‘제 삶을 바꾼 책’,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준 책’을 물으셨습니다만, 저는 요람에서 임종 때까지 내 옆에서 계속해서 말해주고 내가 대답하는 상호의사소통이 가능한 책들 중에서 그 중 으뜸은 <성경전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런 책을 말하면서 국어사전을 포함한 몇몇 외국어 낱말 사전을 언급한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낱말이 사람을 바꾸거든요.”
하지만 그에게도 영향을 준 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친구 서인석 교수(전 서강대 총장)의 저서를 통해 구조주의 성서해석에 관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성서 해석에 있어서 일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주의라는 해석의 방법론을 사용하니 문학과 성서가 다르게 보였다고 한다.
구조주의와 함께 독자비평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민 박사는 지난 세기 역사적 비평적 성서연구방법론의 공헌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방법론이 ‘저자의 의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어떤 문서는 저자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독자에게는 저자의 의도보다는 의도 외의 저자의 모든 말도 독자에게 큰 뜻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민 박사는 그가 학생 시절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민 박사는 그가 학생 시절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내가 보낸 편지를 성경 갈피에 북마크(bookmark)처럼 넣어두셨죠. 어머니는 그 편지가 닳을 때까지 보고 또 보셨습니다. 그 편지에는 처음과 끝에 의례적인 인사말이 있고 그 밖의 전하는 소식들이 있지만, 주된 주제는 하숙비를 보내달라는 거지요.” 민 박사는 편지를 예로 들어 아주 단순하게 구조주의의 일면을 설명하려고 한 듯 하다.
시(詩)의 세계를 즐기는 민영진 총무
민 목사에게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 물어보자, 뜻밖의 좋은 책과 러시아의 시인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지금 한참 읽고 있는 책을 말씀드려도 됩니까? 책이라기보다는 분야인데요. 내 친구 한 사람이 오래 전에 나에게 선물로 준 책인데,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읽지 않고 서가에 꽂아두기만 한 책이었는데, 그 친구가 그 책을 나에게 선물했을 때는 내가 마땅히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거나 자기가 읽고 감명을 받은 책이거나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 초에 중국을 두 주 동안 공무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이 책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 책은 도서출판 열린 책들에서 1994년에 출간한 <시의 이해와 분석>(로뜨만·무까르조프스끼 외/ 조주관 편역)이다(동구 및 러시아의 현대시론과 시 분석 논문 중 주요작품을 묶은 연구서인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이 책의 제1부는 시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기초정보를 알려주는 이론적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 특성이나 본질에 대한 글들, 그리고 시인과 시어에 대한 독특한 이론과 러시아 시인들의 시작품에 대한 문학비평가들의 논문을 수록했다. 제2부는 실제 시 텍스트를 분석해 놓은 슬라브 문학연구가들의 논문들이 실려 있다).
민 박사는 이 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두 사람의 러시아의 시인을 소개해 주었다. “이 책은 쉬또젤라찌 총서 6번인데, 러시아 시에 관한 논문 모음입니다. 특히 러시아의 두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끄와 안나 마흐마또바1)에 관한 글들은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들었습니다. 두 시인이 다 소돔과 관련된 시를 썼습니다. 흥미 있는 것은 도스또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에 나타난 한 등장인물의 소돔에 관한 언급이 이 두 시인의 소돔에 관한 시를 해석하는 구실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알렉산드르 블로끄의 ‘뮤즈에게’, 도스도예프스끼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안나 아흐마또바(Anna Akhmatova, 1889-1966)의 ‘롯의 아내’를 연관시킨 것이 흥미 있었습니다.”
“시 ‘롯의 아내’는 롯에 대한 여성적 시각이 반영된 시입니다. 미처 몰랐던 것을 배웠습니다. 그녀가 살던 소돔, 그 집을 떠나면서, 그 마을 그 집을 뒤돌아보지 말라던 천사의 말을 거역한 것의 의미를 이제부터라도 명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시 ‘롯의 아내’ 전문은 아래와 같다:
롯의 아내2)
안나 아흐마또바
의로운 자는 어두운 산길을 따라
거대하게 빛나는 신의 천사를 뒤따라 간다
그러나 아내에게 불안의 소리가 들린다:
<늦지 않았다. 당신은 아직 돌아 볼 수 있다.
고향 소돔의 붉은 탑과
당신이 노래 부르던 광장과, 뛰놀던 뜰과
사랑하는 남편의 아이를 낳은 곳
그 커다란 집의 텅 빈 창문을>
그녀가 얼핏 뒤돌아보자, 죽음의 고통으로
두 눈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몸뚱이는 투명한 소금 기둥이 되고
민첩하던 두 발은 땅에 박혀 버렸다
누가 이 여인을 위해 슬퍼할까
조금이나마 그녀의 상실감을 생각해 줄 이 누구인가
내 마음만은 잊을 수 없다
순간의 시선에 삶을 바친 그녀를
민 박사는 아흐마또바의 시 ‘롯의 아내’에서 다음의 구절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누가 이 여인을 위해 슬퍼할까?
조금이나마 그녀의 상실감을 생각해 줄 이 누구인가?
내 마음만은 잊을 수 없다.
순간의 시선에 삶을 바친 그녀를
“앞으로 이 여성 시인이 준 충격은 나의 사고에 줄곧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인터넷에 들어가 러시아 시인들을 찾기 시작했고, 특히 뿌쉬낀과 블로끄와 아흐마또바가 지금 내게 많은 말을 걸어오고 있고 나도 그들이 제기한 많은 질문에 대답할 답변을 궁리하고 있고, 그들의 시를 읽으면서 벌써 나는 내가 지은 습작 시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어떤 것은 대폭적으로 수정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거나 하고 있습니다.”
민 박사에 따르면, 아흐마또바는 스탈린 치하에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외국의 시를 번역하는 일을 했다. 놀라운 것은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의 시조 10여 수를 러시아어로 소개하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민 박사는 월간 창조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그의 독특한 설교 메시지처럼 그의 시도 개성이 강하고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심사위원이었던 황금찬 시인과 이성교 시인은 ‘심령을 새롭게 해주는 감동의 시’라는 추천평에서 그의 시를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 그 속에서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시 창작이 그 대표적인 작업이다.
여기 소개하는 민영진님은 오랫동안 시의 터를 닦아온 분이다. 먼 하늘에 시의 세계를 걸어놓고 그것을 바라보며 먼저 신학을 해온 분이며, 실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것을 오랫동안 시로 표현해 온 분이다. 그래서 시가 한결 속 있는 알맹이로 돋보인다. 그것이 바로 여기 수작으로 추천하는 시편들이다.
작품 「자계리」는 작자가 6.25때 피란을 가 있었던 마을을 회상하며 쓴 시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비교적 밝게 떠올린 작품이다. 이 작품과 연계하여 「자계리의 어머니」도 정경의 세계와 다른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끝까지 상상력을 동원한 감동의 작품이다.
「파도타기」, 「문신」 같은 작품은 그의 본 바탕대로 신앙이 뒷받침되어 있다. ‘파도타기’를 <하나님과 장난치며 노는 것>이라든가 ‘문신’을 지은 죄와 연결하여 옷 입는 것에 비유하였다. 3연에서 <문신을 감추려고/옷을 입고 덧입고 살아왔지만/이제는 죄 없는 것 보이려고/속 훤히 비치는 옷 입고 삽니다>같은 것이 그 좋은 예다.
그의 시 표현으로 보아 그의 호흡은 대체로 길다. 그만큼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서술에 있어서 산문체로 되어 있는 것이 많이 눈에 띈다. 이때까지 정신적으로 메마른 어떤 형식, 실험성만을 쫓아가던 우리 시단에 민영진님의 시는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해줄 좋은 세계를 많이 보여줄 것이다”(월간 창조문예 2003년 8월호).
민 박사는 독서법에 대한 질문에 특별한 것이 없다고 답했다. “특별한 것 없습니다. 나를 사로잡는 책이 아니면 못 읽지요. 나를 사로잡는 책이라고 하면 독서삼매경에 들어가게 되지요. 구조주의문학 관련 책을 읽는데 거기에서 누군가가 말했더군요. ‘독서는 곧 글쓰기’라고 <노하우>가 있다면 읽으면서 쓰는 것이지요. 저자와의 상호의사소통이지요.”
문제에 부딪혔을 때 특별히 책에서 대안을 찾았던 경우가 있는지를 묻자 민영진 총무는 박사는 솔직한 답을 주셨다.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렇지요. 그럴 때 특히 남들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가는 지 지혜를 배우고 싶지요. 나를 늘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새 길을 제시한 이들은 여러 방면에 산재해 있습니다. 하다못해 TV나 신문이나 잡지 광고의 어떤 문구나 그림이나 색채가 난국타개의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주로 동서고금의 시인들에게 크게 기대는 편입니다. 왜, 젊은 날 실연당하거나 하면 연애시들이 굉장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 말씀드릴까요? 특히 서구 시인들에게서 그들의 작품에 성경이 형식으로나 내용으로 깊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 때문에 기독교적인 시인에게서는 물론이려니와 반기독교적인 시인들, 예를 들면, 로트레아몽(Comte de Lautreamont)3)이나 랭보(Arthur Rimbaud)4) 같은 시인들에게서도 저는 성경을 다시 읽는 계기를 발견합니다.”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베스트 5를 부탁드렸으나, 민 목사는 베스트 5가 대단히 상대적이라고 답했다. 대신 1) 남들이 권하는 책, 2) 우리말이나 외국어로 쓰인 것 중에서 번역의 대상이 되는 책, 3) 각 종교의 경전, 4) 친구, 스승, 가족이 쓴 책, 그리고 5) 국어사전을 추천했다.
민 목사는 책을 읽을 때 책 여백에 많이 기록하는 스타일이다. 대학에서 강의하기 시작하면서 독서 카드에 제목을 붙여 정리하였다. 지금은 노트북에 독서 자료를 정리하고 저장한다. 노트북이 독서와 글쓰기 환경을 바꾸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매체의 변화가 독서 환경을 바꾼다는 것이다.
민 박사는 책의 세계를 아는 독자이다. 그는 칼 바르트가 그의 <교회교의학>에서 언급한 말을 인용했다: "나의 책은 선배들이 한 말의 각주(脚註)에 불과하다." 그는 질문자가 다르면 같은 책이라도 새롭게 연구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리고 미국의 한 노교수가 20대에 요절한 한 영국 시인의 작품을 70평생 연구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또한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랭보(Rimbaud, 1854-1891)가 비록 반기독교적 시인이지만, 그의 시가 때로는 기독교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민 목사에게는 책을 읽는 장소와 시간이 따로 없다. “모든 공간 모든 시간이 독서에 활용됩니다. 그러므로 독서를 위한 성별된 공간이나 시간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글을 쓰는 시공이 따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서를 읽는 기쁨을 누리라
나는 마지막 질문을 민 박사에게 던졌다. “그리스도인이 변화되고 성숙하는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꾸준한 독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서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현문우답(賢問愚答) 하나 하지요. 일반 신도들 중에는 성경이 좋다는 것 알면서도 못 읽는 사람이 있고, 또 성경을 학자처럼 거창하게 연구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다 좋습니다. 78세로 고인이 되신 제 어머니 보니까 평생 성경만 읽으시는데, 사실 어떤 내용을 물으면 모르시더라고요. 그냥 읽는 것 자체가 즐겁고 기뻐서 읽는다는 것입니다. 몽골의 라마교 사원에 들렸을 때 사원 주변으로 돌아가는 바퀴들이 세워져 있는데 신도들이 손바닥으로 그 원기둥처럼 생긴 바퀴를 돌리니까 휙 휙 돌아가더군요. 기도바퀴라고 하더군요. 또 어떤 사람들 설명은 어렵고 긴 경전을 신도들이 다 못 읽으니까 여기 와서 저 수많은 바퀴들을 돌리면 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 하나씩 읽는 것으로 처 준다는 것입니다. 글을 몰라서 못 읽거나 시력이 약해져서 못 읽는 이들은 다른 이들이 읽어줄 때 듣는 형식으로 읽지요. 또 어떤 신도들은 성경 통독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성경을 노트에다가 옮겨 적는 일을 하더군요. 감동적이랍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을 잘 읽진 못해도 평생 가슴에 껴안고 교회에 다니기도 합니다. 저는 일반 신도에게 독경에 대해서 좀 너그러운 편입니다. 자기가 읽는 것은 독경(讀經), 다른 사람이 큰 소리로 읽는 것 듣는 것은 청경(聽經), 성경을 써가면서 읽는 것은 필경(筆經), 성경을 만지기만 해도 저는 그것을 촉경(觸經), 가슴에 안고 다니기만 해도 회경(懷經)이라고 하여 성경을 읽는 것으로 처 줍니다.” 나는 성경 읽기에 ‘촉경’, ‘회경’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으나, 그 말씀에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민 박사는 <성서를 읽는 기쁨>이라는 글에서 “성서는 다른 책과는 달리, 몇 가지 세계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 성서만큼 많이 보급된 책도 없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 나라 안에서 성서가 보급된 통계를 보면, 일반 출판사에서 보급하는 성서 말고도, 대한성서공회가 보급한 것만 해도 해마다 1백만 권이 넘는다. 해마다 1백만 권에서 2백만 권까지 보급되는 책은 성서 외에는 그리 흔하게 찾아볼 수 없다. 나라마다는 달라도 세계적으로 보면 성서는 영원한 베스트 셀러에 속하는 책이다.
성서만큼 전 인류가 쓰는 여러 언어로 번역된 책도 없다. 1997년 말 통계로 2,197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지금 계속되고 있는 성서번역의 진도로 보아서 아마도 21세기에는 인류가 쓰고 있는 4-5천여 개 언어가 모두 자기의 언어로 번역된 성서를 가지게 될 것 같다. 앞으로 한 세기 안에 새로운 언어가 더 생기지 않는 한 모든 언어는 제 언어로 된 성서를 갖게 될 것이다.
성서만큼 장기간 읽히고 있는 책도 없다. 성서가 구전 형태에서 책의 형태로 완전하게 바뀐 것은, 구약의 경우 에스라 시대라고 보고, 신약의 경우는 서기 2세기라고 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읽히고 있다. 일반 책은 얼마만큼 읽히다가는 독자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데, 혹은 지속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고전으로 남는 책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독자는 한정되어 있다. 다만 성서만이 예외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성서만큼 사랑 받는 책도 없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또 성서만큼 인류가 당면하는 문제에 대처할 깨달음을 주는 책도 없다는 말일 것이다.
성서만큼 전 인류가 그들의 석학을 총동원시켜 연구하게 하는 책도 없다. 한 책에 대한 연구물이 성서만큼 많은 것도 없다.
성서만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책도 없다. 성서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성서는 계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성서만큼 매체를 달리하여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책도 없다. 구전 시대에는 구전으로, 문필 시대에는 책의 형태로,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아서는 전자매체인 CD-ROM의 형태로 전달되고 있다.”
그래서 민 박사는 “성서가 이러한 세계적 기록을 지닌 책이라면, 성서는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아니, 인류가 2천여 년 이상 매달려 온 책이라면, 우리도 한 번 진지하게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쉽게 무시해 버릴 책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모든 사람이 성서를 사랑하기를 권하고 있다.
“성서를 이해하면 할수록 성서를 그만큼 더 사랑하게 되고, 성서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성서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해와 사랑이 서로 맞물려서 돌고 돌수록, 곧 이 둘이 맞물려서 순환하면 할수록, 성서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사랑, 사랑과 이해가 증폭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성서의 말씀은 독자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성서를 읽는 사람이 새로운 의식을 갖게 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발견하게 하며, 새로운 희망에 사로잡히게 하고, 새로운 믿음을 고백하게 하고, 새로운 삶을 계속적으로 추구하게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은 책을 만든다. 그러나 성서는 사람을 만든다’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성서에서 나는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발견한다. 궁극적으로는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성서에서 배우고 있다. 기독교가 성서를 경전으로 인정하여 성서가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니다. 성서 자체의 권위가 독자로 하여금 성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게 한다.”
민 목사는 성서학과 신학 관련 서적 3천 여권을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은준관 총장)에 기증하였다. 새로운 학교의 출발을 돕기 위해 성서를 제외한 그의 장서 전부를 전달하였다. 이제 그는 대한성서공회 총무답게 몇 권의 성서와 함께 하고 있다. 성서를 사랑하고 시를 아끼는 구약학자 민영진. 그 깊이을 가늠하기 힘든 성서학 지식과 인문학적 교양, 그리고 몸에 밴 겸손과 친절은 많은 이들이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