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어떻게 글(작품)을  쓰는가?


“글을 쓴다는 것은 밖의 것을 받아들여(impression)  자기의 마음이라는 필터에 걸러낸 후, 밖으로 뱉어 놓는 것(expression)을 말한다. 받아들이는 것이 없이는 결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무엇을 쓴다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상사에서 일어나는 각자의 느낌, 작은 것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거기서 오는 새로운 발견이, 바로 글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김승옥/평론가).


작가의 창작 동기는 무엇인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가? 


1) 박이도(시인)

(1938년 평북 선천 출생/경희대 국문과 졸업/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황제와 나」가 당선/시집으로 「폭설」 「안개주의보」「불꽃놀이」「순결을 위하여」 등)

박이도 교수에 의하면, “자기 욕구와 자기 표현이란 다름 아닌 창조지향의 욕구이다. 내가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내가 왜 문학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의 근원적인 물음은 앞에 제시한 대로 자명하다. 말을 배우고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박교수는 그의 형님이 “문학전집을 탐독하는 모습에서” 그의 문학에의 호기심과 글쓰기의 집념이 무르익었다. “등뒤에서 볼 수 있었던 그의 진지하며 열중하는 모습에서 채 읽기에 대한 좋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시 쓰기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시를 읽으면서 그 시에 감동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시를 읽는 동안에 계속 써보고 싶은 충동이 떠오른다. 김광균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자작시를 한 권의 노트에 꽉 채울 수 있었고, 또 한 권의 노트엔 미당의 시 중에서 좋게 읽히는 시를 옮겨 적었다.”


2) 이경자(소설가)

(1948년 강원도 양양 출생/서라벌 여대 문예창작과/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확인」이 당선/소설집으로 「절반의 실패」 장편으로 「혼자 눈뜨는 아침」등)

“사춘기와 청춘기엔 예술은 밤에만 하는 거라고 굳게 믿었으므로 밤에 잘 썼다. 그러나 직장에 다닐 땐 체력을 저금해 두었다가 일요일 아침부터 밤중까지 밀어붙여 단편 하나를 끝내곤 했다... 단편은 대개 백매 안팎이므로 하루에서 사흘로 힘을 몰아붙여 쓰고 중편은 보통 일주일쯤 걸려 쓴다.”  “작품은 절대적으로 독자의 것이므로, 이것이 독자에게로 가서 어떻게 읽힐까를 머리속에서 한순간도 잊지 않고 글을 쓴다. 내 글이 독자의 밥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사회적 책무는 준엄하게 물어져야 한다. 이러한 나의 소신 때문에 나는 소설가로서 사명감을 갖는다. 작가는 일차적으로 자기가 현재 살고 있는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복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노력은 궁극적으로 ‘사람에 대한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다... 나는 작가와 작품은 일심동체라고 믿는다...작가에게 있어 체험은 아주 중요하다...나는 첫째 체험, 둘째 독서, 셋째 집필로 비중을 둔다. 독서는 내가 사물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여겨서 아주 광범위하게 의지하는 편이다... 어휘(말)는 사회적이다... 불평등한 상투어는 평등하게 바로잡고 외래어는 우리말로 표현하려고 기를 쓴다. 전문용어에 대해서도 그런 노력을 한다.”


3) 이청준(소설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서울대 독문과 졸업/1965년 단편 「퇴원」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1967년 「병신과 머저리」로 동인문학상/1975년 「이어도」로 한국창작문학상/1978년 「잔인한 도시」로 이상 문학상/작품집으로는 「별을 보여드립니다」 「당신들의 천국」 「춤추는 사제」 전작장편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이청준은 창작집 「소문의 벽」 후기에서, 소설 공부하는 이유를 기본적으로 ‘자기구원을 위하여 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자기구원」의 방식이 ‘다른 사람의 삶의 뿌리에 닿아서 다른 사람의 구원에도 관계가 맺어지기를 바라고 보편성을 획득하는 단계까지 확대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 현실적인 복수 감행보다는 ‘갇힌 방안에서 그리고 내부에서 자기를 패배시킨 사회에 복수하고 이념적으로 지배하려는’ 노력이다.

출발 자체는 현실에 대한 복수나 개조 의지나 이념적인 지배 욕망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독자와의 관계에서 보면, 독자는 작가에게 지배당하고 복수 당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작가와 독자가 서로 상치된다고 그는 말한다.

작가는 독자를 위해 쓰기도 하지만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쓴다. 그때 작가는 자기복수심으로부터 해방되는 부분이 있다. 이청준에 의하면,“작가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 자체가 유연성을 가지게 하고 그 마당을 넓히는 해방의 길로써 자유를 모색한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이상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누구나 다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감성의 높이와 세상을 이해하는 지적인 높이는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독자는 자신에 맞는 작품을 찾아서 읽으면 된다.


4)  최일남(소설가)

(1932년 전주 출생/서울대 국문과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가톨릭 언론문화상 수상/창작집으로 「누님의 겨울」 「홰치는 소리」 장편 「그리고 흔들리는 배」 「목숨」 등)

그는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세계문학전집을 거의 독파했다. 초등 학교 때부터 작문이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중학교 때 마구잡이로 읽고 베꼈다. “유명한 문필가의 글을 베끼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필자의 감정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이거다 싶으면 읽다 말고 옮기는 습관을 길렀다. 마음에 드는 시는 무조건 외우기로 작정했다.”

아름다운 문장은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문장은, 그 이전에 확보한 세계 인식의 깊이와 진실에 한 발짝이라도 근접하려는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가 문장 수업을 하면서 자주 들여다 본 것은 이태준의 「문장강화」와 정지용의 「지용 문학독본」이다. 이태준의 책은 여러 작가의 문장 수업에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가로서의 태도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 “어떤 사회라든가 어떤 상황에 작가가 서있을 때 되도록이면 햇볕 받지 않는 사람들, 또는 응달쪽에 시선을 두고 초점을 맞추는 것이 작가로서의 의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는 남들이 거창한 것에 부딪칠 때 나는 내 체질에 맞는 것을 찾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소설가의 입장이다. “가난이 감미로울 수는 없지만 작품상으로는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이 독자가 읽고나서  흐뭇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문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소설은 소재, 구성, 테마 등의 기본적 요소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문장 곧 문체가 독자를 사로잡고 좌우하고 그 작가를 특징짓는 귀중한 요소라 생각하고 지금도 문체에 대해서는 부단히 노력을 합니다.”

그는 신인들의 작품을 볼 때  테마와 소재의 특이성에도 관심을 갖지마는 그들이 어느 정도 문체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가를 주의 깊게 본다. 때로는 문체가 안 느는 사람이 있다. 그런 면에서 문체는 어느 정도 타고난다고 하겠지만, 철저한 훈련에 의해서 극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5) 김원일-소설 구상의 예

처음에는 한 노인의 편안한 죽음을 주제로 한 「바람과 강」을 100매 정도의 단편으로 구상했다.  그후 850매 정도를 썼고, 다시 1200매의 분량으로 개작했다. 첫 문장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가을볕도 다사로운 어느날,이인택 씨는 명구를 데리고 봉화산 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 즈음 읽고 있던 책은 「한국노동운동사」,「중국현대사」 등 이었다.  또한 일제시대 공산주의 운동사에 관심이 있었다.  <변절자의 반성적인 삶>을 쓰려고 새롭게 구상을 했다. 전체적 개요를 원고지에 메모했다.

      1. 서두. 등장인물을 대충 소개  (15장)

              2. 이인태씨와 최 지관의 묘터 상의(50장)

              3. 이인태 씨의 복잡한 과거 회상(50장)

        4. 묘터를 보러 다니다. 두 곳(70장)

        5. 이인태 씨 심장병 악화, 참회의 심정, 치명적 과거사(50장)

        6. 장례 및 에필로그(30장)  총 325장


그는 다음과 같이 집필원칙을 세웠다:  3인칭 소설로 쓴다.  자연 묘사에 충실하겠다(인간과 자연과의 연대감). 성에 관한 문제를 꼼꼼하게 접근해 보겠다(이유: 서구에서 성이 생활의 일부가 된 현장을 목격하고, 고지식한 관념의 벽이 얼마간 허물어졌다). 작품의 공간을 설정할 때, 축적 30만 분의 1 지도 사용했다.  소설을 쓰기 전 여러 종류의 참고 서적을 읽고  메모하고 현장을 답사했다.  외래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자어를 피한다(대필한 -대신 써준, 친근하다-정답다, 보폭-걸음나비,  천적-목숨앗이, 편승-묻어 타기). 연도 이외 모두 한글로 쓴다. 글 속에 아라비아 숫자가 박혀있는 것이 흉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자주 사전 보고 어휘력 키운다.  작품 쓸 때, 낱말장을 참고한다.

(예)   폄(貶)하다- 남을 깍아내려 말하다

       어슴새벽-어스레한 새벽(어스레하다-날이 조금 어둑하다)

       던적스럽다-보기에 더러운 태도가 있다

       군단지럽다-마음과 행동이 더럽고 너더분하다

        아귀(가) 세다- 1)마음이 굳세어서 남에게 잘 휘어들지 않는다

                              2)손으로 잡는 힘이 세다


6)  황석영-작업과정의 예

(황석영/1943년 만주 신경 출생,1962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1970년 조선일보 등단, 주요작품에 「객지」,「돼지꿈」,「삼포 가는 길」,「장길산」 등이 있다)

그는 작품을 쓰기 전에 먼저 얘깃거리를 찾게 된다. 작가는 우선 훌륭한 이야기꾼이 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얘기가  떠올라 생생하게 장면이 그려질 때까지 그 연상들을 끌어 모은다.

그는 현장감을 갖기 위해서 실제로 기간을 잡아 그럴듯한 장소와 인물들에 접해 보기도 한다. 장소는 지방이나 도시 변두리나,빈민가나,공장이나.환락가나,부두,선창가,어느 곳이고 가리지 않는다. 그 계층에 알맞은 복장과 말씨를 가지고서 뚫고 들어가 자기 체질 속에서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해 본다. 작가는 언제나 자기가 다루려는 현실의 한복판, 그 현장에 있는 자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기술방법에 있어서 객관성과 구체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른바 <카메라의 눈>이라는 서술인데, 내게는 ‘그리움’을 그대로 쓰느니보다는 그러한 상황을 장면으로 보여주기를 원한다.  역, 철길, 기차, 접혀진 우산, 비 그리고 처마 끝에 섰는 사람 등등으로 그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에 걸맞는 이미지들을 주워 모아서 그림을 그리듯 써 내려간다."


7)  김용택-시의 구상


시인 김용택은 섬진강 강길을 따라 걸으며 시심을 키웠다.  계절의 변화는 늘 그에게 새로움과 감동을 주었다. 강길을 걸어가다가 메모를 하거나 한 편의 시상을 종이에 끄적거려 두었다가 그 생각을 잊어버리기도 하다가 느닷없이 시가 쓰여질 때는 두세 편씩 쓰곤 했다. 누가 왔다갔다하거나 다른 소리가 들리면 시가 써지지 않는다. 대개 밤에 쓰거나 사람이 집에 없을 때 쓴다.

살아가면서 생활의 순간순간에 떠오르는 시상들을 그냥 자연스럽게 쓴다. “내가 겪은 바로는  시는...절망스럽고 고통스럽고 배고픈 데서 태어난다.”

“시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원칙은 없지만 될 수 있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말들을 쓰는 편이다... 사투리의 내용은 일상적인 삶의 구체성을 살려주며, 특히 전라도 사투리는 그대로 내 시어가 되고 가락이나 리듬이 된다. 언어는 곧 삶의 표현이 아니던가.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려 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살고 겪고 있는 곳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정직하게 표현하고 싶다... 내 삶만큼을 나는 쓰고 싶다.”


 

정리   송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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