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94): 너를 기억하는 법, <기소영의 친구들>

기소영의 친구들 - 제2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아동문고 105
정은주 지음, 해랑 그림 / 사계절 / 2022년 10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처럼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이러한데 이별보다 만남이 더 익숙한 어린이들에게는 누군가를 영영 잃는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상실을 정면으로 다루는 동화책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무거운 주제를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책이라면 글쓴이의 진심을 믿고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제2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기소영의 친구들>은 '상실'이라는 주제를 지나치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루며 긴 여운을 남기는 책입니다.

    이야기는 반장 박채린이 같은 반 부반장 기소영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됩니다. 반 친구들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소영이를 떠올리며 울기도 하고, 책상에 꽃다발을 올려 두기도 하고, 장례식에 가지 말라는 선생님들의 결정에 화를 내기도 하지만 점차 소영이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져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영이와 친했던 나리와 영진이의 꿈에 소영이가 나타납니다. 꿈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소영이를 위해 친구들은 못다 한 말과 추억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합니다.

    남겨진 친구들이 소영이를 추억하며 나름의 의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장례식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한 의식'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친구들은 소영이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소영이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한 셈이죠. 친구들의 꿈속에 소영이가 나타난 이유는 친구들과 '잘 헤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삽화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소영이의 얼굴은 나오지 않아요. 그러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 한 장을 넘기는 순간 밝게 웃는 소영이의 얼굴이 크게 등장합니다. 책을 읽으며 친구들의 대화 속에서만 등장하는 소영이를 상상했던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소영이의 얼굴을 마주하고 "아, 너였구나!" 하는 반가움과 함께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소영이의 얼굴을 궁금해했던 제 마음이 어쩌면 소영이를 그리워하는 친구들의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앞표지에도 소영이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뒤표지에 아주 조그맣게 그려져 있긴 한데, 저와 같은 감동을 느끼려면 뒤표지를 보지 않고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소영이의 모습을 찾으며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정은주 작가는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기소영의 친구들>을 썼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물으면 어른들은 흔히 "무슨 그런 얘기를 하니"라며 피하곤 해요. 하지만 탄생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우리 삶의 일부인만큼 이별과 죽음에 대해 어른과 아이가 건강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그런 따뜻한 대화의 시작이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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