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이름, 묘호 - 하늘의 이름으로 역사를 심판하다 키워드 한국문화 7
임민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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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이름이 많다. 영유아기에 부르는 아명이 있고(예를 들어 세종대왕의 아명은 개똥이였다.), 원래 이름인 원명(原名, 세종대왕의 원명은 도(), 성인식인 관례 때 지어주는 자(, 세종대왕의 경우 원정(元正)), 스스로 짓는 이름인 호(), 존경을 담아 바치는 이름인 존호(尊號). 여기까지가 살아있을 때 받는 이름이다. 존호의 경우 사후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 죽은 뒤에 받는 이름은 시호(諡號)인데, 시호는 전호(殿號 : 왕이 죽은 후 국장 기간인 3년 동안 머무는 빈전 과 혼전 등의 사당 이름), 능호(陵號 : 왕의 무덤 이름 세종은 영릉(英陵)), 그리고 묘호(廟號)가 있다. 묘호는 왕의 사후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붙이는 이름으로 우리가 대개 알고 있는 이름은 바로 이 묘호로서 가장 널리 불리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의 풀 네임은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인데 여기서 세종은 묘호, ‘장헌은 명나라에서 받은 시호, ‘영문예무인성명효는 존호다. 한편 세종은 왕자 때 충령군이었다가 정비와 후궁 소생을 구별하면서 충령대군이 되었다.

 

이처럼 왕의 이름은 다양하지만 가장 널리 불리는 이름은 묘호이며 이 묘호가 국왕 생전의 역사적 평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왕들의 역사를 조망하는 작업은 그 재미와 의미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묘호가 중요한 이유로 국왕의 평가에 엄정했던 조상들의 역사의식, 왕권의 정통성 확립에 명운을 건 후대 왕들과 수많은 대신들의 고심과 갈등, 국가와 사회의 존망 위기에서 치욕을 함께한 흔적들이 묘호에 새겨져 있,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당당하게 조종(祖宗)을 칭한 옛사람들의 자존심 또한 그 안에 스며 있음을 들었다. 조종(祖宗)을 칭하는 문제란, 원래 묘호로 을 쓰는 것은 황제에게만 쓰는 것인데 조선은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조종(祖宗)을 칭하는 자존심을 보여주었다는 뜻이다.

 

한편 묘호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된 적이 많았는데, 조선 2대왕인 정종처럼 300년간 묘호를 받지 못하고 공정왕으로 있었던 사례나 나중에 에서 조로 바뀐 선조, 영조, 순조 등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된다. 사실 선대 왕에 대한 평가 자체가 현실의 권력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예종, 명종, 영조처럼 자신의 묘호를 미리 정해 놓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왕의 이름에 대해 확실하게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묘호를 정하는 문제를 둘러 싼 논쟁에 관한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공정왕 300년 후인 숙종대에 이르러서야 정종으로 추존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한 단원을 할애하면서, 나중에 에서 조로 바뀐 선조, 영조, 순조 등의 사례에 대해서는 6쪽 밖에 배정하지 않은 점이 궁금했다. 저자에 의하면 정종이 애초에 묘호를 받지 못한 것은 태종의 눈치를 본 후대 왕들 때문인데, 이는 태종이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서이고 그의 후손들도 당연히 이를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된 것은 안동김씨 등 외척세력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된 것으로 보다 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저자는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통성 세우기의 문제를 중시하며 그 부분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세도 정치의 이해관계 때문에 '조와 종'이 바뀌는 문제는 역사적 '잡음' 정도로 보기 때문에 적은 분량으로 서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저자는 말미에 오늘날의 정부(혹은 정권)들도 과거의 왕들처럼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김대중 정부는 자신의 정통성이 상해임시정부에 있다 하였고,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을 외치며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이라 추앙하며 정통성 세우기에 나선 사례를 든다), 묘호는 없지만 묘호가 선대왕을 평가하는 수단이었던 것처럼 오늘날엔 국민투표에 의해 이전 정권을 평가하므로 자유, 민주주의, 경제라는 원칙에 비추어 묘호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정권은 스스로 묘호를 정한 영조와 같은 행보를 보인다. ‘참여 정부 국민의 정부니 하며 정권 스스로가 자신이 평가받고 싶은 이름을 만들어 선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독자에게 평가를 유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묘호의 의미를 되새겨 현실 정치에 적용시켜 보자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이 책은 문학동네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중 7권이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200쪽이 채 되지 않는 분량으로 한 가지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이런 책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살림 지식총서보다는 좀 더 자세하고 일반적인 단행본 보다는 부담이 적다 할 수 있어, 부담 없는 분량과 깊이 있는 지식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 일단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5 <조선인의 유토피아> 6 <처녀귀신>도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문학 서적으로 유명한 문학동네에서 이런 쓸만한 역사 책 시리즈를 만들어 낯설기도 하지만 기대 또한 배가되는 것 같다.

 

출처 : BookC의 冊戀愛談 (http://blog.naver.com/gru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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