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가족이 뭐 엄청 특별한 건 줄 알지? 가족이니까 사랑해야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믿지? 웃기지 마. 가족이니까 더 어려운 거야. 머리로 이해가 안 돼도 이해해야 하고, 네가 지금처럼 멍청한짓을 해도 찾으러 다녀야 하는 거야. 불만 좀 생겼다고 집부터 뛰쳐나가지 말고, 너도 엄마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봐. 최소한 너도 노력이라는 걸 하라고."
물론 지금 내가 적은 것보다 훨씬 많은 쌍욕과 살해 협박이 있긴 했었지. 그렇게 눈에 살기를 띤 모습은 처음 봤으니까.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가족이라고 해서 네가 원하는 모습대로 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란 뜻이야.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 P137

비록 엄마와 딸로 만나진 못했지만 대신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관계로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걸로 충분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그렇게 기도하고 조금 시간이 남으면, 나한테 약간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그땐 네 얼굴 한 번만 볼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할게.
딱 한 번만 볼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겠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네 곁으로 갈게.
네가 뭔가를 잘 해내면 바람이 돼서 네 머리를 쓰다듬고, 네가속상한 날에는 눈물이 돼서 얼굴을 어루만져 줄게.
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에도, 시험을 잘 친 날에도, 친구랑 다툰 날에도 슬프거나 기쁘거나 늘 네 곁에 있어 줄게.
엄마는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아주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 편지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2002년 11월 16일
아주 따뜻한 곳에서 엄마가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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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언니한테 아빠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니까 좀 기분이 이상해. 언니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아빠가 스무 살도 안 됐을거란 사실을 깨달았거든.
언니는 언니네 아빠가 젊었던 시절에 대해 상상해 본 적 있어?
난 한 번도 없어. 아빠가 젊었던 시절을 상상하는 건 뭐랄까, 내가 늙은 모습을 상상하는 거랑 비슷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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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나에게 음주는 일종의 시간제 타락 체험 같은 것이었다. 그 체험장에 입장하면 생활에 시달리고 타인에게 위축된 나 대신 무책임하고 호탕한 내가 있었다. 취한 눈으로 나를 보니 소심하고 고지식하다고만 알아온 내가 제법 솔직하고 웃기고 패기조차 있고, 무엇보다 좌절된 꿈을 가슴 깊이 숨긴채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내 몸속 술꾼의 발견이 기득권 시스템의 압박에서 벗어나 개인성을 각성한 대탈주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주장해본다. 나는 이른바 ‘문단의 신데렐라‘ 이전에 술꾼계의 ‘대형 신인‘이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살지 않고 소설을 쓰겠다며 뒤늦게 반항기에 들어선 데에는 술꾼의 특기인 순정과 터무니없는 낙관이 어느 정도 도움이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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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 앞에서 생각은 제멋대로 오간다. 스스로 맥박치며 움직이는 혈관이나 내장과 같아 어떤 생각은 내 의도와 무관하게 저절로 생겨났다가 저절로 사라진다. 이제는 그 사실을 잘 알게 됐지만, 어릴 때만 해도 나는 내 안에서 스스로 생겨나는 생각이 두려웠다. 내가 그 생각의 주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그리고 그런 생각이 영영 사라지지 않을까봐, 또 그 생각들이 현실이 될까봐.
그런 생각 중 하나가 바로 엄마가 죽는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 도대체 그런 생각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럴 때면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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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소설가란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며 계속 갱신되는 존재일것이다. 뭔가를 발견하고 깨달아서 소설로 남기지만 쓰고 나면 리셋, 원위치로 돌아가서 다시 탐색을 시작해야만 한다. 새소설을 쓸 때마다 처음처럼 어려운 것도 처음처럼 설레는 것도, 그리고 내가 책으로 쓰기까지해놓고 전혀 실행에 옮기지않는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심하자.
거품 아래에 술이 있다. 술과 글은 실물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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