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용운,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신비로운 존재의 모습...존재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의 고백...

나의 밤은 그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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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이해와 감상이란 참고서에 이 시의 주제를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애타는 기다림이라고 명시해 놓았다.

이 시는 다름 아닌,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기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또한 작품의 이해와 감상을 덧붙여 놓았다.

 

김지하 시인은 '6.3 사태(1964)' 당시 대일(對日) 굴욕 외교 반대 투쟁에 참가한 이후 1970년대를 온통 도피와 체포와 투옥을 거듭하며 살아왔다. 오로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부를 날을 애타게 염원하며 절규하듯 살아왔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엔 많은 말이나 수사보다도 그의 양심 선언의 한 구절을 읽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1975년 2월 동아 일보에 발표된 '고행 1974'와 인혁당 사건에 관한 내외 신문 기자 회견 내용이 문제가 되어 재수감되었을 때 정부에서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세웠는데, 그 때 김자하는 방대한 분량의 양심 선언을 하게 된다.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내가 요구하고 내가 쟁취하려고 싸우는 것은 철저한 민주주의, 철저한 말의 자유 ㅡ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이다. 내가 카톨릭 신자이며, 억압받는 한국 민중의 하나이며, 특권, 부패, 독재 권력을 철저히 증오하는 한 젊은이라는 사실 이외에 나 자신을 굳이 무슨 주의자로 규정하려고 한다면, 나는 이 대답밖에 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백성을 사랑하는 위정자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피와 시민의 칼을 두려워하는 권력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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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겨울이었던가.

해 저무는 물가에서 숨죽여 울던 내가

갈대의 울음 소리를 들었던 때가.

 

여전히 나는 눈부신 봄볕 아래에서 지그시 눈을 감으면 홀연히 그 해 겨울로 돌아가

서걱거리는 갈대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요즘의 나는 울적하기만 하다.

아니 언제고 울적했던 나는 만성 우울증에서 헤어나오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웃을 일 하나 없는 삶이 얼마나 비극인가를 잔인하게 깨우쳐 주기 위해, 봄은

그리하여 소리없이 스치고

햇빛 찬란한 날들 속에서 속절없이 가슴만 태우고 살아가는 나는

눈물도 멎어버린 오늘,

미친듯 하루를 웃어버린다. 

 

지독한 편집증과 지리한 우울증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내 마음에도 봄이 왔으면 한다...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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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당의 횡포.힘있는 자들의 농간.실추된 권위 만회.소모적인 전략.책무의식의 부재...

그들의 삶과 우리 서민들의 삶은 결코 통약불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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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메일이 왔다.

보이지 않는 전선을 타고 고향의 봄 내음이 전해졌다...

 

::: 백석, 고향(故鄕)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누구의 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중국 시인의 시였다는 것 뿐.

그 시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시인이 자신의 고향에서 왔다는 한 사람을 만나서 고향 소식을 묻거늘...

수많은 궁금증 다 접어두고

마을 어귀 나무에 올 봄에도 꽃이 피었냐고...

그 한마디로 그리운 고향 소식을 전해 듣고자 하더라.

어찌나 긴긴 여운이 감도는 시던지...

그 시가 요즘들어 자꾸 생각난다.

그 시를 대신해 이 시를 한번 두번...읽고 또 읽어보고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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