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 그는, 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8년동안 한결같이 오늘,3월 2일이면 난 학교에 갔다.

3월 1일 저녁에는 또다시 시작하는 새 학기에 대한 긴장과 기대로 편히 잠에 들지 못했던 나였다.

그러나 어제 나는 별다른 계획도 없이 잠자리에 들었고, 밤사이에 눈이 내려 등교길 교통체증이 우려된다는 아침 뉴스 소리에 눈을 떴어도 늑장을 부리며 가만히 TV앞에 앉아 리모콘을 만지작 거렸다.

'아,오늘 아침 나는 갈 곳이 없다,'

오늘의 일기예보에 당황하기는 커녕 실은 고소하기도 했다.

이 쾌감도 잠시...이내 나는 집에 있는 내가 싫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타인에게는 졸업은 '학업을 마치다'라는 의미(동목관계)의 卒業이겠지만 나에게는 졸업은 '졸렬한 업'이라는 의미(수식관계)의 拙業이라 할 수 있겠다.
생을 두고 언제나 진행형이어야 할 업(Karma)을 마쳤다라는 말이 상당히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고(설령 그 "업"이 학업에 국한된다 할지라도), 또 그간 내가 이루었다고 자부했거나 혹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던 업이란게 돌이켜 생각해보니 졸렬하고 치졸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겸손하다 못해 정말 모자란 탓일까.
초등학교 졸업식때부터 나는 단 한번도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그 "식"을 치뤄본 적이 없다.열 세살짜리의 내 눈으로는 그 의식이 참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여겨졌었고 그래서 수차례 오시지 말라고 당부 했음에도 불구하고 꽃다발과 카메라를 들고 기어이 날 찾아오신 어머니와, 난 싸움끝에 시간간격을 두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졸업식날 내게 자장면 한그릇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성이 난 어머니는 홀짝홀짝 울다가 잠든 내게 점심상도 차려주시지 않았으니 말이다.그 시절 난 끝끝내 날 이해하시지 못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으며 한편으로는 졸업식에 일가친척을 동원하여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눌러대는 그 일련의 의미없는 행동에 기뻐하는 이들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는 내 자신에게 분해서 씩씩대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는 낮잠을 청했다.
중학교 졸업식때는 어머니가 학교에 당도하시기도 전에 내가 부리나케 집으로 가 버려 어머니와 길이 엇갈렸다.다행히 언쟁은 피할 수 있었지만 싸리눈이 지저분하게 흩날리던 그 날 추위속에서 날 찾으러 교실 이곳저곳을 기울이다 허탈하게 집으로 향하셨을 어머니가 눈에 선해 나는 어머니가 뒤늦게 집에 오시자 자는 척을 하였다.어머니는 나머지 가족에게 한숨을 내 뱉으시며 원망섞인 그러나 이제는 포기한 듯한 어조로 나란 녀석에 대해 말씀하셨다.그 날도 난 3년전과 같은 복잡한 마음때문에 소리없이 울다 지쳐 잠들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때는 이런 날 포기하신 어머니께서는 결국 학교에 오시지 않았다.

초등학교때부터 난 졸업을 앞두고 매번 내게 자문했었다.
그간 내세울만한 업적을 이루었냐고.
실은 내세울만한 업적때문만이 아니었다.
난 삶이라는 게 늘 과정의 연속이고 매 순간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느냐에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런데 그 삶을 3년 혹은 6년 단위로 끊어 타인으로부터 내 삶을 평가받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웠으며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 인정되는 세상의 시선에서 한편으론 별다른 결과물이 없었던 내 현실이 초라해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번 졸업식에는 어머니께서 오셨다.언니 그리고 동생까지도 왔다.
역시 이번에도 내게 "결과물"은 없었다.하지만 난 그간 6년을 보람차게 살아왔다.하지 못했던 그리고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에 대한 아쉬움은 헤아릴 수 없지만 되돌아 가도 난 지난 6년처럼 조금은 우둔하게 하지만 성실하게 지금의 이만큼만 걸어올 것이다.
아,나 역시 내 삶을 6년 단위로 끊어 평가하는 누를 범했다.그러나 스무살에 접어들어 적어도 난 성장하지 않고 살았던 십대 때보다 반뼘은 성장했기에 이를 기점으로 삼고자 한 것에 불과하다.앞으로의 내 삶은 7년,8년,9년 그리고도 쭈욱... 끊임없는 성장의 연속 "과정"에 놓일 것이다.


그래도 내심 "결과물"이 없이 마음이 편치 않은 내게 오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주위에 이번에 졸업하고 취업한 친구들 있어?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거봐, 또 열심히 하면 돼."

'그렇다.삶은 그런 것이었다.卒하지 않은 業을 위해 나는 다시 걷는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누아 2005-02-2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업식은 우리 어머니의 낙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을 졸업인데도 겨울에 학사모를 쓰고 친구들과 졸업식을 함께 했습니다. 어머니가 흡족해 하셨죠. 어머니께 별로 해 드리는 것도 없는데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님의 글을 읽으니 "졸업식"을 위해 졸업도 하지 않고 치렀던 제 졸업식 생각이 납니다.
결과물? 생은 매 순간이 결과이며 또 원인이 아닐런지요? 눈으로 다 환산해낼 수 없는 값진 것들이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결과물에 가려 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쨌든 졸업 축하합니다. 사랑과 축복을 받는 일에 너무 인색하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님이 아는 님이 님의 모든 것이 아닐런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흠뻑 축하와 격려를 받으시고, 다른 이들이 간절히 그것을 원할 때 나눠 주실 수는 없을까요? 제가 너무 오버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축하 좀 받아 달라구요...

티벳소녀 2005-02-28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조언,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타인으로 부터 받는 축하에는 늘 인색하고 또 어색했던 저입니다.그렇지만 님께서 보내주신 축하의 말씀은 감사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마음속에 담아 두겠습니다.

법정 스님의 책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제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인생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러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님과 같은 분들이 어디엔가 분명 계시다는 건 참 흐뭇한 일인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반가웠습니다.

계획은 없지만 혹 이다음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졸업하거든 그때 초대해도 되나요,님을?

이누아 2005-03-01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광입니다!
 

::: 윤동주

번거롭던 사위가 잠잠해지고 시계소리가 또렷하다보니 밤은 저으기 깊을대로 깊은 모양이다. 보던 책자를 책상머리에 밀어놓고 잠자리를 수습한 다음 잠옷을 걸치는것이다. <딱>스위치소리와 함께 전등을 끄고 창역의 침대에 드러누우니 이때까지 밖은 휘영청 밝은 달밤이었던것을 감각치 못하였었다.

 이것도 밝은 전등의 혜택이였을가.

나의 누추한 방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혜택 그림이 된다는것보담도 오히려 슬픈 선창이 되는것이다. 창살이 이마로부터 코마루 입술 이렇게 하여 가슴에 여민 손등까지 어른거려 나의 마음을 간지르는 것이다. 옆에 누운 분의 숨소리에 방은 무시무시해진다. 아이처럼 황황해지는 가슴에 눈을 지떠서 밖을 내다보니 가을하늘은 역시 맑고 우거진 송림은 한폭의 묵화다. 달빛은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양 솨- 소리가 날듯하다. 들리는것은 시계소리와 숨소리와 귀뚜리 울음뿐 버쩍 고던 기숙사도 절간보다 더한층 고요한것이 아니냐?

나는 깊은 사념에 잠기우기 한창이다. 딴은 사랑스런 아가씨를 사유할수 있는 아름다운 상화도 좋고, 어린적 미련을 두고 온 고향에의 향수도 좋거니와 그보담 손쉽게 표현 못할 계백한 그 무엇이 있다.

...(중략)...

나는 나를 정원에서 발견하고 창을 넘어나왔다던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던가 왜 나왔느냐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두뇌를 괴롭게 할  필요는 없는것이다.

다만 귀뚜라미 울음에도 수집어지는 코스모스 앞에 그윽히 서서 닥터 빌링스의 동상 그림자처럼 슬퍼지면 그만이다. 나는 이 마음을 아무에게나 전가시킬 심보는 없다. 옷깃을 민감이여서 달빛에도 싸늘히 추워지고 가을 이슬이란 선득선득하여서 서러운 사나이의 눈물인것이다. 발걸음은 몸뚱이를 옮겨 못가에 세워줄 때 못속에도 역시 가을이 있고 삼경이 있고 나무가 있고 달이 있다.

그 찰나, 가을이 원망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더듬에 돌을 찾아 달을 향하여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통쾌! 달은 산산이 부서지고말았다. 그러나 놀랐던 물결이 잦아들 때 오래잖아 달은 도로 살아난것이 아니냐.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얄미운 달은 머리우에서 빈정대는것을...

나는 꼿꼿한 나무가지를 끊어 띠를 째서 줄을 메워 훌륭한 활을 만들었다. 그리고 좀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쏘다.

 

1938. 10.

 

 

보름달이 되기 전 14일 달을 보았다.

구름떼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둥근달이 밤하늘의 별을 죄다 삼켜버려 저렇게 살이 올랐나 생각하니 실없는 웃음만 서글프게 새어나왔다.  

교교한 달빛에 축축히 젖어버린 밤, 눈물을 주먹으로 훔치고서는 나도 힘껏 달을 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릴없이 마음만 버거운 여름이었다.

적막한 달빛 아래 걸음을 멈추고 긴 한숨을 내쉬어보아도

외로운 별 하나에 힘껏 뛰어올라 간절한 소망하나 걸어보아도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여름날 밤에 뒤척이는 나였다.

실구름 드리워진 아찔한 하늘도

섧게 붉은 잔인한 저녁해도

내안에 문신처럼 깊이 박힌 그의 기억을 앗아가지 못했다.

 

... 사랑...이었을까...?

......바람...이었을테지......

 

 

가을이었다.

가을이왔다.

바람이분다.

그렇게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었다...

 

"제발 이 가을, 물기 마른 낙엽과도 같은 매마른 감성을 제게 허락하소서. 한줌의 미풍에도 나는 그를 모른다 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