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적 삼촌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책을 얼마전에서야 읽었다. 워낙 책과 담쌓고 지내는 지라 이제야 책을 집어든 나의 게으름을 탓하며 책을 읽어갔다.

책을 읽는 동안 한 영화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타임투킬>이라고 96년도에 개봉한 그 영화가 언저리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혹시 그 영화의 원작이었나하고 뒤져보니 그 여화의 원작자는 존그리샴이었다. 어쩌면 흑인문제를 다루어서, 백인의 폭력적 횡포 그 우월주의가 뭍어나는 영화와 소설이어서 비슷한 코드가 보였는지도 모른다. <타임투킬>이란 영화를 볼 고등학생이었던 당시는 어찌나 영화 속 백인 우월주의와 횡포에 부아가 치밀던지 금방이라도 인권운동가로 나서야 되는 건 아닌가 생각했었다. 

만만치 않은 두께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란 소설은 두께가 주는 거북함과는 다르게 잘 읽혀나가는 소설이었다. 잘 읽힌다는 것은 단순히 가볍다거나 경박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 읽기의 편안함은 화자의 나이, 어린 소년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특성 때문이다. 어린이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세계.  어린 화자의 서술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세계의 아이의 목소리처럼 듣기 좋게 들린다. 그러나 귓바퀴를 돌고 그 안으로 들어가 머리속에 입력되는 순간 그 세계는 결코 편안하지도 경박하거나 가볍지도 않은 처절한 현실이 된다. 폭력과 이기심 그리고 우월주의가 팽패한 세계. 그 세계는 추악하며 구토를 하게 만든다.  어쩌면 작가 하퍼리는 그것을 노렸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눈을 통해 듣고 본 세계의 장막을 걷어내는 순간 그 세계는 공포이며 지옥이라는 것을 더 강하게 독자에게 접근시키고자 했던것 같다.

나와 너의 교집합. 그 교집합이 아닌 부분은 타자일 뿐이다. 타자라는 것은 냉정함과 냉소의 타탕성을 갖게 해준다.  그 타자의 세계를 너와 나의 교집합은 끝임없이 사살한다. 목을 비틀기도 하고 칼을 드리대기도 하고 독가스를 살포하기도 하면서. 소설 속에서 타자로 존재하는 앵무새, 흑인들은 백인들의 거만한 우월주의에 죽어가고 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죽음만이 아니다. 호적등본에 붉은 줄 긋는 사망선고만이 아닌 것이다. 타자와 그 타자의 세계에 대한 소외, 무시등의 찰과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기심과 욕심 거만한 우월주의 그리고 편협한 사고. 그것은 나 아닌 것들을, 우리가 아닌 것들을 타자로 만들어 버린다. 포함되지 않은 세계는 영원한 타자로만 존재되어지고 타자에 대한 냉정함과 냉혹함은 타타당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생각해 보아라,. 나가 아닌 우리가 아닌 것들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나와 우리는 타자의 또 다른 타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타자의 타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그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앵무새를 죽여야 타인을 나 혹은 우리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아마도 끝이 없는 살인행위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우리는 결정해야 할 것이다. 매일매일을 손에 피 뭍히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타인이라는 구분 그 경계선을 지우고 접근할 것인가.

 이럭저럭 글을 마치는 이 순간 나는 생각한다. 나는 오늘 또 얼마나 많은 타자를 만들어 내 옆에 세워 두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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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1-11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좋아하는 책이라서요 ^^ 저도 이 책을 읽으며 같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어항에사는고래 2004-11-11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스님도 좋아하시는 책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