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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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빵가게 재습격'은 총 7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하루키의 글이다. 하루키의 특징상 그의 단편을 바탕으로 해서 장편을 쓰는 경우가 제법 있는데 (특히 그가 젊었을 때는 그러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단편집에서 보았던 것은 마지막 소설인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에서. 이 소설은 그의 장편 소설 (무려 4권이나 되는;;;) '태엽 감는 새'의 초반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하루키 소설을 이야기 할 때마다 꺼낼래야 꺼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단어. '상실' (정말 지금도 원제 : 노르웨이 숲 이 아닌, 상실의 시대로 바꾼 것에 대해서 분개한다.) 역시 초기 그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상실에 대한 주제로 많은 작품들이 다뤄지고 있는데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 삶에 녹아나 있는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상실감을 잘 묘사하기 때문이다. 
 

문득 길을 걷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가도 나는 나도 모르게 외로움을 느끼고, 혼자라는 생각에 괜스레 슬퍼지곤 한다. 내 삶은 모든 것에 사람들과 얽혀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이 여기에 모두 있는데도 나는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상실감에 허덕인다. 밑이 빠져버린 독처럼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함. 
 

히루키는 그런 상실감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 
 

늘상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았던 코끼리와 코끼리 조련사가 어느 순간 소멸해 버린다. 처음엔 이목이 집중 되는 듯 하지만 곧 어느 순간 그런 사건이 있었냐는 듯하며 사람들은 무심해져 버리고 관심있게 지켜보았던 주인공 자신조차 잊혀질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뭇 여자와의 대화 속에서 무심코 터져 나오는 코끼리의 소멸에 대한 주인공 자신의 이상한 발언들. 무심하듯 스치듯이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는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에 걸려하고 있었다. 그저 덮어 둔 채 건드리지 못했을 뿐.
 

알 수 없는 여자들과의 대화와, 인스턴트적인 만남과 섹스, 그리고 세상을 향한 지독한 무관심과 무감동적인 일상들. 하루키는 그런걸 거침없이 표현하며 우리를 거북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만다. 모두 그런 즉흥적인 행동을 실천하지 않았을 뿐.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든 것들이 감동없음으로 대해버리고 있었기에......

 
하루키의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도 여지없이 돋보이지만, 그 어떤 내용보다도 재미있는 건 각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와타나베 노보루의 정체이다. 이 이름은 어떨 땐, 직장속의 동료로 , 고양이의 이름 등으로 여러 곳에서 불리어지고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 이름은 그의 소설에 심심찮게 드러나는 이름 중 하나이다. 과연 와타나베 노보루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오게 되는 것일까? 그가 묘사하는 와타나베 노보루는 늘상 남이거나, 내겐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존재, 어떨 땐 그저 그렇게 예전부터 있었던 존재로서 부재하기에 자각하게 되는 어떤 한 인물 또는 사물이다.

 
단편집이라 딱히 방대한 스토리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만의 특유의 문체와 분위기는 나를 즐기고 재미가 있다. 다음 책은 중국행 슬로 보트. 이 단편집은 내게 어떻게 다가올까? 하루키의 글이 또 다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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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89
김성윤 지음 / 살림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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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보통 수첩만한 크기에 100 페이지가 못되는 짧고 얇은 책이지만 커피에 대한 각종 모든 정보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그동안 멋 모르고 열심히 커피를 마셔댔는데 다양한 정보를 알게 되어 기쁠 따름. 사실 커피에 대한 정보를 따로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왠지 이 책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베끼게 될 것 같아 차라리 이 책을 적극 권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알짜배기 정보들이 수두룩하다. 더군더나 3300원 밖에 하지 않는데다가 알라딘에서 할인해준 덕택에 무료배송으로 3000원도 안되는 가격으로 책을 받았다. -_-.. 알라딘에게 너무 미안했는데 또 그 재미가 있는 듯. 크크크크크- 

총 9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커피에 대한 정의와 원산지, 전파경로, 커피의 가공방법, 맛과 향에 대한 의미 그리고 기타 사회와 커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꼭꼭 필요한 말들로만 군더더기 없이 수록하고 있다.

커피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커피 자체를 좋아하기 보단 커피를 마시며 사람과 만나는 그 시간을 사랑한 듯 했다. 커피 한 잔을 탁자 위에 놓고 귀에 들리던 이름 모를 수많은 재즈곡들, 그리고 수없이 오고가던 이야기들과 사람들을 있었기에 커피가 참으로 좋았던 거 같기도 하다.

친구가 내 책을 보더니, 어~! 살림 시리즈 좋다고 강력추천해주었다. 자기는 '컬러이야기'라는 책을 샀었는데 컬러리스트 자격증 딸 때, 꽤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다면서 여기 책들 다 좋아.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흐흐흐- 나도 걔가 그 책을 들고 다닐 때 본 듯한데. 아무튼 아주 유용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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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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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28  

 선명하게 책 모서리에 찍혀있는 분홍빛의 도장자국이 이 책을 내가 언제 샀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벌써 3년이 지난 2006년 4월의 봄날의 교보문고의 풍경을 떠올려 본다. 

 많은 인파 속에서 한국문학 쪽을 서성거리는 나. 그저 신경숙이란 사람은 어떻게 글을 쓰길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까? 하는 생각으로 무심코 집어든 책이었다. 아마 만원이 채 안 됐을 것이다.(확인해 보니깐 9500원이다.) 사실 그 날은 주말이어서 평소보다 배의 사람들로 시내는 북적거렸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내가 무엇 때문에 그 혼잡한 시내를 나갔는지.. 혼자서 무얼 하며 돌아다녔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그저 이 책을 떠올리면 신문에 게재되는 흑백 사진처럼, 교보 1층 한국문학이 있는 자리에서 자꾸만 서성이고 이걸 고를까,저걸 고를까 하며 몇번씩 같은 책을 빼었다가 꽂았다를 반복 하고 있는 손놀림이 어리숙한 그림자 하나가 보인다.

 내가 읽은 '외딴방'은 그런 느낌이다. 기억이 날듯 말듯 하면서 애써 기억난 것이 정확히 그 때 일어난 것이 맞는지.. 혹여 다른 기억과 섞여 있는게 아닐지 하며 기억의 모호함에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그 때 서성거렸던 그 장면은 생생하게 떠오르는, 희미하나 희미하지 않는 느낌. 

 처음 외딴방을 읽은 것은 바로 06년 4월이 끝나가는 그 무렵. 대학교 3학년생이었던 나는 무척 바빴다. 그때 나는 매우 건강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활동력을 자랑했었다. 지나고 보니 무엇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22살의 나는 친구들과 수다 떨 시간조차도 빠듯했다. 늘 밤 10시가 넘어야만 자취방에 들어 올 수 있었던 살인적인 스케쥴, 그렇지만 쓸쓸함보단 꿋꿋함이 많았던 날들이었다. 그런 여유가 없는 삶 속에서 외딴방이라는 공간을 내 머릿 속엔 만들 수 없었다.  

 결국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장조차 다 읽지 못했다. 읽기에는 나는 너무나 가벼웠으며 그녀의 문체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녀의 '자기 살파기식'의 글은 보는 사람에게도 상처가 되고 가슴이 아파 나는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고 간간히 몇번, 그녀의 책을 읽기 시도했었다. 그러나 매번 1장을 넘기지 못했다. 

 

 어느샌가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무심하게 대해 왔다. 북카페 스텝활동을 통해서 수많은 감상문을 읽어 왔으며 나는 그곳에 수많은 글을 올렸고 수백개의 댓글들을 바라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척이나 기가 죽어버렸다. 북카페 활동은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지만 그것이 때론 독이 되기도 했다. 칼날 같이 전문적이고 어쩜 파괴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들의 신날한 감상글들에 작은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던 나는 입을 꾹 다물어 버리게 되었다.   

 카페활동을 안 한지도 2년째. 이제서야 읽고 내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이 조금 덜 힘들 수 있을 것 같다. 백치미 흐르던 내 글로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기계적으로 책을 소개하는 글들은 적지 말자. 그건 니가 할 일이 아니다. 너는 너가 읽고 느낀 점을 쓰도록 하자. 

  그녀의 소설을 보고 느낀 점이라면 위와 같은 자세 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녀가 글을 시작 할 때부터 질문하는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소설이 끝남에도 동시에 묻고 있는 데 그 물음은 작가 자신 뿐만 아니라, 그녀의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동시에 독자 자신으로 하여금 어떠한 질문하는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나는 왜 책이란 매체를 버리지 못하고 상처 받으면서도 읽고 있는거지? 정말 모르겠다. 이것은.

 

 유신시대와 오공을 거쳐 문민정부 시대인 소설의 현 시점까지 역사적 사실과 함께 공순이 혹은 공돌이라고 불리던 우리의 어머니,아버지들의 풍속화를 그녀는 매우 힘겹게 그려 나갔다. 때때로 어머니, 아버지의 젊은 시절 얘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저린다. 그땐 왜 그렇게 가난한 것인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뼈저린 가난 속에서 피어난 그들의 꿈은 그저 '잘먹고 잘 사는 것'었고 '공순이, 공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너무나 통제된 사회 속에서, 전쟁 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했다. 권리, 자유를 운운하는 건 그들에겐 사치였다. 어머니는 쌀바가지가 바닥을 긁는 소리를 내는게 두려웠다 했다. 어머니께 희망을 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라이~'를 외치며 버스를 툭툭 치던 17살의 그녀, 버스 안에서 만난 중학교 동창생이 입은 고등학교 교복은 얼마나 고왔을까?

 

 누구나 저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슴 속 상처가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게는 그러한 과거가 없는 듯 하다. 나는 아직도 분하고 화가 나는 기억들은 숨기는 것이 아닌 드러내버림으로써 혼자 씩씩거리며 자꾸만 비워내려고 하니깐.  

 희미하지만 선명하게 마음 한 구석, 자리 잡고 있던 외딴방의 기억들. 상상할 수 없어 판타지도 되지 않을 이야기들로 가득한 그 뒤죽박죽인 외딴방을 그녀는 힘겹게 풀어내고 있다. 

그녀의 외딴방에 집중하다가 나는 나의 외딴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적부터 혼자 있을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나의 학창 시절. 내겐 외딴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공유하고 있는 기숙사의 전경들만이 가득하다.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왔지만 가슴 속의 이야기를 꺼내고 꺼내어도 달래지지 않았던 고독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움은 함께 했고 그 외로움은 달래지지 않았다는 것을. 결국 나 혼자 감당할 수 밖에 없는 아득함이였다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깨닫는다.

 

굉장히 멋진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시점 전환의 묘미도 그러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라서 그런지 나는 전부 사실 같아서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가슴 아파도 두 눈 부릅뜨고 마주해야 할 대상들. 

 지금의 내 처지에서 내가 마주해야 할 대상들은 어떤 것일까? 더 이상 외면하고 피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그녀의 외딴방을 엿보고서 나는 이렇게 방황한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진다. 내게 있어 살아감이란 무엇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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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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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는 이 책으로 제131회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인더풀 보다는 확실히 단어 를 선택하는 면에서나, 전개되는 과정이 조금은 진지한(? 사실 이 책에서 진지함을 찾기란 정말 힘들지만;;;;) 면이 보여서 웃음으로 잘 포장된 하나의 멋진 책이 된 것 같다.
  
 총 5가지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하나의 단편단편 마다 정신과 의사 '이라부'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과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못생기고, 뻔뻔하며, 자뻑 심한, 뾰족한 주사바늘에 사족을 못쓰는 약간의 정신병을 지닌,완전 어린 애 같아서 의사다운 면모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사람이 이 정신과 의사 이라부다.
 
 이런 정신없는 사람에게 뭘 배우겠냐고 하지만, 이상하게 환자들은 그의 말 하나하나에도 무시할 수 없는 그런 뼈를 느끼기도 하고, 그의 부탁에 꼼짝도 못한다. 이것이야 말로 이라부의 치료능력 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와 함께 해온 환자들은 그만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지고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그에게 미소를 보내고 마는 것이다. 환자보다 더 압도적인 행동으로 환자를 더 피곤하게 하지만 결과적으로 환자 자신의 부족한 점과, 세상의 불만들을 씻어내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더욱더 힘차게 나아가게 만들 수 있는 이라부의 능력에 아주 찬사를 보낸다.
 
 물론, 거기에 몸매가 예술인 간호사 마유미씨도 빼 놓을 수 없으며, 가끔씩 나오는 이란인 또한 상당히 유쾌한 요소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여류작가' 편이 마음에 들었으며, 제목과 같은 '공중그네'편도 무지 괜찮다고 생각한다.
 
 공중그네 2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인더풀'보다는 개인적으로 공중그네가 더 좋았다. 세상의 일들로 인해 자신이 싫어지려고 한다면
정말 읽어 볼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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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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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하루키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독자를 거느린 인기 작가이지만 그의 책을 읽고 하루키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을 나는 사실 보지 못했다.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어언 5년째인데 책을 읽고서 나눈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다섯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아무래도 그의 소설은 사람을 유쾌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거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명세에 덩달아 한권씩 사서 읽어보게 되지만 정작 그를 좋아하기엔 그는 너무나 시니컬하고 우울하고 허망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힘마저 쑥- 빼버린다. 그의 책은 그런 상실감을 가지고 있다.

하루키를 이야기 하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숲)' 이 소설의 제목은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이라던지, 그가 쓰는 모든 소설 속에 펼쳐질 내용을 모두 함축 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나라하다. 하루키라면 절대로 상실의 시대 라고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다. 원제가 노르웨이 숲인 것처럼 그는 직접적으로 상실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가 쓰는 모든 소설 속에는 그런 일종의 상실감이 존재한다. 상실상실. 도대체 무엇을 상실했기에.

나는 사실 현대사에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도 그런데 남의 나라 현대사에는 더욱더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그가 겪은 일본의 소위 운동권 사람들, 전공투 세대라고 하는 것을 나는 그다지 피상적으로 밖에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가 영향을 받은 여러가지 현실적 상황들에 대해서 나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로지 작품 속에서 나는 이 소설을 말하고 싶다. 그걸 고등학교 때 배운걸로 써먹자면 독자중심적 이니깐 효옹론적 관점이라고 볼수도 있겠고 작품 중심으로 돌아가니깐 절대주의적 관점에도 해당될 수 있겠다. 흐흐 이거 95년도 수능에 기출되기도 했던 문제 중 하나인데.. 크크크 나 너무 국어를 사랑했나봐. 별게 다 기억나.정말.

소설은 두가지 이야기가 교차되어 펼쳐진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이야기와 세계의 끝이라는 이야기. 두가지는 분명 다른 이야기로 시작하고 그 소설 속 배경도 판이하게 다르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굉장히 도시적이고 차가우며 스펙타클한 이야기임에 반해, 세계의 끝은 말 그대로 세계의 끝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지라 굉장히 정적이고 고요하다.

그렇다보니, 처음에 접하게 되면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세계의 끝 이야기보다 훨씬 더 재밌고 흥미가 있다.

35살의 부양할 가족 없는 평범한 이혼남인 주인공 '나'는 커다란 '조직' 아래에서 계산사라는 직업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그에게 노(老) 박사로부터 데이터 처리를 의뢰 받음으로서 '조직'의 반대 편인 '공장'과 지하세계의 이상한 괴물들인 '야미쿠로'에게 위협을 받게 되고  결국엔 거대한 정보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노박사를 향해 찾아가지만, 노박사의 연구실은 이미 '공장'쪽에서 습격한지 오래되었고 노박사를 만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동분서주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SF 영화를 보는 것 처럼 스릴 넘치고 스펙타클해서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글들이 전부 뇌속에서 시각화 되는 것처럼 빠르게 전개 된다. 그리고 셰계적인 작가답게 적절하게 이야기의 강약의 조절하는 하루키의 필력에 또 한번 반할 수 있다.

반대로 세계의 끝은 똑같이 주인공 '나'가 어느날 갑자기 세계의 끝에 오게 되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문지기에 의해서 강제로 그림자와 분리되고 만다. 세계의 끝의 도시에서 그에게 주어진 일은 도서관에서 죽은 일각수의 두개골에서 꿈을 읽어내는 것. 풍요롭진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완벽한 도시. 도시는 사람들에게 완전함을 주는 대가로 '마음'을 가져가버린다. 모든게 완벽하지만 마음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는 매우 조용하고 안전하다. 그렇지만 아직 완전히 마음을 버리지 못한 주인공 '나'는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자신의 세계를 위한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1권에서는 이러한 각각의 주인공들의 겪어야 고난들이 전반적으로 희미한 윤곽을 보인다. 그리하여 2권으로 들어가게 됨에 따라 그들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는데 처음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 '나' 굉장히 힘들지만, 마지막 결말로 치닷게 되면 오히려 주인공은 정적이고 피동적인 자세를 보인다. 그에 반해 세계의 끝에서의 주인공은 그림자와 함께 소설의 마지막에서야 굉장히 적극적이고 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두 이야기는 분위기가 전혀 상반대고 이야기가 한 물줄기처럼 통할것 같지 않았지만 결국 끝에서야 알게되는 모든 이야기의 전말과 하나가 되는 이야기를 보면서 역시- 하루키. 하고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그의 소설 들 중에서 가장 '영화화' 해보고 싶은 작품인데 그 정도로 이야기의 구성도 구성이지만 그의 시각화하게 만드는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더군더나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읽고 싶은 소설들도 많아지고, 듣고 싶은 음악도 넘쳐나며, 먹고 싶은 세계의 각각의 음식들 하며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동경심마저 생긴다. 나도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때가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에 비해 듣고 보는 것들이 많아지다보니 그가 말한 음악들이 하나하나 상상하며 읽으니 더욱더 재미가 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리고 전에 씨씨님께서 이야기 해주신 이 소설에 대한
때문에 한층더 이해하기가 쉬웠다. 정말 그땐 내가 무턱대고 책을 읽었는지..거의 전반적으로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더라. 크크크크. 난 아무래도 세계의 끝의 그 묘한 정적인 분위기와 도서관에서 일각수 두개골의 꿈을 읽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서, 그 곳에 있는 난로와 커피와 낡은 도서관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있어 그것이 너무 좋아았다는 정도로 밖에 소설을 읽어내지 못한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괜시리 하루키씨에게 미안해지는 듯. 그랬기에 두 이야기가 연결 될 듯하면서도 연결되지 못한 것처럼 지금까지 생각해 왔었으니. 아무렴 어땨.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 무척 좋아한다고요 난.

내가 그의 소설 중에 굉장히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이 판타지적인 묘사 부분인데. 그는 정말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것인지 (물론 판타지 자체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소위 말하는 판타지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으로 그는 판타지를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더욱더 흥미로운 것이다. 그러니깐 뭐랄까. 왠지 멋진 용이거나 호랑이리라던지, 봉황, 독수리 심지어 토끼, 여우와 같은 보통 상식적인(? 이말의 표현이 이상하다;; 판타지 자체가 상식적이지 못한 것인데;;;) 환상적인 모습이 아닌, 생뚱맞게 양, 원숭이, 일각수(요건 좀 판타지하니깐 패스하자) 처럼 그럴것 같지 않은 동물들의 등장도 나타나고 그것이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점이 참 재미가 있다.

그리고 하나같이 시크한 등장인물들의 말투나 행동들은 너무나 웃기고 내 마음에 쏙 들고 마는 것이다. 마지못해 하는 듯하더라도 결국엔 자기가 주체가 되어버리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 왠지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나같이 좋아하는 걸 감추지 못하고 헤헤 거리는 개과(;;) 성향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고양이과 사람들 같다. 그래서 고양이과 부류의 사람들이 매력적인게야. 개보단 고양이가 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말이지. 크크크크크크크 

아무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간편하게 해피엔딩, 새드엔딩 이라고 말할 것이 못된다. 꾸역꾸역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려온 주인공의 처한 상황이 사실 알고보면 모든 것이 자기가 만들어낸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주인공은 좀 더 자신의 한정적인 미래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일 것을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이 다시 한번 다른 번외편처럼 글이 써졌으면도 했다. 주인공이 선택한 삶(숲으로 가는 것)에서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 져도 전혀 무리 없을 정도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너무나 매력적인 하루키 환타지의 세계에 모두들 한번쯤은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 그의 책을 읽고 허무했다, 기분이 안 좋다.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라는 사람들의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특히 강도 높은 정사씬 묘사 때문에 남자친구들에게는 변태 작가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ㅠㅠ 그럼 읽는 나는 뭐가 되냐. 이것들이 정말;;)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 단지 표현의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렇게 생각의 전환을 한다면 그 누구라도 그의 팬이 될 수 있을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히히히히 또 나중에 또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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