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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06.04.28
선명하게 책 모서리에 찍혀있는 분홍빛의 도장자국이 이 책을 내가 언제 샀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벌써 3년이 지난 2006년 4월의 봄날의 교보문고의 풍경을 떠올려 본다.
많은 인파 속에서 한국문학 쪽을 서성거리는 나. 그저 신경숙이란 사람은 어떻게 글을 쓰길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까? 하는 생각으로 무심코 집어든 책이었다. 아마 만원이 채 안 됐을 것이다.(확인해 보니깐 9500원이다.) 사실 그 날은 주말이어서 평소보다 배의 사람들로 시내는 북적거렸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내가 무엇 때문에 그 혼잡한 시내를 나갔는지.. 혼자서 무얼 하며 돌아다녔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그저 이 책을 떠올리면 신문에 게재되는 흑백 사진처럼, 교보 1층 한국문학이 있는 자리에서 자꾸만 서성이고 이걸 고를까,저걸 고를까 하며 몇번씩 같은 책을 빼었다가 꽂았다를 반복 하고 있는 손놀림이 어리숙한 그림자 하나가 보인다.
내가 읽은 '외딴방'은 그런 느낌이다. 기억이 날듯 말듯 하면서 애써 기억난 것이 정확히 그 때 일어난 것이 맞는지.. 혹여 다른 기억과 섞여 있는게 아닐지 하며 기억의 모호함에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그 때 서성거렸던 그 장면은 생생하게 떠오르는, 희미하나 희미하지 않는 느낌.
처음 외딴방을 읽은 것은 바로 06년 4월이 끝나가는 그 무렵. 대학교 3학년생이었던 나는 무척 바빴다. 그때 나는 매우 건강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활동력을 자랑했었다. 지나고 보니 무엇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22살의 나는 친구들과 수다 떨 시간조차도 빠듯했다. 늘 밤 10시가 넘어야만 자취방에 들어 올 수 있었던 살인적인 스케쥴, 그렇지만 쓸쓸함보단 꿋꿋함이 많았던 날들이었다. 그런 여유가 없는 삶 속에서 외딴방이라는 공간을 내 머릿 속엔 만들 수 없었다.
결국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장조차 다 읽지 못했다. 읽기에는 나는 너무나 가벼웠으며 그녀의 문체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녀의 '자기 살파기식'의 글은 보는 사람에게도 상처가 되고 가슴이 아파 나는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고 간간히 몇번, 그녀의 책을 읽기 시도했었다. 그러나 매번 1장을 넘기지 못했다.
어느샌가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무심하게 대해 왔다. 북카페 스텝활동을 통해서 수많은 감상문을 읽어 왔으며 나는 그곳에 수많은 글을 올렸고 수백개의 댓글들을 바라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척이나 기가 죽어버렸다. 북카페 활동은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지만 그것이 때론 독이 되기도 했다. 칼날 같이 전문적이고 어쩜 파괴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들의 신날한 감상글들에 작은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던 나는 입을 꾹 다물어 버리게 되었다.
카페활동을 안 한지도 2년째. 이제서야 읽고 내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이 조금 덜 힘들 수 있을 것 같다. 백치미 흐르던 내 글로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기계적으로 책을 소개하는 글들은 적지 말자. 그건 니가 할 일이 아니다. 너는 너가 읽고 느낀 점을 쓰도록 하자.
그녀의 소설을 보고 느낀 점이라면 위와 같은 자세 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녀가 글을 시작 할 때부터 질문하는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소설이 끝남에도 동시에 묻고 있는 데 그 물음은 작가 자신 뿐만 아니라, 그녀의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동시에 독자 자신으로 하여금 어떠한 질문하는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나는 왜 책이란 매체를 버리지 못하고 상처 받으면서도 읽고 있는거지? 정말 모르겠다. 이것은.
유신시대와 오공을 거쳐 문민정부 시대인 소설의 현 시점까지 역사적 사실과 함께 공순이 혹은 공돌이라고 불리던 우리의 어머니,아버지들의 풍속화를 그녀는 매우 힘겹게 그려 나갔다. 때때로 어머니, 아버지의 젊은 시절 얘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저린다. 그땐 왜 그렇게 가난한 것인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뼈저린 가난 속에서 피어난 그들의 꿈은 그저 '잘먹고 잘 사는 것'었고 '공순이, 공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너무나 통제된 사회 속에서, 전쟁 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했다. 권리, 자유를 운운하는 건 그들에겐 사치였다. 어머니는 쌀바가지가 바닥을 긁는 소리를 내는게 두려웠다 했다. 어머니께 희망을 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라이~'를 외치며 버스를 툭툭 치던 17살의 그녀, 버스 안에서 만난 중학교 동창생이 입은 고등학교 교복은 얼마나 고왔을까?
누구나 저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슴 속 상처가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게는 그러한 과거가 없는 듯 하다. 나는 아직도 분하고 화가 나는 기억들은 숨기는 것이 아닌 드러내버림으로써 혼자 씩씩거리며 자꾸만 비워내려고 하니깐.
희미하지만 선명하게 마음 한 구석, 자리 잡고 있던 외딴방의 기억들. 상상할 수 없어 판타지도 되지 않을 이야기들로 가득한 그 뒤죽박죽인 외딴방을 그녀는 힘겹게 풀어내고 있다.
그녀의 외딴방에 집중하다가 나는 나의 외딴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적부터 혼자 있을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나의 학창 시절. 내겐 외딴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공유하고 있는 기숙사의 전경들만이 가득하다.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왔지만 가슴 속의 이야기를 꺼내고 꺼내어도 달래지지 않았던 고독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움은 함께 했고 그 외로움은 달래지지 않았다는 것을. 결국 나 혼자 감당할 수 밖에 없는 아득함이였다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깨닫는다.
굉장히 멋진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시점 전환의 묘미도 그러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라서 그런지 나는 전부 사실 같아서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가슴 아파도 두 눈 부릅뜨고 마주해야 할 대상들.
지금의 내 처지에서 내가 마주해야 할 대상들은 어떤 것일까? 더 이상 외면하고 피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그녀의 외딴방을 엿보고서 나는 이렇게 방황한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진다. 내게 있어 살아감이란 무엇인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