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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분명 하루키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독자를 거느린 인기 작가이지만 그의 책을 읽고 하루키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을 나는 사실 보지 못했다.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어언 5년째인데 책을 읽고서 나눈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다섯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아무래도 그의 소설은 사람을 유쾌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거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명세에 덩달아 한권씩 사서 읽어보게 되지만 정작 그를 좋아하기엔 그는 너무나 시니컬하고 우울하고 허망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힘마저 쑥- 빼버린다. 그의 책은 그런 상실감을 가지고 있다.
하루키를 이야기 하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숲)' 이 소설의 제목은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이라던지, 그가 쓰는 모든 소설 속에 펼쳐질 내용을 모두 함축 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나라하다. 하루키라면 절대로 상실의 시대 라고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다. 원제가 노르웨이 숲인 것처럼 그는 직접적으로 상실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가 쓰는 모든 소설 속에는 그런 일종의 상실감이 존재한다. 상실상실. 도대체 무엇을 상실했기에.
나는 사실 현대사에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도 그런데 남의 나라 현대사에는 더욱더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그가 겪은 일본의 소위 운동권 사람들, 전공투 세대라고 하는 것을 나는 그다지 피상적으로 밖에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가 영향을 받은 여러가지 현실적 상황들에 대해서 나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로지 작품 속에서 나는 이 소설을 말하고 싶다. 그걸 고등학교 때 배운걸로 써먹자면 독자중심적 이니깐 효옹론적 관점이라고 볼수도 있겠고 작품 중심으로 돌아가니깐 절대주의적 관점에도 해당될 수 있겠다. 흐흐 이거 95년도 수능에 기출되기도 했던 문제 중 하나인데.. 크크크 나 너무 국어를 사랑했나봐. 별게 다 기억나.정말.
소설은 두가지 이야기가 교차되어 펼쳐진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이야기와 세계의 끝이라는 이야기. 두가지는 분명 다른 이야기로 시작하고 그 소설 속 배경도 판이하게 다르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굉장히 도시적이고 차가우며 스펙타클한 이야기임에 반해, 세계의 끝은 말 그대로 세계의 끝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지라 굉장히 정적이고 고요하다.
그렇다보니, 처음에 접하게 되면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세계의 끝 이야기보다 훨씬 더 재밌고 흥미가 있다.
35살의 부양할 가족 없는 평범한 이혼남인 주인공 '나'는 커다란 '조직' 아래에서 계산사라는 직업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그에게 노(老) 박사로부터 데이터 처리를 의뢰 받음으로서 '조직'의 반대 편인 '공장'과 지하세계의 이상한 괴물들인 '야미쿠로'에게 위협을 받게 되고 결국엔 거대한 정보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노박사를 향해 찾아가지만, 노박사의 연구실은 이미 '공장'쪽에서 습격한지 오래되었고 노박사를 만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동분서주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SF 영화를 보는 것 처럼 스릴 넘치고 스펙타클해서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글들이 전부 뇌속에서 시각화 되는 것처럼 빠르게 전개 된다. 그리고 셰계적인 작가답게 적절하게 이야기의 강약의 조절하는 하루키의 필력에 또 한번 반할 수 있다.
반대로 세계의 끝은 똑같이 주인공 '나'가 어느날 갑자기 세계의 끝에 오게 되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문지기에 의해서 강제로 그림자와 분리되고 만다. 세계의 끝의 도시에서 그에게 주어진 일은 도서관에서 죽은 일각수의 두개골에서 꿈을 읽어내는 것. 풍요롭진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완벽한 도시. 도시는 사람들에게 완전함을 주는 대가로 '마음'을 가져가버린다. 모든게 완벽하지만 마음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는 매우 조용하고 안전하다. 그렇지만 아직 완전히 마음을 버리지 못한 주인공 '나'는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자신의 세계를 위한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1권에서는 이러한 각각의 주인공들의 겪어야 고난들이 전반적으로 희미한 윤곽을 보인다. 그리하여 2권으로 들어가게 됨에 따라 그들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는데 처음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 '나' 굉장히 힘들지만, 마지막 결말로 치닷게 되면 오히려 주인공은 정적이고 피동적인 자세를 보인다. 그에 반해 세계의 끝에서의 주인공은 그림자와 함께 소설의 마지막에서야 굉장히 적극적이고 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두 이야기는 분위기가 전혀 상반대고 이야기가 한 물줄기처럼 통할것 같지 않았지만 결국 끝에서야 알게되는 모든 이야기의 전말과 하나가 되는 이야기를 보면서 역시- 하루키. 하고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그의 소설 들 중에서 가장 '영화화' 해보고 싶은 작품인데 그 정도로 이야기의 구성도 구성이지만 그의 시각화하게 만드는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더군더나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읽고 싶은 소설들도 많아지고, 듣고 싶은 음악도 넘쳐나며, 먹고 싶은 세계의 각각의 음식들 하며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동경심마저 생긴다. 나도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때가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에 비해 듣고 보는 것들이 많아지다보니 그가 말한 음악들이 하나하나 상상하며 읽으니 더욱더 재미가 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리고 전에 씨씨님께서 이야기 해주신 이 소설에 대한 팁 때문에 한층더 이해하기가 쉬웠다. 정말 그땐 내가 무턱대고 책을 읽었는지..거의 전반적으로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더라. 크크크크. 난 아무래도 세계의 끝의 그 묘한 정적인 분위기와 도서관에서 일각수 두개골의 꿈을 읽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서, 그 곳에 있는 난로와 커피와 낡은 도서관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있어 그것이 너무 좋아았다는 정도로 밖에 소설을 읽어내지 못한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괜시리 하루키씨에게 미안해지는 듯. 그랬기에 두 이야기가 연결 될 듯하면서도 연결되지 못한 것처럼 지금까지 생각해 왔었으니. 아무렴 어땨.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 무척 좋아한다고요 난.
내가 그의 소설 중에 굉장히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이 판타지적인 묘사 부분인데. 그는 정말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것인지 (물론 판타지 자체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소위 말하는 판타지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으로 그는 판타지를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더욱더 흥미로운 것이다. 그러니깐 뭐랄까. 왠지 멋진 용이거나 호랑이리라던지, 봉황, 독수리 심지어 토끼, 여우와 같은 보통 상식적인(? 이말의 표현이 이상하다;; 판타지 자체가 상식적이지 못한 것인데;;;) 환상적인 모습이 아닌, 생뚱맞게 양, 원숭이, 일각수(요건 좀 판타지하니깐 패스하자) 처럼 그럴것 같지 않은 동물들의 등장도 나타나고 그것이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점이 참 재미가 있다.
그리고 하나같이 시크한 등장인물들의 말투나 행동들은 너무나 웃기고 내 마음에 쏙 들고 마는 것이다. 마지못해 하는 듯하더라도 결국엔 자기가 주체가 되어버리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 왠지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나같이 좋아하는 걸 감추지 못하고 헤헤 거리는 개과(;;) 성향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고양이과 사람들 같다. 그래서 고양이과 부류의 사람들이 매력적인게야. 개보단 고양이가 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말이지. 크크크크크크크
아무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간편하게 해피엔딩, 새드엔딩 이라고 말할 것이 못된다. 꾸역꾸역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려온 주인공의 처한 상황이 사실 알고보면 모든 것이 자기가 만들어낸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주인공은 좀 더 자신의 한정적인 미래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일 것을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이 다시 한번 다른 번외편처럼 글이 써졌으면도 했다. 주인공이 선택한 삶(숲으로 가는 것)에서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 져도 전혀 무리 없을 정도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너무나 매력적인 하루키 환타지의 세계에 모두들 한번쯤은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 그의 책을 읽고 허무했다, 기분이 안 좋다.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라는 사람들의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특히 강도 높은 정사씬 묘사 때문에 남자친구들에게는 변태 작가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ㅠㅠ 그럼 읽는 나는 뭐가 되냐. 이것들이 정말;;)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 단지 표현의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렇게 생각의 전환을 한다면 그 누구라도 그의 팬이 될 수 있을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히히히히 또 나중에 또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