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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빵가게 재습격'은 총 7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하루키의 글이다. 하루키의 특징상 그의 단편을 바탕으로 해서 장편을 쓰는 경우가 제법 있는데 (특히 그가 젊었을 때는 그러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단편집에서 보았던 것은 마지막 소설인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에서. 이 소설은 그의 장편 소설 (무려 4권이나 되는;;;) '태엽 감는 새'의 초반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하루키 소설을 이야기 할 때마다 꺼낼래야 꺼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단어. '상실' (정말 지금도 원제 : 노르웨이 숲 이 아닌, 상실의 시대로 바꾼 것에 대해서 분개한다.) 역시 초기 그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상실에 대한 주제로 많은 작품들이 다뤄지고 있는데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 삶에 녹아나 있는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상실감을 잘 묘사하기 때문이다.
문득 길을 걷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가도 나는 나도 모르게 외로움을 느끼고, 혼자라는 생각에 괜스레 슬퍼지곤 한다. 내 삶은 모든 것에 사람들과 얽혀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이 여기에 모두 있는데도 나는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상실감에 허덕인다. 밑이 빠져버린 독처럼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함.
히루키는 그런 상실감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
늘상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았던 코끼리와 코끼리 조련사가 어느 순간 소멸해 버린다. 처음엔 이목이 집중 되는 듯 하지만 곧 어느 순간 그런 사건이 있었냐는 듯하며 사람들은 무심해져 버리고 관심있게 지켜보았던 주인공 자신조차 잊혀질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뭇 여자와의 대화 속에서 무심코 터져 나오는 코끼리의 소멸에 대한 주인공 자신의 이상한 발언들. 무심하듯 스치듯이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는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에 걸려하고 있었다. 그저 덮어 둔 채 건드리지 못했을 뿐.
알 수 없는 여자들과의 대화와, 인스턴트적인 만남과 섹스, 그리고 세상을 향한 지독한 무관심과 무감동적인 일상들. 하루키는 그런걸 거침없이 표현하며 우리를 거북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만다. 모두 그런 즉흥적인 행동을 실천하지 않았을 뿐.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든 것들이 감동없음으로 대해버리고 있었기에......
하루키의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도 여지없이 돋보이지만, 그 어떤 내용보다도 재미있는 건 각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와타나베 노보루의 정체이다. 이 이름은 어떨 땐, 직장속의 동료로 , 고양이의 이름 등으로 여러 곳에서 불리어지고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 이름은 그의 소설에 심심찮게 드러나는 이름 중 하나이다. 과연 와타나베 노보루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오게 되는 것일까? 그가 묘사하는 와타나베 노보루는 늘상 남이거나, 내겐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존재, 어떨 땐 그저 그렇게 예전부터 있었던 존재로서 부재하기에 자각하게 되는 어떤 한 인물 또는 사물이다.
단편집이라 딱히 방대한 스토리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만의 특유의 문체와 분위기는 나를 즐기고 재미가 있다. 다음 책은 중국행 슬로 보트. 이 단편집은 내게 어떻게 다가올까? 하루키의 글이 또 다시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