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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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역사이야기’를 연재하는 등 딱딱해지기 쉬운 역사를 오늘날 사회에 빗대,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2003년 나은 ‘대한민국史(사)(한겨레출판 펴냄)’도 같은 맥락이겠죠? 제가 소개할 1권의 부제 –단군에서 김두한까지-는 근현대를 관통하며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앞서 2003년 기준이기 때문에 오늘날과 내용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 책만으로 우리나라 사회가 왜 이 모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역사를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죠. 저도 약간 어려웠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간간이 보이는 의견은 어느 정도 참고할 만하지요.
이참에 4권까지 읽어볼까 생각이 드는 군요. 한홍구 교수가 지은 ‘대한민국史(사)’,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역사의 ‘객관적 서술’이란 대다수의 역사가들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을 ‘고상한 꿈’ 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꿈이 과연 채워질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관점이란 것이존재할 수 있을까요? 역사상의 사건들에게는 숱한 이해당사자들의 상충하는 이해가 얽히고 설켜 있으며 어느 것 하나 단순한 것이 없습니다.
- p5 머리말 ‘역사를 보는 자신의 눈을’에서
 
우리 손으로 자주적인 근대화에 실패하고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휘둘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지적하는 것은 우리 역사가 피동적으로 전개되었다고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민족의 해방과 근대적 민족국가의 건설을 위해 우리는 참으로 끈질기게 주체적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불행히 승리하지 못한 것이다. 단 한번 승리, 어떤 민중가요가 노래하는 그 단 한번 승리의 짜릿한 감격을 아직 맛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략)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하고 제국주의적 근대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들이 고스란히 다음 시대에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p18~19 ‘단 한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 - 유산된 민주혁명’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민주공화제가 채택되어 우리 역사에서 형태상의 군주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지만, 지난 50년간의 ‘민주공화제’ 실험에도 ‘군주제’가 내용적으로 극복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 p36 ‘왕정은 왜 왕따당했나 – 입헌군주제 논의와 공화제의 도입’에서
 
친일잔재의 청산이나 분단극복 문제 등에 대한 임시정부의 핵심적인 정책들 역시 대한민국에서 계승되지 못했다. 이렇게 볼 때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부터 인물의 계승은 물론이고, 정책의 계승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승만 정권을 비롯해서 역대 정권은 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였을까? 이들 정권은 자기네가 결여한 정통성을 임시정부의 업적과 권위를 빌려다가 메워보려 한 것이다.
- p47 ‘대한민국의 법통을 말한다 – 다시 생각하는 임시정부의 정통성 계승론’에서
 
우리는 단일민족의 허상, 혈통의 순수성이라는 신화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을 보아야 한다. 재외동포에 관한 법률을 보면 단일민족을 따지는 기준이 꼭 "단군 할아버지" 자손은 아닌 것 같다. 이 법은 재외동포의 정의를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던 자 및 그들의 자손으로 규정하는 절묘한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이민을 떠난 재중동포나 옛 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재외동포에서 배제시켜 버렸다.
(중략)
명백히 한민족의 구성원인 중국이나 옛 소련 지역의 동포들이 이런 대접을 받는 단일민족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 p69~70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인가 – 단일민족 신화의 허상’에서
 
이북에 끼친 만주의 영향이 일제와 일제가 세운 괴뢰국가 만주국에 대한 저항 속에서 배태된 것이라면, 이남에 끼친 만주의 영향은 바로 만주국에서 박정희를 비롯한 만주인맥이 얻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이남에서 만주인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곳은 역시 군부였다.
- p95 ‘만주국의 그림자 – 대한민국의 교과서?’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을 친일파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다. 친일파 문제를 오랫동안 다루며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크게 기여한 분의 글을 잠시 보자. "친일파 문제는 한국사회의 원죄이다.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한국사회가 발전할 수도 없고 존재하기도 어려운 그런 난제이다. 민족분단의 문제가 여기서 비롯되었고 경제종속의 문제가 여기서 시작되었다. 군사독재가 친일파의 사생아이고 사회혼란이 그 결과물이다.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문제이건 친일파와 관련이 없는 것은 없다.… 실로 오늘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는 모두가 친일파가 저지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 친일파 청산의 좌절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잘못 끼운 첫 단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모든 문제를 친일파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과연 친일파만 제대로 청산하였으면 모든 문제가 다 풀렸을 것인가?
- p104 ‘‘친일파’에 관한 명상 – 일제잔재 청산의 몇 가지 편향에 관하여’에서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 일부 부유층은 오히려 훨씬 살기 좋아졌다면서 "이대로!"를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냉전과 민족대립을 넘어 화해로 가는 마당에 이들은 또 "이대로!"를 외치며 길을 막는다. "이대로!"는 수구파의 구호지, 보수주의자들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
- p152~153 ‘‘참된 보수’를 아십니까 - ‘똥과 된장’만큼 다른 수구와 보수의 차이’에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70살 이상의 인구는 전체의 4%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70살이라고 해봐야 해방 당시의 열 네 살이니, 분단과 전쟁의 당사자라 할 만한 나이는 아니다. 남쪽이 이승만과 박정희의 시대가 아닌 것처럼 이북 역시 김일성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미 분단은 2세 또는 3세들의 대결로 넘어간 지 오래이다. 분단이 2세 또는 3세들의 대결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세나 3세들은 부모 세대의 선택이나 운명에 의해 남이나 북의 어느 한 쪽에 살게 되었거나 태어나보니 남쪽이나 북쪽인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 p158~159 ‘누가 ‘좌우대립’이라 부추기는가 – 만경대 방명록 소동’에서
 
일제강점기에 국내의 명사들이 대대적으로 반미성전에 앞장섰다면,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상류층들은 집단적으로 몹쓸 병에 걸려버렸다. 어떤 의사들으 s이 병을 후천성 반미결핍증이라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이 병이 후천성이 아니라 선천성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한때 반미의 열렬한 선구자(?)였던 점을 본다면 후천성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자식들이 수직감염되는 사례가 빈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후천성이던 이 병이 선천성 유전병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한번 이 병에 걸리면 여간해서는 고쳐지지 않고, 반미의 ‘반’ 자만 보아도 화들짝 놀라고 흥분해서 날뛰게 된다.
- p242 ‘반미의 원조는 친일파였다 – 후천성 반미결핍증의 웃기는 역사’에서
 
아직까지 미군보고 당장 나가라고 사는 사람은 그 엄청난 촛불의 바다에서도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 따위로 하려면 나가라’는 점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어머님, 아버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습니다"를 외칠 때 우리는 서로 반미나 미국 반대냐를 다지지 않았다. 호들갑을 떠는 수구세력에 하나가 되어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라고 모두 외치는 듯했다.
- p254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 - 광화문 촛불시위 거리에서 느끼는 감격’에서
 
이 땅에서 징병제가 처음 실시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민족이 지배하였던 일제강점기의 마지막 시기였다. 일제는 1938년 2월 22일 ‘육군특별지원병령’을 발표하여 조선인이 일본군에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중략)
일제가 지원병제도를 도입한 것은 병력자원의 부족을 메우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조선청년들을 ‘황군’에 복무케 함으로써 황국의식을 주입하려는 것이 주된 의도였다.
- p265 ‘찬란한 ‘병영국가’의 탄생 - ‘신성한 국방의무’는 어떻게 시작되고 유지되었나’에서
 
제도가 바로 서지 못할 때 합법적인 병역면제나 병역연기와 불법적인 병역기피의 차이는 불분명해진다. 한국전쟁 기간 중 군대에 가는 것은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컸고, 또 국민방위군 사건 등이 널리 알려지면서 군에 가서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굶어죽고 얼어죽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병역기피는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 당시 병역기피의 주된 통로는 대학에 들어가 징집연기를 받는 것이었다.
- p303 ‘상아탑은 병역비리탑? - 병역기피의 사회사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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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신청한 책이 왔다!
읽던거 마저 읽고 후다닥 읽어야지.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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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며 사는 삶 - 작가적인 삶을 위한 글쓰기 레슨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한진영 옮김 / 페가수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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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며 사는 삶(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한진영 옮김, 페가수스 펴냄)’은 글을 쓰는 사람에 주는 소소한 팁이 담겨져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전작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와 동일한데요. 다른 점이 있다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글쓰기를 일상화하는데 초점을 맞춘 반면, ‘글쓰며 사는 삶’은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떤 글을 쓸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머뭇거리지 말라.
멈추지도 말라.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손을 움직여라.
- 뒷표지

사람들은 작가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고 계세요? 무슨 생각을 하면서요?" 그리고는 도움이 되는 말이나 이야기, 사례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운다. 여기 이 책에 내가 사는 방식을 털어놓았다. 이 책이 글쓰기의 길에 동행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머릿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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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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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주장하는 것은 언제나 단 하나다.
자신의 느낌을 믿어라! 자신이 경험한 인생을 신뢰하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내면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어라!
- 앞표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한문화 펴냄)’는 그런 글쓰기를 강조합니다.
 
제목, 마음에 드시나요? 글쓰기도 뼛속까지 각인시켜야 한다니 기발한데요.
 
이 책은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가 아닌 ‘글쓰기를 일상으로 하자’를 말하는 실용서입니다. 미국 발매 당신 백만 부를 넘었다고 하니 믿을 만하겠죠?
 
수업을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요구한다.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으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여러분, 분명하고 아주 솔직하게 써야 해요.”라는 말만 던져버린다면 그것은 선생이 아니다. 수업시간에 나는 학생들과 함께 여러 가지 방법의 글쓰기를 시도해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 알게 된다. 교과서적인 진도에 따라 “세 번째 시간에 이러이러한 것을 배우면, 여러분은 글을 잘 쓰게 될 거예요”식으로 수업을 진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p18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에서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 책에서 글쓰기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얘기하길 주저하지 않습니다. 또 적절한 비유도 놓치지 않고요.
 
당신 속에서 싸움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도록 그냥 내버려 두라. 하지만 그 싸움의 한 구석에서, 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실제적인 마음이 조용히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 마음이 노트로 옮겨져 더 깊고 평화로운 곳에서부터 나온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이 두 개의 마음이 같이 살기 때문에, 때로는 그것이 동시에 글에 표현된다. 더구나 우리는 이 두 싸움꾼들은 언제까지나 묶어 두고 억누를 재간이 없다. 억누를수록 이 싸움꾼들은 더욱 결사적으로 들고 일어서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5분 혹은 10분 동안 그들이 노트에 대고 소리치는 것을 허락해 줄 수밖에 없ㄷ가. 그 감정이 이끄는 대로 글쓰기 속으로 빠져들라. 싸움을 걸어 오는 목소리들에게 글쓰기 속으로 빠져들라. 싸움을 걸어 오는 목소리들에게 글쓰기 속으로 빠져들라. 싸움을 걸어 오는 목소리들에게 글 쓰는 공간을 허락하고 나면 그들의 불만이 너무도 빠르게 사그라드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p52 ‘습작을 위한 글감 노트 만들기’에서
 
나탈리 골드버그는 1978년에서 1984년까지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 미네소타 선원에서 카타기리 선사에게 선(禪)수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곳곳에 선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인용됩니다.
 
위대한 선승인 도겐(道元)은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저 듣고, 읽고, 쓰라. 당신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조금씩 당신만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 그냥 흐르는 대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쓰라.
- p101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에서
 
스즈키 선사는 <선심초심(Zen Mind, Beginner’s Mind)>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을 통해 조정하는 최상의 길은 그들에게 해로운 일을 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중은 스스로 통제력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소와 양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와 양을 탁 트인 황야에 풀어 놓는 것이다.”
- p208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에서
 
미국 작가의 책에서 동양의 ‘선’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에 독자는 흥미를 갖고 계속 볼 겁니다. 그리고 한번쯤 써먹고 싶겠죠.
 
읽으면서 제가 흥미를 느낀 부분이 많은데 여러분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무엇(뛰어난 글)이 문제인지 알았어요! 여러분 중에는 금지된 약물을 먹어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다!”
이것은 좋은 작가가 되려면 LSD나 향정신성 의약품을 꼭 경험해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 말은, 우리 삶이나 반드시 미쳐 버려야 할 시기,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견고하지도 않고,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는 당도할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며, 이 죽음을 막을 것은 아무도 없다.
LSD에 취하지 말라. 그저 아무도 모르게 사흘 동안 숲속에 들어가 지내 보라. 당신이 말을 겁내는 사람이라면, 말 한 마리를 사서 말과 친구가 되어라. 자신을 규정하는 경계를 확장시켜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서 살아보라.
- p206~207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에서
 
우리는 뛰어난 혹은 독특한 작품을 접하게 되면 가끔 ‘무슨 약을 했길래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약빨고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데 당신은 어떻게 평가하실 건가요? 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그대로 보기만 해서 어떤 작품을 써야 할지 모를 때가 있죠. 이럴 때 약을 하면 환각으로 얻는 예술가도 있지요. 마음이 편해지고, 신비한 느낌도 덩달아 얻는 느낌말이죠. 하지만 나탈리는 그 구절을 통해 약을 한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지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삶에 변화를 주는 거겠죠?

수업을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요구한다.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으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여러분, 분명하고 아주 솔직하게 써야 해요."라는 말만 던져버린다면 그것은 선생이 아니다. 수업시간에 나는 학생들과 함께 여러 가지 방법의 글쓰기를 시도해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 알게 된다. 교과서적인 진도에 따라 "세 번째 시간에 이러이러한 것을 배우면, 여러분은 글을 잘 쓰게 될 거예요"식으로 수업을 진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p18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에서
 
당신 속에서 싸움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도록 그냥 내버려 두라. 하지만 그 싸움의 한 구석에서, 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실제적인 마음이 조용히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 마음이 노트로 옮겨져 더 깊고 평화로운 곳에서부터 나온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이 두 개의 마음이 같이 살기 때문에, 때로는 그것이 동시에 글에 표현된다. 더구나 우리는 이 두 싸움꾼들은 언제까지나 묶어 두고 억누를 재간이 없다. 억누를수록 이 싸움꾼들은 더욱 결사적으로 들고 일어서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5분 혹은 10분 동안 그들이 노트에 대고 소리치는 것을 허락해 줄 수밖에 없ㄷ가. 그 감정이 이끄는 대로 글쓰기 속으로 빠져들라. 싸움을 걸어 오는 목소리들에게 글쓰기 속으로 빠져들라. 싸움을 걸어 오는 목소리들에게 글쓰기 속으로 빠져들라. 싸움을 걸어 오는 목소리들에게 글 쓰는 공간을 허락하고 나면 그들의 불만이 너무도 빠르게 사그라드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p52 ‘습작을 위한 글감 노트 만들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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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살아, 단 한 번의 삶이니까 - 거리의 아이 최성봉,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최성봉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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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용
다들 아시겠지만 프로필에 나와있는 내용을 자세하게, 느낌을 살려 실은 자서전입니다.
프로필만 봐도 대충 아시니 패스!

2. 구성
 1부 - 잊을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나의 유년 : 길거리에서의 10년
 2부 - 새롭고 낯선 세계로 첫발을 내딛다 : 야학에서의 3년
 3부 - 나도 남들처럼 살 수 있을까 : 학교 그리고 음악
 4부 - 이제 나 행복할 수 있을까 : 세상속으로 한 발짝
 + 인터뷰 : 최성봉의 지난 시간들을 증명하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포함해서 이렇게 구성되어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적으면서 느낌을 따로 옮겨놔서 자체만으로 감동을 주게 만드네요.
그 중 몇 단락 옮기면서 느낌을 적어봅니다.

p23
 햇볕은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만큼 강렬하고 거리는 광장처럼 넓다.
 나는 밝은 것도 넓은 것도 싫었다.
 좁고 캄캄한 곳이 좋았다.
 바퀴벌레처럼.
 내겐 친구가 없지만 어둠이 내 친구 같았다.

p27
 나를 재워준 사람들은 각기 달랐지만 그 끝은 항상 같았다.
 그들이 나가라고 하거나, 내가 제 발로 나오거나.
 거리로 돌아온 아침이면 지붕이 없는 그곳이 내 집인 듯 편안했다.

p54
 제각기 다른 이유로 거리에 나왔지만 사람들의 목적은 같았다.
 돈.
 돈 때문에 인생의 사지로 몰린 사람들이
 껌을, 떡볶이를, 오뎅을 팔았다.
 우리 모두에게 용전동 거리는 세상의 끝이었다.
 이곳에서조차 내쳐지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p59
 한번 북받친 울음은 시도 때도 없이 터져나왔다.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올 때,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 기대어 서 있을 때,
 컴컴하고 인적 없는 용전동 뒷골목을 걸을 때,
 느닷없는 울음이 속수무책으로 터져나왔다.
 이후로 한참 동안 나는 울면서 욕하고 울면서 잠들고
 울면서 껌을 팔았다.

1부를 접하면서 처음에 인간세상을 떠나 정글이라는 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글리나 타잔을 생각했었습니다. 동물들의 곁에 살면서 그들의 말과 생활방식을 배웠듯 최성봉씨도 고아원에서 나와 길거리에 살면서 그 곳 사람들의 어투와 생활방식을 배우며 살았겠죠.

그러다 저 자신을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이분에 비하면 무척 행복하긴 하지만 아는 사람도 적고 남들과 생각하고 사는 게 달라 외로울 때가 많았죠. 처음에 읽었던 책 `읽어야 산다`의 저자이신 정회일씨도 비슷한 삶을 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p69
 뼛속까지 외롭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누나들한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듣거나
 담배 한 대를 얻어 피우는 게 절실했다.

p86
 하지만 이 거리에서 누가 선량한가.
 누구의 편에 서야 정의로운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경찰들조차 내게는 정의로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의의 편도 악한의 편도 아니었다.
 나는 내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의 편,
 내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의 편이었다.

p129
 나는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이제는 제발 죽여달라고 기도했다.
 신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은총은 내 삶을 끝장내주는 것,
 그리하여 내 발목에 채워진 고통의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10년 넘은 고통의 나날 속에서 야학을 통해 한글을 접하게 되고 음악을 만나면서 세상에 뒤늦게 다가가게 됩니다. 꿈도 그렇게 갖게 되었구요.

p170~171
 내가 합창의 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
 내가 내는 소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진다는 게 좋았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호흡하고 똑같이 소리 내는 일은
 그들과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같았다.

p200
 십 년을 넘게 이름도 없이 캄캄한 절망 속에서 살았는데
 한꺼번에 세 가닥의 빛줄기가 내게 비친 것이다.
 나만의 공간,
 최소한의 생활비,
 그리고 학교.

지옥의 끝에서 살다 자신의 꿈을 찾아 한발짝 한발짝 나아가는 최성봉씨...
지금 그분이 부른 노래나 목소리를 들으며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느낌을 살리고 싶었고 그 분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읽는 마음을 길거리에서 배웠지만 그분의 마음은 순수한 청년으로 느껴집니다. 지금도 간간히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계시죠.

p283
 세상 바깥에서 겉돌던 내가
 비로소 세상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사이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세상 속에 들어온 내가 할 일이었다.

p285
 버려진 아이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을 때
 내가 느꼈던 외로움과 고민이 이 친구들에게도
 고스란히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과 손을 잡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통하는 게 있었다.
 그동안 말라버렸던 눈물이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이 친구들의 눈을 보자 흘러나왔다.

p290
 세계적인 이목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스타가 되지 않았다.
 그런 걸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할 일은
 꾸준히 음악으로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뿐이다.
 나는 이제 시작이니까.

이 책을 보며 나도 최성봉씨처럼 어러움을 넘어 성공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오히려 제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하며 살았던 게 부끄러웠습니다.
롤모델은 아니지만 한번 만나며 친해지고 배우고 싶습니다.

이 분이 경희사이버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생했던 만큼 행복한 나날이 많으리라 생각하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p283
 세상 바깥에서 겉돌던 내가
 비로소 세상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사이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세상 속에 들어온 내가 할 일이었다.

p285
 버려진 아이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을 때
 내가 느꼈던 외로움과 고민이 이 친구들에게도
 고스란히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과 손을 잡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통하는 게 있었다.
 그동안 말라버렸던 눈물이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이 친구들의 눈을 보자 흘러나왔다.

p290
 세계적인 이목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스타가 되지 않았다.
 그런 걸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할 일은
 꾸준히 음악으로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뿐이다.
 나는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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