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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 - 신해철 유고집
신해철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마왕 신해철(신해철 지음, 문학동네 펴냄)’은 2014년 의료사고로 원치 않게 하늘나라로 간 故 신해철을 기리며 생전에 남긴 글을 모은 유고집입니다. 예전에 남긴 글이 곳곳에 있지만 데뷔하기 전 유년~학생 때 기억, 이후 생각들은 부분적으로 알려진 걸 제대로 모아 담은 것입니다.
뮤지션이면서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걸 주저하지 않은 마왕 신해철, 저에겐 한명의 롤 모델이자 팬덤의 존재였죠. 고등학교 때 ‘고스트 스테이션’을 간간이 들으며 이름만 듣던 신해철 그리고 넥스트를 알게 되었고, 덤으로 인디밴드의 존재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신해철은 노래든 글이든 말이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마초나 간통 등 금기시되던 것을 드러냈고, 북한 미사일 발사 찬양(을 가장한) 퍼포먼스까지 하는 등 언론을 크게 장식했고, 안티를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한 팬을 만들었습니다.
주변의 비난과 찬사 속에 쿨하게 자신의 길을 갔던 마왕 신해철...
저는 이 유고집을 읽으며 한때 웃으며 읽고 들었던 그의 생각을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내용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페이지는 많아 보이지만 딱히 어려운 단어나 표현 없이 쉽게 읽을 수 있으니 부담가질 필요 없습니다.
1부 나, 신해철
신해철의 일대기가 담긴 자서전입니다. 간간히 접하게 되는 그의 생각을 보고 있자면 그때부터 저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나의 꿈은 번데기 장수였다. 이 때문에 주위 가족 및 친족(몇 번이나 얘기하지만 울 아부지 십 남매, 엄마 칠 남매, 나는 그냥 남매, 게다가 고모 삼촌들이랑 같이 살았다), 관공서(래봤자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로부터 갖은 압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건히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중략)
여기서 번데기 장수의 사업적 비전과 골목길을 지배하는 강렬한 카리스마에 대해 논해보자. 골목길에 “뻐언~”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면 동네 아이들의 귀는 쫑긋 선다.
- p53~55 ‘어릴 적 내 꿈’에서
난 종교가 없다. 단지 뭐든 종교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아보려던 것인데, 생각보다 방황이 길어져 오늘날까지 왔다.
- p61~62 ‘나에겐 종교가 없다’에서
2부 마왕, 세상에 맞서다
세상 속 고정관념에 맞서던 신해철의 기록입니다. 때론 엉뚱하게, 때론 진지하게 나름의 주장을 펼쳐왔죠.
우리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가 미스코리아 출신이거나 재벌가 딸내미라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곰보라 해도 어머니는 어머니고, 도박꾼에 한량이라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를 사랑하긴 하지만 이러저러한 점만은 절대 닮지 말아야겠다 하듯, 우리 민족사의 오점과 무능도 그저 사실로 인정하고 거기서 더욱 많은 교훈을 추출해내야겠다 하는 태도가 아닐까.
하다못해 축구 경기만 해도, 졌으면 졌다 인정하고 패인을 분석해봐야지, 분명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는데 재수가 없어서 졌다며 술만 들이켠다면 다음 경기의 승패는 불 보듯 빤하지 않은가. 갑갑한 노릇이다. 중국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기 전에,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기 전에, 우리의 역사에서 자뻑과 허풍을 덜어내고 진실만을 남겨놓을 일이다.
- p287 ‘역사 왜곡은 우리도 한다’에서
선진국이란 과연 무엇일까. OECD 가입국이라고 해서 과연 우리가 선진국일까? 빌어먹을, 오이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시디로 구우면 그게 오이시디지, 우리네 삶과 그게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경제지표의 백분의 일만큼도 실제적인 삶의 질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입만 열면 경제, 뒤떠든다. 손에 든 만원짜리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내 손에 십만원만 들어오면 행복해지리라고 믿는다.
- p353 ‘분노의 질주’에서
3부 안녕, 마왕
마왕 신해철을 떠나보낼 즈음 지인, 유명인사가 남긴 말들입니다. 글마다 신해철이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에필로그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던 신해철을 내게는 젊은이였지만 사실상 그들 세대는 이미 우리 사회의 중견이다. 그래도 그는 내 마음속에 ‘자유로운 청춘’으로 각인되어 있다.
- p406 소설가 황석영의 글에서
우리는 훌륭한 뮤지션을 잃었다. 그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상실이나, 우리가 잃은 것은 그뿐이 아니다. ‘고스트스테이션’ 세대에게 신해철은 가수 이상의 존재였다. 그들은 그가 골라주는 음악들을 통해 감각을 기르고, 그가 사회를 향해 퍼붓는 발언들을 통해 가치관을 형성했다.
- p410~411 미학자 진중권의 글 ‘마왕을 보내며’에서
마왕 신해철, 이 유고집을 읽으며 전 재미를 느꼈지만 동시에 세상에 어떻게 목소리를 내는 가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신해철에 대해 각자 생각하는 바는 다르지만, 저는 우리 역사에서 길이 남을 뮤지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어릴 때 나의 꿈은 번데기 장수였다. 이 때문에 주위 가족 및 친족(몇 번이나 얘기하지만 울 아부지 십 남매, 엄마 칠 남매, 나는 그냥 남매, 게다가 고모 삼촌들이랑 같이 살았다), 관공서(래봤자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로부터 갖은 압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건히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중략) 여기서 번데기 장수의 사업적 비전과 골목길을 지배하는 강렬한 카리스마에 대해 논해보자. 골목길에 "뻐언~"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면 동네 아이들의 귀는 쫑긋 선다. - p53~55 ‘어릴 적 내 꿈’에서 난 종교가 없다. 단지 뭐든 종교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아보려던 것인데, 생각보다 방황이 길어져 오늘날까지 왔다. - p61~62 ‘나에겐 종교가 없다’에서 우리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가 미스코리아 출신이거나 재벌가 딸내미라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곰보라 해도 어머니는 어머니고, 도박꾼에 한량이라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를 사랑하긴 하지만 이러저러한 점만은 절대 닮지 말아야겠다 하듯, 우리 민족사의 오점과 무능도 그저 사실로 인정하고 거기서 더욱 많은 교훈을 추출해내야겠다 하는 태도가 아닐까. 하다못해 축구 경기만 해도, 졌으면 졌다 인정하고 패인을 분석해봐야지, 분명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는데 재수가 없어서 졌다며 술만 들이켠다면 다음 경기의 승패는 불 보듯 빤하지 않은가. 갑갑한 노릇이다. 중국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기 전에,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기 전에, 우리의 역사에서 자뻑과 허풍을 덜어내고 진실만을 남겨놓을 일이다. - p287 ‘역사 왜곡은 우리도 한다’에서 선진국이란 과연 무엇일까. OECD 가입국이라고 해서 과연 우리가 선진국일까? 빌어먹을, 오이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시디로 구우면 그게 오이시디지, 우리네 삶과 그게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경제지표의 백분의 일만큼도 실제적인 삶의 질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입만 열면 경제, 뒤떠든다. 손에 든 만원짜리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내 손에 십만원만 들어오면 행복해지리라고 믿는다. - p353 ‘분노의 질주’에서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던 신해철을 내게는 젊은이였지만 사실상 그들 세대는 이미 우리 사회의 중견이다. 그래도 그는 내 마음속에 ‘자유로운 청춘’으로 각인되어 있다. - p406 소설가 황석영의 글에서 우리는 훌륭한 뮤지션을 잃었다. 그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상실이나, 우리가 잃은 것은 그뿐이 아니다. ‘고스트스테이션’ 세대에게 신해철은 가수 이상의 존재였다. 그들은 그가 골라주는 음악들을 통해 감각을 기르고, 그가 사회를 향해 퍼붓는 발언들을 통해 가치관을 형성했다. - p410~411 미학자 진중권의 글 ‘마왕을 보내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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