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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 3호가 나왔고 여기에 "열 여섯 소녀의 잠옷 그리고 탐정의 실패"라는 제 글이 실렸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케이트 서머스케일이 <The Suspiscions of Mr Whicher>라는 아주 훌륭한 책을 써놓았기 때문에 사실 저는 그걸 요약하는 정도만 했어요. 그런데 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주어진 원고량에 맞게 분량을 줄이고 또 줄이느라 그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1860년 영국 윌트셔 지방 로드힐 저택에서 일어난, 프랜시스 새빌 켄트라는 세 살짜리 남자아이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건 이야기예요. 대중이 탐식하던 범죄 이야기가 뒷골목 빈민가가 아니라 점잖은 부르주아 집안의 철옹성 같은 내부로 바뀌게 되고, "바로 이 집안 식구들 가운데 범인이 있다"는 추리소설의 전형적 설정의 시초가 된 실제 사건이지요. 이 사건이 뛰어난 탐정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고 미궁에 빠졌고, 대중들의 "탐정열"을 자극했으며, 결국 이 사건을 바탕으로 탐정소설의 기원으로 꼽히는 윌키 콜린스의 <문스톤>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건 5년 뒤엔가 죽은 아이의 누나 콘스탄스 켄트(16세)가 범행을 자백해 사건이 마무리 되지요. 그렇지만 콘스탄스의 자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사실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 세기 넘어서까지 계속 사람들의 호기심과 의문을 자극했지요. 과연 사건의 진상은 무엇이었을까? 

에르퀼 푸아로는 <시계들The Clocks>에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합니다. "콘스탄스 켄트라는 가엾은 소녀가 있었지. 틀림없이 사랑했을 어린 동생을 살해해야 했던 진짜 동기가 무엇이었을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어. 하지만 나한테는 아닐세. 그 사건 기록을 읽자마자 나한테는 빤하게 보였다네." 그러면서 뭐가 보였다는 건지는 말을 안 해요. 아 정말 이 잘난척하는 영감탱이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지 않은가요? 그런데 다행히도 서머스케일이 2008년에 책을 내서 사건을 재구성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스포일러가 되면 안 되니까 얄밉지만 푸아로처럼 더 이야기 안 하고 여기에서 글을 맺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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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0-2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블루고바이님(맞나?) 글이 미스테리아 3호에 실려있다니 너무 멋져요 ^^
아직 3호 구입은 안했고 1,2호도 별로 읽은 게 없지만 고비(?)님 글은 꼭 읽어볼게요^^

bluegoby 2015-10-21 13:45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해요! 미스테리아 애독자이시라니 반갑고 사실 2호에도 있습니다. MIRROR라는 같은 코너거든요 ㅎㅎ 참 그리고 고비예요^^
 

셜록 홈스는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피조물이지만 아주 오래 전에 아서 코난 도일의 피조물의 지위를 훨씬 능가하게 커져버렸고 오늘날까지 계속 확장되는 문화적 현상이다. 현대인인 나의 삶을 예로 들면, 몇 년 전에는 BBC 드라마 <셜록>을 부들부들 떨며 아껴 봤고(너무 가끔 너무 조금씩밖에 안 만든다), 프로그웨어스에서 나온 게임 <셜록 홈스: 죄와 벌>은 내 인생 최고의 게임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정작 셜록 홈스 시리즈는 몇 해 전에 다시 한번 죽 읽었지만 BBC 드라마와 프로그웨어스 게임만큼 아끼며 달게 소비하지는 않았다. 원본보다 파생상품에 더 열광하는 셈이다.  


그런데 코난 도일 생전에도 원본보다 현상이 더 컸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누구나 셜록 홈스와 동일시하는 트레이드마크인 사냥모자와 파이프. 이건 작가가 아닌 삽화가 시드니 패짓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미 홈스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사냥모자를 쓰고 케이프를 입고 파이프를 물고 런던 거리를 걷는 실존 인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베이커가 221B라는 실재하지 않는 주소에 온갖 사건을 의뢰하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잃어버린 목걸이나 고양이를 찾아 달라는. (정답: 목걸이는 목에 걸려 있고 고양이는 발정났음) 셜록 홈스의 인기가 너무 커져서 ("역사소설") 작가로서 자기의 커리어조차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한 코난 도일이 홈스에게서 벗어나려고 라이엔바흐 폭포에서 떨어뜨려 죽였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 독자들 원성 때문에 다시 되살릴 수밖에 없었지만. 하지만, 이렇듯 셜록 홈스를 자신의 적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려 하던 아서 코난 도일이 스스로 홈스가 되어 실제 사건을 해결한 일도 있었다. 영국에 상고심 제도가 생기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 "조지 에들지 사건"이다. 그리고 줄리언 반스가 이 이야기를 가지고 <용감한 친구들>(원제 Arthur & George(2005)>을 썼다. 


인도계와 스코틀랜드계 혼혈인 사무변화사 조지 에들지는 (아마도 혼혈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가축 훼손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받고 빈약한 증거에도 유죄판결을 받는다. 3년을 복역하고 석방된 뒤 조지 에들지는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아서 경을 찾아온다.

 

과연 아서가, 홈스가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곤 했듯이, 잘못된 수사를 한 경찰들의 코를 납작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줄리언 반스가 썼다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부들부들)


특히 2권에서 앤슨 지서장과 아서의 벽난로 대화 장면은 압권이고 아서가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낸 뒤 조지의 독백은 머리를 띵하고 치는 것 같았다.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일수록 담론 속에서 반복적으로 대상화되어 활인화처럼 고정된 이미지로 떠오르기 마련이라, 복잡다단한 개성과 깊은 생각을 불어넣기는 힘든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줄리언 반스는 아서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랍게 조지를 대상화의 함정을 피하며 만들어냈다.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스를 자신의 소유물이자 자기 지성의 일부로 생각했겠지만 홈스는 작가의 손아귀를 벗어나 작가가 죽고 한 세기가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 한편 줄리언 반스가 그려낸 아서와 조지는 단순화하고 고정하고 규명하려는 외부의 모든 시도를 능가하고 작품 속에서 살아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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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때 2015-10-29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은 통 안 읽으면서 사고싶은 책들만 눈독... 아 부들부들.. 재미있겠지...
 

매일 밤마다 자려고 누우면 2호가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생각나는 이야기가 없거나 귀찮아서 안 해주면 잠이 안 온다고 낑낑거리면서 잠들기 힘들어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 일단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면 꼭 결말까지 가기 전에 중간쯤에 색색거리고 잠이 들어 버린다. 


그래서 어제도 편히 자려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겠다.. 하고 머리를 굴리다가 생각난 게 내가 어릴 때 읽은 이 이야기다. 




(인종차별적 내용이라고 해서 한동안 안 나오다가 요새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같다. 그런데 인종차별적 단어를 제목에 그대로 넣은 책도 있네?)


어릴 때 내가 본 책은 2도 인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컬러인쇄한 동화책이 매우 드물었다. 



줄거리는, 멋지게 차려 입고 길을 나선 삼보가 "잇템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하는 호랑이들을 만나 웃옷, 바지, 우산, 장화까지 모두 털렸는데, 이 호랑이들이 삼보를 쫓아 나무 주위를 빙빙 돌다가 너무 빨리 돌다 보니 원심분리되어 '버터'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삼보 옷가지도 되찾고 엄마가 "버터"로 "팬케이크"를 만들어줘서 배가 터지도록 맛있게 먹었다는 결말. (내 기억이니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이 이야기에서 가장 신비로운 점은 호랑이>버터>팬케이크의 변화과정이다. 도대체 이 세 가지의 성분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지?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호랑이와 버터 맛의 팬케이크를 상상하면서 야릇한 미감의 자극을 받았던 것이 떠오른다. 이 맛의 비밀을 밝히면 호랑이버터칩을 상품화할 수 있을 텐데


아무튼, 둘째는 이미 잠이 들었고, 첫째만 자지 않고 결말 부분을 들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X소리"라는 격렬한 항의가 있었다. 


"하지만 원래 그런 거야. 좋은 책은 다 팬케이크로 끝나잖아."

"무슨 책?"



이런 거. 

특히 <코끼리와 버릇없는 아기>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초기 그림을 볼 수 있다.

팬케이크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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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정 2015-10-1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도대체 빙빙 돌다가 버터 되는게 무슨 내용인지 몰겠더라도요.
 

1849년 9월 27일 새벽, 에드거 앨런 포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 엘미러 로이스터가 사는) 리치몬드에서 증기선을 타고 떠난다. 필라델피아에 짭짤한 돈벌이가 되는 볼일이 있었고 뉴욕 집에서는 사랑하는 이모(이자 장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닷새 뒤인 1849년 10월 3일, 볼티모어에서 인사불성 상태로 발견된다. 몸에 맞지도 않는 낡은 옷을 입고 있었고 볼티모어에 와있는 까닭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닷새 사이 포의 행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포는 조지프 모런 의사의 병원에서 고열에 시달리고 헛소리를 하다가 10월 7일 숨을 거두고 만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레이놀즈"라는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고 한다. 포의 초라한 장례식은 단 네 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고 3분만에 끝이 났다. 포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장모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기에게 편지를 보내려면 E.S.T 그레이라는 사람을 수신인으로 해서 보내는 사람 이름은 쓰지 말고 필라델피아로 편지를 보내 달라는 수수께끼같은 부탁을 했다. 


"추리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E. A. 포의 죽음이, 어떤 추리소설에 나오는 수수께끼 못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았고 그 동안 수많은 추측을 낳았다. 술, 약물과용, 자살, 살인, 콜레라, 공수병, 매독, 인플루엔자, 선거부정에 이용되고 희생되었다는 이론까지. 죽기 마지막으로 부른 '레이놀즈'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는 이 의문을 열쇠로 삼아 당시의 실제 사실을 토대로 포의 죽음의 비밀을 푸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퀜틴 클라크는 이 죽음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바로 포가 탄생시킨 탐정, 뒤에 나타날 모든 소설 속 탐정들의 조상인 C. 오귀스트 뒤팽 뿐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포가 뒤팽을 창조할 때 모델로 삼은 현실의 인물. 그래서 그 인물을 찾으러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고, 두 명의 후보를 발견하는데 이 두 사람이 모두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엎치락 뒤치락 모험이 시작된다. 한 명은 "뒤팽 남작"이라고 하는 변호사/사기꾼이고 또 한 명은 (비독을 연상시키는) 천재적 추리력으로 경찰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을 해결해주곤 했으나 지금은 은퇴한 "뒤퐁트"라는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오귀스트 뒤팽의 모델이 조르주 상드라는 뜻밖의 추리도 제시된다. 상드의 원래 성이 '뒤팽'이기는 하다. 사실 <수기>를 출간해 미국에도 널리 알려졌고 당시 가장 유명한 탐정이었던 비독이 없었다면 뒤팽도 없었을 거라는 게 정설이다. <모르그 가의 살인>이 굳이 파리를 배경으로 한 까닭도 비독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책의 결말로 가면 포의 죽음을 둘러싼 실제 정황을 모두 짜맞추는 솔루션을 뒤팽과 뒤퐁트가 각기 하나씩 제시하는데, 의문의 핵심인 레이놀즈의 정체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는 포가 발견된 라이언스 술집에서 그날 선거가 치러졌는데, 선거 감독관이었던 헨리 레이놀즈라는 것이고(포가 선거부정에 연루되어 희생되었다는 이론), 하나는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포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리라는 추측이다. 


후자의 추측을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폴 콜린스는 <The Fever Called Living>에서 '레이놀즈'가 남극 탐험가 제러마이어 레이놀즈일 것이라고 했다. 레이놀즈는 남극에 숨겨진 세계로 가는 문이 있다는 내용의 강연을 해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했고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 영감을 주었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에 실린 "심스 구멍"에도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명계로의 여행을 떠나기 직전인 포가, 자신의 안내자로 떠올릴 만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포는 우리에게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물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의 삶과 죽음까지 무궁무진한 미스터리의 소재로 남겨두고 간 셈이다. 현실이 허구가 되고, 허구가 또 다시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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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Shore 2015-06-0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포는 그의 작품으로서뿐 아니라 짧고 비극적이었지만 수수께끼 같은 죽음으로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based on a true story`라는 표현을 넘어 `inspired by a true story`라는 말로 - 사실은 말 같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 호객 행위를 벌입니다. 말하자면 사실보다 허구의 살이 훨씬 더 많다는 자백이겠지요. 포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이론과 상상도, 점점 더 (어쩌면 지극히 단순할 수도 있는) 사실로부터 멀어져, 독립된 소설로 진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bluegoby 2015-09-17 10:04   좋아요 0 | URL
흑, 벌써 세 달 전 댓글 ㅜㅜ 그동안 뭐했는지 모르겠네요.
애들 방학이라 밥을 열심히 했고, 방학 끝나자마자 마감이 두 개 있었던 게 어렴풋이 떠올라요 ㅎㅎ 잘 지내셨죠?

나무 2015-08-1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밴버드의 어리석음, 포의 죽음 두 권을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으로 가져갔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읽는 맛이 좋았습니다. 한다하는 사람들 틈에서 어리석음으로 한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 무슨 책이냐고 다들 묻더라고요., 세상을 바꾸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요. 취생몽사, 뭔가 하려고 하는 것들이 제일 무섭다는...ㅋㅋ 그런 비꼼을 넣어가며... 마음이 아프고 짠했습니다.

bluegoby 2015-09-17 10:05   좋아요 0 | URL
제가 여름잠 자는 동안 나무 선생님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 !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정말 멋있고 부러워요. ^^

hahajoy 2015-08-2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콜린스 요즘엔 뭐하고 있나 싶어서 구글 검색하다가 여차저차 여기까지 들어왔습니다~!^^ 여기 말고 다른 홈페이지에 쓰셨던 글 중에 그래도 폴 콜린스를 좋아하는 독자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 그래서 `여기요~! 저요! 저요!`하려고 댓글 답니다! ^^ 정말 재밌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책들인데 안타까워요. ㅠㅠ 혹시 출간 예정인 다른 폴 콜린스 책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bluegoby 2015-09-17 10:0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반가워요. 저랑 영혼의 쌍둥이이신듯. 안타깝지만 출간 예정인 책은 없답니다..하지만 하하조이님 같은 분들을 위해 제가 계속 팬질하며 소식 전하겠습니다^^

합연실 2015-09-0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낼 수업준비하며 딴짓하다 백만년만에 들렀다네. 이사를 했넹. 오늘 첫 수업, 포의 어셔가의 몰락을 했었는데, 포에 대한 포스팅이 있어 눈팅흔적 남기고 간다. 여전히 엄청난 독서량..대단하오.. 그럼 언제 또 오겠숑.. 원주에서.

bluegoby 2015-09-17 10:10   좋아요 0 | URL
와..그 과 학생들 좋겠다. 첫 수업이 어셔 가의 몰락이라니. 나도 듣고 싶은 걸. 잘 지내지?
 

아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그런데 절판이라니!!) Oxford English Dictionary(OED)가 만들어지기까지 70년 동안의 끈질긴 노력을 담은 책이다. 


대략의 과정을 간추리자면, 1861년 초대 편집장 허버트 콜리지가 부임. 자원봉사자들에게 1250년부터 현재까지 문헌을 훑어 어떤 단어가 쓰인 예문을 보내달라고 한다(최초의 크라우드소싱이 아닐까 싶음). 콜리지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퍼니발이라는 정신없는 사람이 편집장이 됨. 무수한 예문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사방에 흩어짐. 1879년 (열네 살 때 학업을 그만두고 은행에서 일하던) 제임스 머리가 3대 편집장이 되어 예문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상당부분이 불쏘시개가 되거나 쥐 둥우리가 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어쨌든 머리는 불가능한 작전을 계속 해나간다. 수백만 개의 예문을 취합, 분류, 정리하는 일의 엄청난 노가다성은 물론이고(컴퓨터는 물론이고 타이프라이터도 없던 시대다. 자원봉사자들이 손글씨로 제각각 써서 보낸 예문들의 데이터베이스가 표지 사진 뒤쪽에 있는 서가다), 사전에 들어갈 단어를 선별하는 일(최종적으로 초판본에는 41만개 남짓의 표제어가 들어갔다)만 해도 엄청나게 골치 아팠을 텐데, 게다가 단어의 "정의"를 작성한다는 고도의 지적인 행위가 필요하다. 단어의 의미를 처음으로 규정하여, 말하자면 언어의 토대를 창조해 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J. R. R. 톨킨도 젊을 때 OED 편집자로 일하며 'w' 부분을 열심히 작업했다. 톨킨은 이때를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배웠던 시기"라고 했다. 왜 아니었겠는가. 


나도 번역하다가 OED를 들춰볼 수밖에 없는 때가 종종 있다. 그냥 요즘 글을 번역할 때는 더 간단한 사전을 쓰지만, 책에 옛날 문헌이 인용되어 있을 때에는 정확한 뜻을 알려면 OED가 꼭 필요하다. 지금 내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는 OED는 하드드라이브에서 딱 645MB를 차지한다. (영화 한편이 몇 기가씩 되는데) 이렇게 방대한 지식이 담겨 있는 OED가 이렇게 컴팩트하다니! 이런 실물 OED에 비하면 얼마나 쓰기 간편한지 쓸 때마다 감탄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사전을 만들 때를 생각해 보면, 예문 모으고 단어 고르고 정의 작성하고.. 이렇게 손으로 쓴 원고를 식자공에게 넘겨 조판한 다음 교정하고...(한줄에 오자가 많게는 20개나 나왔다고 한다) 다시 조판하고 재교정하고...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사전"인 15,490쪽짜리 책을. 현대인의 급한 성미로는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다. 아무튼 이런 막대한 인간적 노력(예문을 모아 보내는 자원봉사자부터 최종 교정자까지)의 집약체가, 내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에서는 눈에 잘 뜨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죄책감마저 느껴진다. 


이 책을 읽다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집에서 아르바이트로 동아출판사 영어사전 편집하는 일을 하시던 것도 생각났다. 그때는 내가 영어 까막눈이었으니 아버지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본 장면은 펜으로 잔뜩 무어라 표시가 된 교정지였다. 단어를 고르는 일이나 정의를 작성하는 일(그때는 일본 사전을 많이 베꼈다), 예문을 고르는 일은 아니고 아마 교정 작업을 나누어 맡아서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도 컴퓨터 편집 이전 시대니 하드카피만을 이용해서 교정작업을 했을 것이다. 사전은 경전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prescriptive) 한편으로 시대에 따라 변해야만 한다(descriptive)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창작물과 달리 한순간도 완결/완성되지 못하고 끝없는 인간의 노력을 요구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이 일에 열정을 바칠 수 있었는지가 이해가 간다. a부터 zyxt까지 모든 영어 단어를 한 곳에 모아놓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짜릿한 희열이 느껴지지 않는가? (내가 정보성애자라 그런가..) 아마 아버지도 그래서 이름 한 자 책에 올리지 못하는 일이었을지라도 사전 편찬에 참여한 것을 자랑스러워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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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omi 2015-04-1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업이 번역가이신가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계셔서 부럽습니다^^

bluegoby 2015-04-15 16:09   좋아요 0 | URL
네^^진입장벽이 없어서 쉽게 하게 됐는데 지금은 출구전략을 찾고 있는;; 아니 농담이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회화나무 2015-04-1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슨 사이트에 질문을 했는데 티스토리가 공개되어 겁이 나서 얼른 보호조치를 했습니다. ㅠㅠ

bluegoby 2015-04-15 16:30   좋아요 0 | URL
노출 수위(?)를 조절하기가 참 어려워요... 저도 광고한답시고 이 블로그 만들었는데 차마...ㅋㅋ정체공개를 못하고 있어요. 비밀글 암호 알려주세요~~

라로 2015-04-15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혀질 뻔한 책에 대한 글이라 반갑네요!! 저도 이 책 재밌게 읽었고 여기까지 끌고왔는데 절판이라고 하니 괜히 제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은~~~~^^;;;

bluegoby 2015-04-15 16:29   좋아요 0 | URL
여기까지라고 하시니 외국에 계신가 봐요. 그 책 꼭 쥐고 계세요.^^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다른 책 찾다가) 발견했는데 보석같은 책이 절판이더라구요..

stella.K 2015-04-15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오래 전 어떤 사람한테서 안 읽는다고 해서 가져 왔는데
아직도 안 읽고 있어 중고샵에 팔까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군요.
클날 뻔했습니다.ㅋㅋ

고비 2015-04-17 09:2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한번 읽어 보세요.^^ 한편 절판된 책이 중고시장에서는 높은 가격으로 팔리는 것 같던데 책테크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NorthShore 2015-04-22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비님 덕택에 이 책을 찾아 구매했습니다. 사이먼 윈체스터가 이런 논픽션을 흥미진진하게 잘 쓰는 사람으로 소문 나 있죠. 이 책이 나왔을 당시 북미 언론이 크게 다루며 널리 알린 사실도 기억나네요. 사전을 만드는 작업처럼 많은 노력과 주의와 열정이 필요한 분야도 드물 거라고 생각합니다. 며칠전 막내 아이에게 `The Right Word`를 읽어주었는데, 사실은 제가 더 그 책에 끌렸습니다. 시소러스의 대명사인 피터 로제의 일생을 요약한 동화인데 언어에 대한 로제의 집착과 끈질긴 노력이 실로 감탄스럽고 존경스럽더군요.

bluegoby 2015-04-22 10:14   좋아요 0 | URL
새알밭님 말씀 듣고 사이먼 윈체스터가 또 뭘 썼나 찾아봤더니 흥미로운 주제가 많네요. 한번 살펴봐야겠어요. 로제 전기가 그림책으로 있다니 신기해요. 저도 로제 시소러스 갖고 있지만 사람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해 봐서.. 웹스터도 사람이니까 롱맨,코빌드, 메리엄도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문득 드네요.ㅋㅋ 시소러스 얘기하니까 제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전이 한 권 있다는 게 생각나요. 딱 손바닥만한 크기의 메리엄 웹스터 시소러스였는데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완독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마 재미있어서.. 였겠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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