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는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피조물이지만 아주 오래 전에 아서 코난 도일의 피조물의 지위를 훨씬 능가하게 커져버렸고 오늘날까지 계속 확장되는 문화적 현상이다. 현대인인 나의 삶을 예로 들면, 몇 년 전에는 BBC 드라마 <셜록>을 부들부들 떨며 아껴 봤고(너무 가끔 너무 조금씩밖에 안 만든다), 프로그웨어스에서 나온 게임 <셜록 홈스: 죄와 벌>은 내 인생 최고의 게임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정작 셜록 홈스 시리즈는 몇 해 전에 다시 한번 죽 읽었지만 BBC 드라마와 프로그웨어스 게임만큼 아끼며 달게 소비하지는 않았다. 원본보다 파생상품에 더 열광하는 셈이다.  


그런데 코난 도일 생전에도 원본보다 현상이 더 컸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누구나 셜록 홈스와 동일시하는 트레이드마크인 사냥모자와 파이프. 이건 작가가 아닌 삽화가 시드니 패짓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미 홈스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사냥모자를 쓰고 케이프를 입고 파이프를 물고 런던 거리를 걷는 실존 인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베이커가 221B라는 실재하지 않는 주소에 온갖 사건을 의뢰하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잃어버린 목걸이나 고양이를 찾아 달라는. (정답: 목걸이는 목에 걸려 있고 고양이는 발정났음) 셜록 홈스의 인기가 너무 커져서 ("역사소설") 작가로서 자기의 커리어조차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한 코난 도일이 홈스에게서 벗어나려고 라이엔바흐 폭포에서 떨어뜨려 죽였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 독자들 원성 때문에 다시 되살릴 수밖에 없었지만. 하지만, 이렇듯 셜록 홈스를 자신의 적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려 하던 아서 코난 도일이 스스로 홈스가 되어 실제 사건을 해결한 일도 있었다. 영국에 상고심 제도가 생기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 "조지 에들지 사건"이다. 그리고 줄리언 반스가 이 이야기를 가지고 <용감한 친구들>(원제 Arthur & George(2005)>을 썼다. 


인도계와 스코틀랜드계 혼혈인 사무변화사 조지 에들지는 (아마도 혼혈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가축 훼손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받고 빈약한 증거에도 유죄판결을 받는다. 3년을 복역하고 석방된 뒤 조지 에들지는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아서 경을 찾아온다.

 

과연 아서가, 홈스가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곤 했듯이, 잘못된 수사를 한 경찰들의 코를 납작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줄리언 반스가 썼다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부들부들)


특히 2권에서 앤슨 지서장과 아서의 벽난로 대화 장면은 압권이고 아서가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낸 뒤 조지의 독백은 머리를 띵하고 치는 것 같았다.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일수록 담론 속에서 반복적으로 대상화되어 활인화처럼 고정된 이미지로 떠오르기 마련이라, 복잡다단한 개성과 깊은 생각을 불어넣기는 힘든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줄리언 반스는 아서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랍게 조지를 대상화의 함정을 피하며 만들어냈다.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스를 자신의 소유물이자 자기 지성의 일부로 생각했겠지만 홈스는 작가의 손아귀를 벗어나 작가가 죽고 한 세기가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 한편 줄리언 반스가 그려낸 아서와 조지는 단순화하고 고정하고 규명하려는 외부의 모든 시도를 능가하고 작품 속에서 살아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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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때 2015-10-29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은 통 안 읽으면서 사고싶은 책들만 눈독... 아 부들부들.. 재미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