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은 좀 덜 매력적이다.  그 이유는 '정치'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정치'라는 단어가 전면에 나오면 일단 사고가 경직되는 느낌, 공격적이든 방어적이든 하여간 심리적인 전투 모드에 들어가야할 것 같은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전투모드는 자연스럽게 해제된다. 물론 여러가지 논란꺼리를 제시하긴 하지만 경제서적을 읽듯, 심리학 서적을 읽듯 그렇게 술술 읽어나갈수 있다.  아마도 강의록을 정리한 내용이기에 그럴것이다.  <정치바로 아카데미>(원장 심상정)에서 진보적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는데, 이 책의 독자는 그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인간적인 진보 

나는 이 책이 차별적으로 내세우는 주장의 키워드중 하나가 '인간적인 진보'라고 보았다.  최소한 이 땅의 진보는 인간과 인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니 얼핏 이상하게 보이기는 한다. 과연 무엇이 차별화된다는 말인가?     사실 저렇게 키워드를 뽑아낸 이유가 있다.  저 '인간적'이라는 말은 '결함이 있는 인간'을 뜻하는 것이다.  평균적인 인간은 지고지순하며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인간이 아니다. 수많은 결함을 갖고 있으며 잘 다루지 않으면 제 길을 이탈하기도 하는 그런 인간이다. 

   
  이상 사회를 위한 혁명적 단절론을 앞세워 모든것을 희생하고 삶의 모든것을 걸라고 인간을 미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평균적 한계 위에서 서로 협력하고 나날이 진보하는 것의 가치와 보람을 더 중시해야 한다.  
   

 저자는 다른 말로 '현실'이라는 말을 쓰면서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진보는 더이상 된다고 주장하고, 정치가들에게 이런 주문을 한다. 

   
  정치가가 할 일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래서 사람들이 알고 싶고 참여하고 싶게 이끄는 '다리 놓기'를 하는 것이지, 대중의 무관심과 무지를 탓하며 스스로 민주적 가치를 버리는데 있지 않다.   
   

 

 정당과 대의제 

 또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중 하나가 정당에 대한 것이다. '현실'인식을 강조하는 저자의 인식과 연장선에서 (촛불시위때 자주 언급됐던)직접민주주의는 현대의 국가에서는 비현실적인 주장이며 대의제만이 가능한 정치방식임을 설파한다. 자연스럽게 '정당'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사실 학교에서 '정당이란 정치적 결사체'라고 배운 것이 정당에 대한 개념의 거의 전부였음을 생각하면 이 책이 건네준 정당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내용은 최소한 나에게는 혁신적인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현대 정치의 핵심기구는 정당이다. 갈등이 공적영역에서 정당에 의해 조직되면 갈등의 규모는 커지지만 갈등의 수는 줄어든다. 민주정치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는 정당에 대한 인식이 지나칠정도로 표피적이고 협애해서 이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언론에 나오는 정치 엘리트 집단 정도로 정당을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문제의 핵심은 '대의제를 제대로 하고 투표를 중요하고 의미 있게'만드는데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타협 

'타협'이란 말은 '야합','패배', '부정', '실패' 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어떨때는 동의어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사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일이 타협을 통해서만이 가능한데도 말이다. 용감하게도 저자는 이 점을 에두르지 않고 정면으로 지적했다. 

   
  반대를 하는 것도,기권을 하는 것도, 연합을 하는 것도 적극적 실천을 위한 선택이어야 하지 그자체로 끝나면 안된다. 타협해서는 안된다며 독자성을 고수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정치의 세계에서 주변적 존재를 고착시키는 기능을 할 때가 많다는 것을 꼭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알린스키라는 정치학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한데 알린스키가 했다는 다음의 말이 타협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대변하는 것 같다.  

"타협이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한 마디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단어는 '타협'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만으로도 논란꺼리는 충분하지만 김문수와 특히 박근혜의 실명 비판을 강하게 함으로써 논란꺼리를 더했다. 개인적으로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은 제로에 가까워서 심드렁하긴 했지만 차기 대권 유력주자라니 알것은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자의 주장을 새겨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진보연하는 사람들이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공통점을 열거하며 두 세력은 그 나물에 그밥이라 정의하고 자신의 고고함을 뻐기는 모습이 매우 불편했는데 사실상 이 책이 그러한 모습에 질타를 가하는 것이 보여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렇다고 저자가 과거정권을 그렇게 호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것 같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 원칙만 강조하고 '천사가 아니니 악마'라는 식으로 두드려대니 정나미가 뚝뚝 떨어짐은 물론, 남는건 자존감의 상처와 이질감밖에 없었는데 이 책이 이런 평범한 시민의 답답함을 잘 파악하고 전달(?)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입에 쓴약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쓴 약을 그대로 먹이는 곳은 드물다. 아이에게는 과일향을 섞어서, 어른에게는 당의정이나 캡슐을 입혀서 주는게 의사와 약사의 타협이자 상식이다.  이 책은 진보에게 그런 상식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지적은 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치를 하는 것이지 교단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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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2-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에게 호통치고 불편하게 만드는 진보들을 박상훈 씨가 칼럼 등을 통해 비판하지요.실제 경험담이라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02-08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상훈 씨가 종종 언급하는 소울 알린스키는 빈민운동가이면서 저술가지요.우리나라에도 와서 예전 청계천 빈민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귀를기울이면 2011-02-08 16:39   좋아요 0 | URL
분야가 분야인지라 알린스키란 이름은 이 책에서 처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왔었다니 급 호기심이 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