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40주기를 맞아 출간된 책에 별점 하나와 함께 이런 40자 평이 실렸다.  

"분신 자살도 아름다운 죽음인가요?" 

읽지 않고 쓴 글일테니 서평이라기보다는 그냥 야유라고 해두자. 

자살에 대해 여러 말들이 오가고 또 생각해 보게 된 최근의 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올해 부산에서 있었던 어느 가난한 부자(父子)의 투신 자살 사건이었다. 모두 슬픈 일이었고 아름답기보다는 서럽고 우울한 일로 남는 일이었다.  자살은 당사자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결코 행복하거나 아름답게 그려지기 어렵다. 오히려 그 감당하지 못한 절망이 산자들에게 전염되어 깊은 상처를 남게 하니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음이 그 '죽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면, 그 죽음이 전파되는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함께 고려한다면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히 그 예로 '예수'를 언급하고 싶다.  물론 '예수'는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타살당했다. 사형을 당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건은 이미 예언되어 있던 것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신의 아들로써 당연히 피할 수 있었던 일일뿐 아니라 그의 죽음이 인류의 죄를 대신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자살이라고 보아야 맞다. 자살방법으로 로마 군인을 이용했을뿐. 그런데 그의 자살과 그 이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지금의 기독교 세상을 만든것이다.(개독 논란은 여기서는 접어두자) 종교의 의미를 생각할때 이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죽음 아니겠는가?

전태일의 죽음은 어떠한가? 물론 예언되어 있던 일도, 사형을 당한 사건도 아니지만 피할수 있었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쓴잔을 받아 마신 그의 희생은 역사에 남았고 많은 이들에게 경종과 감동과 희망과 깨우침을 주었다. 그런 희생이 모여 역사가 계속 발전하면 결국 그가 꿈꾸었던 세상이 올것이라고 믿는다.  근로기준법이 준수되는 그런 세상 말이다. (꿈한 번 소박하다... 아니, 야무진건가?) 

저 야유를 던진 사람이 새카맣게 그을린 시신이 아름답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한건지 생명의 포기가 아름답지 않아서 그랬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악의와 아름다움에 대한 무지는 잘 알겠다.  

그에게는 이런 반문이 가능하다. 숭고한 희생이니 호국영령이니 하는 말 따위는 다 쓰레기라는 말인가? 아름다운 죽음이 없다면 아름다운 희생도 없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가을날 주말에 .. 똥밟았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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