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귀농이 참신한 생각이었고 시골에서의 자연스러운 생활이 무작정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귀농 경험자가 늘고 실패담이 누적되면서 현실을 보라는 충고가 많아졌다. 그래서 시골에 대한 예찬을 할라치면 '뭘 모르는 소리'하는 사람 취급받게 되지 않을까 자기 검증을 먼저 하게 된다. 

그렇긴 하다. 내가 지금 몇마디 지껄이고자 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지나가는 사람의 감상일뿐 살면서 느낀 점은 아니므로 살아본 자의 입장에서 보면 철모르는 소리일수도 있겠다. 그래도 좋게 느낀건 느낀거지... 

벌초를 위해 아버지와 함께 간 아버지 고향. 고향을 떠나서 사신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지나가다 사람만 나타나면 차창을 내리고 아는 척을 하신다. "안녕하세요? 아무개 아들 누굽니다." "아무개 동생 누굽니다"  지나가는 분들도 더러는 단박에 알아보기도 하고 누군지 소개하면 기억을 되살려 알아보시곤 한다. 대단하다. 우연히 마을 중앙에 있는 장터겸 버스정류장겸 광장(이라고 해봐야 동네 놀이터 정도 넓이)을 지나가는데 버스시간표와 함께 걸려있는 전화번호부가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마을 주민 전부의 연락처가 버스정류장에 걸려있는거다. 우와~~~  이런 분들이 서로를 잊을수 있을까? 농사가 전부인 그 분들, 부유한것도 아니고 삐까번쩍한 최신 유행은 몰라도 동네 구석구석 누구네 아들이 왔다갔네, 그 집 손주가 아주 잘 커서 훤칠하네(^^)하는 소식은 인터넷보다 더 빠르게 번지리라.  

시골이 그래서만 좋은 것은 아니다. 도시의 삶은 독립적이면서도 매우 의존적이다. 태풍에 나무 한그루 쓰러지면 수만명이 출근을 못하고 전력이 끊기면 냉장고의 음식이 썩어들어가고 주상복합은 환기조차 불가능하고 사무실에서는 일도 못하고 대혼란이 벌어진다. 그렇게 연결되어있으면서도 낙오되면 지푸라기하나 잡을 틈 없이 혼자 죽을 수 밖에 없는 고위험사회다. 그러나 시골은 그렇지 않다. 불편하긴 하지만 세상에 그리 의존적이지 않다. 그러나 상당히 유기적이다. 마치 하나의 몸처럼 그렇게 느끼고 돌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다.

 

얼마전 11살짜리 아들과 아버지가 다리에서 투신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울컥했었다. 고생한 그 아빠도 그렇지만 11살짜리 아들은 더더욱이나 안타까웠다. 왜 사는지 고민할 나이가 되기도 전에 영문도 모르고 찬 강물속으로 뛰어들었던 그 아이.. 하나님은 뭘하고 계시는건지 원망도 하고. 아무리 어렵고 억울한 사회에 살더라도 40년을 떨어져 있어도 동향을 잊지 않는 시골과 같은 공동체 가운데 살 수 있었더라면 저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저런 절망까지 이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십년 후에 돌아가도 낯설지 않을수 있는 동네가 바로 고향이고 그런 고향이 있는 아버지가 부러워졌다. 나는 태어난 곳은 있으되 고향은 없다. 도시는 고향을 만들게 놔두지 않고 십년마다 판을 바꾸어버려 아무도 알아볼수 없게 화장을 한다. 도시에 사는 우리 세대는 인터넷과 아이폰과 진보를 알지만 고향은 모르는 실향민이다.  

고향이 없다는 것은 절망의 순간에 우리가 강물에 빠져들 용기밖에 남지 않는 이유를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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