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 그저 그런 흔한 사건의 하나인줄만 알고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하도 여기저기서 ㄴㅇ이라는 아이의 이름을 언급하고 사형제 폐지관련 이야기들을 하기에 그만 사건의 상세 정보를 접하고 말았다. 생전 처음 뉴스기사를 읽은 것을 후회할만큼 그 사건은 끔찍했으며 딸아이가 있든 없든 분노가 일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이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평소에 사형제 반대를 소신으로 삼던 나는 좀 더 정리가 필요했다. 과연 죽여도 시원찮을 이 분노와 사형제 폐지 소신과의 모순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가 문제였는데 결론은 사적인 대응과 사회적인 대응은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라면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사형제폐지론자에게 "네 가족이라도 사형을 반대할 것이냐?"라고 질문하는 것은 우문이다. 내 가족이었다면 법은 사실 거추장스러운 그 어떤 것뿐이었을 것이다. 내가 먼저 가해자를 찾아가서 죽일수도 있다.  벌레도 무서워하는 평범한 여자인 아내도 아마 따라나선다고 하지 않을까 싶다.  할수 있다면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감옥까지 따라들어가 죽이지 않을까...    아무튼 이런 사형(私刑)은 사형제(死刑制) 폐지와 약간 차원이 다른 문제다. 따지고보면  생명박탈이란 문제를 같이 공유하기는 하겠으나 사적인 세계에서의 생명존중은 좀 다르게 적용된다고 본다.(마치 법테두리 안에서 조차도 정당방위라는 예외가 있듯)  피해자들에게 저 범죄자는 이미 그리고 계속 실질적인 생명을 박탈할 것이므로 피해자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가해자의 생명박탈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복수에서 오는 절망이라는 감정의 해소 및 앞으로 계속 겪게될 죽음보다 더 큰 고통으로부터 일차적인 해방을 구할수 있다는 그럴만한 유인이 있는 것이다. 단, 모든 일은 양심에 따라 이뤄진다는 가정하에 그렇다는 것이고 단순한 일로 사람을 (예를 들면 공중전화 오래쓴다고)죽여버리는 그런 비양심적인 경우는 별개문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본다면 좀 더 신중해진다. 피해자는 더 잃을 것이 없을 만큼 극한까지 간 상황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떻게 하면 같은 일이 반복이 되지 않게 하느냐가 최대 관건인데 이 점에서 사형이 주는 장점은 입증된 바가 없으므로 사실상 논쟁이  필요한 사항은 아니며 오히려시간낭비에 가깝다.(또한 사형제 폐지론의 근거가 된다.)  범죄자의 재범을 막는 일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 말고는 당장 주장할 구체적인 건더기는 없지만 이러한 기초적인 문제점에 대한 고민도 없이 사형만을 주장하는 것은 현재와 같은 고위험 사회를 그대로 방치하자는 것과 다를바 없다. 사형제를 지지한다거나  저런 놈은 쳐죽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에게도 사형이 자신들의 스트레스 해소용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른 사람을 설득할수 있는 사실이나 근거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범죄자에게 고통을 주는것이 목적이라면 사형아닌 다른 방법이 더 유용할 것이다.)

또,  우리가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다.  맹모삼천지교,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친구 잘 만나야 한다,  부모님은 뭐하는 분이냐?, 부모님은 모두 살아 계시고?  등등.. 질문이 이뤄지는 상황은 각각 다르더라도 질문자의 머리속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확실한 것 한가지는 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흑인인구 비율에 비해 교도소 재소자의 흑인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이야기는 새삼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 이유가 불우한 환경, 가난, 사회적 차별, 편견 때문등이라는 것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재수가 없어서든 본인 탓이든 죄를 지은 자가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가는거지.  그러나 나는 100% 맘 놓고 욕하지는 못하겠다. 내 지식과 판단을 근거로 양심은 (아주 작은 비율일지는 모르지만)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나영이 사건과는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 사람을 극단적으로 몰아부치는 모순적인 사회경제제도, 환경 탓에 자연스럽게 범죄의 길로 흘러들어가는 청소년들에 대해 남의 일인양 아무런 관심도 갖지고 않고 있다가 범죄가 저질러진 연후에야 관심을 갖고 단순하게 죽일놈 취급하는 것은 그냥 그렇게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기를 바라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사형은 아주 간단하고 시원(?)한 처벌방법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강화시켜주는  일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한 아이의 부모로써 제발 나는 사람들이 다른 이야기들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걸 좀 인지해 줬으면 한다.  아는 얼굴이 아닌 처음보는 사람, 낯선 아줌마,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과 절대 아무런 대화도 못하게 하는 교육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고 돕지 않게 되어가고 있고, 결국 가해자 같은 인간을 만들고, 옆에서 내 아이가 죽을 지경에 처해져도 돕지 않는 어른들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처벌이나 감시카메라나 타인을 무조건 의심하는 교육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조금 비약인것 같지만 국영수 잘하는 그래서 돈 잘버는 1등 자식만드는 걸 인성보다 중요시 하는 교육이 주도하는 한국사회가 유지되는 한 이런 끔찍한 뉴스는 계속될것 같다.  

오로지 돈(으로 환산되는 즐거움)이 최고인데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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