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책 이름과도 관련있고)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피카소의 유언'이라고 알려진 글을 먼저 읽어보아야 한다.


"예술이 더 이상 진정한 예술가들의 자양분이 될 수 없었던 때부터, 예술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자신들의 환상이 만들어 내는 온갖 변화와 기분을 위해 사용했다. 지적 야바위꾼들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었으니까.

 대중들은 예술 속에서 더 이상 위안도, 즐거움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세련된 사람들, 부자들,
무위도식자, 인기를 쫓는 사람들은 예술 속에서 기발함과 독창성, 과장과 충격을 추구했다.
나는 내게 떠오른 수많은 익살과 기지로 비평가들을 만족시켰다. 그들이 나의 익살과 기지에 경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나의 익살과 기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오늘날 명성뿐 만아니라 부(富)도 회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치안, 렘브란트와 고야 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

피카소 생전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위 유언은 진위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파카소 본인은 죽기전 십수년동안 진위여부에 대한 논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비공개로 한 이야기라 인정하기에는 체면이 상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한 말은 맞다고 인정한 듯 하다.)

 


피카소의 유언, 그리고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예술의 허위성이다.

하얗고 텅빈 캔버스, 아니면 펜으로 두 줄 달랑 그어진 그림(?)을
전시회장에 걸어놓고 비싼 값을 받거나, 아니면 자동차를 땅에 수직으로 심어놓고 콘크리트를 부은 후에
그옆에서 나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미사여구로 의미를 부여하며 근엄한 표정으로 짓고 있는 예술가,
그 예술가보다도 더 장황하면서도 상상력이 뛰어난 설명을 붙이며 찬사를 늘어 놓는 비평가들을
이 책에서는 사기꾼이라고 감히(?) 부르고 있다.
그런 작품을 거액의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도 비꼬고 있는 책이다.


사실 나도 예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거라고 했다. 그것도 주관적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왜 예술가가 따로 있는가?
내가 내 방식대로 나를 표현하면 그것이 예술 아닌가?
그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매일 같이 하고 있는 것인데 왜 저들은 특별하게 취급받고 있는거지?


물론 남(예술가)들의 독특한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을 바라보면서 반복된 일상으로 침체된 나에게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전문 예술가들에게 감사하는 바지만 어떤 경우에는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위에 말한 텅빈 캔버스, 또는 눕혀놓은 변기 따위들...


저자는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한다.
원숭이 두 마리에게 붓을 주고 그림(?)을 그리게 한다음 유명한 비평가에게 아프리카계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고 했더니  그림에서 힘과 젊음이 느껴지고 어쩌구 저쩌구.. 최고를 만났다는 둥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예술의 자유를(변기를 땅에 심고 물을 주던 말던)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대로 보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익살과 유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웃으라!고
말이다.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겠고, 현대예술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전문적인 용어로 뭐라 할 능력은 없지만
많은 현대예술이 미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충격만을 주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이 책의 유익한 점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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