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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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곂에 희망이 되는 삶을 위하여 >

 

열 여섯 소년의 눈에 비친 학교와 세상

누구나 한번쯤은 일탈을 꿈꾼다. 내가 상상하고 추구했던 이상들이 현실에 묻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 삶에 대한 회의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도피를 갈망하게 된다. 처음에는 현실을 바꾸어 보려하지만 그리 녹록치 않다. 그래서 대부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현실에 안주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일부 이상추구도 현실안주도 선택하지 못한 사람은 도피의 방법으로 자살을 감행하기도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JD 샐린저 작)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제도화된 기성사회로부터 일탈을 꿈꾸는 열 여섯 소년이다. 학점은 대부분 낙제이고, 장차 학업에 열중할 의욕도 전혀 없다. 그리고 특별히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만 네 번째 옮겼을 뿐만 아니라 네 번째 학교에서마저도 퇴학처분을 받은 그는 말 그대로 문제아이다. 펜시라는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홀든은 ‘이 바보들아, 잘들 자거라!’를 외치며 학교 문을 박차고 나선다. 그리고 사흘 간의 학교 밖 세상을 경험한다.


학교를 벗어난 홀든은 시내를 배회하며 능력 없는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듣게 된다. 사람들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박수를 쳐대며 하이에나처럼 그것에 열광한다. 그 연주가 제대로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마치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습은 그가 봤던 연극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극의 1막이 끝나자 자신들이 얼마나 똑똑한가를 보이려는 듯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연극에 관해 지껄여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물론 이 또한 남들에게 자신은 연극 지식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홀든은 이런 솔직하지 못하고 가식적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학교에서 느꼈던 실망감을 다시 느낀다.


그는 다시 방황하며 클럽을 찾는다. 그리고 옆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한 커플을 발견한다. 최고의 명문대라는 예일대에 다니는 듯한 남자와 예쁜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자기 기숙사에서 한 남학생이 자살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손은 여자의 아랫도리를 향하고 있었다. 여자를 만지작거리면서 동시에 자살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명문대생의 모습에서 홀든은 학교 밖에서도 바보들만 득실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물욕만 넘치고 속물 같은 인간들의 근성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심각한 상실감을 느낀다. 세상을 마주하면 할수록 점점 그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며 세상과 단절되어 간다.


홀든의 방황과 그 이유

사실 홀든이 겪었던 학교와 학교 밖 세상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들은 아니다. 이 소설이 발간 된지 반 세기가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 변한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소설보다 현재가 더욱 허위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개개인의 재능을 발굴하고 인성을 키우기 보다는 명문대 진학을 통해 학교의 외적 위상을 높이는데 몰두해 있는 교장이 그렇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의 선생님은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직업 중 한 종류일 뿐이다.


학교 밖 세상은 어떠한가. 급속한 변화와 끝을 알 수 없는 경쟁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홀든이 경험했던 소설 속 사람들과 같이 능력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있는 척, 아는 척 ‘척척박사’가 되어야 한다. 현실에 대한 평가와 비판도 필요하지 않다. 자칫 말을 잘못하면 내부고발자가 되어 영영 배신자로 낙인 찍힐지도 모른다. 절대로 조직 내에서 튀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고, 다수의 의견에 의견을 개진한답시고 “No"를 외쳤다가는 ‘왕따’나 ‘사회 부적응아’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수도 있다. 홀든의 입장에서 보면 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허위로 가득 찬 세상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현재를 살아간다. 비록 그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이 아니더라도.


소설 속 홀든은 퇴학을 감행하며,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갈구한다. 용기도 없고 겁쟁이인 홀든이 이런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연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가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사춘기 소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단순히 일시적으로 방황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수없이 그가 말한 것처럼 그가 한 많은 행동들은 ‘그냥’ 또는 ‘그저 그러고 싶어서 했을 뿐’이었다는 것을 보면 사춘기 소년의 단순한 반항적 행동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홀든의 방황을 내적 심리상태 보다는 그의 주변 환경에서 찾는 것이 더 옳다. 사실 사춘기 시절 방황은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열병을 앓듯 일정시간 방황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홀든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진심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와 같은 기숙사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홀든에게 있어 단순히 기숙사 동료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에 불과했다. 어쩌면 홀든이 말하는 학교 안에서 우글대는 엉터리 같은 놈들 중 한 명 일 수도 있다. 제인 갤러허, 샐리 헤이스 등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녀들은 여자 친구일 뿐 홀든과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은 아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를 이끌어 줄 선생님이 없었다는 점도 홀든의 비관적 성향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퇴학을 앞둔 홀든에게 선생님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장래에 대해 전혀 걱정되지 않는단 말인가?”, “인생은 게임이야. 누구든 규칙을 따라야 해”, “내가 자네를 역사 과목에서 낙제시킨 것은 자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런 조언 속에 진심어린 감정은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그냥 원론적인 원칙만을 강요하는 건조한 몇 마디의 의미없는 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조언은 그에게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감만 더해질 뿐이다. 홀든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사춘기를 혼자서 경험하고 이겨내야 했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마음을 움직이는 조언의 조건

사람이 마음을 움직이는데는 뭔가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의 잘못을 알면서도 주인공 홀든처럼 우리는 겁이 많고,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두려워 막상 그렇게 할 용기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 변화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현실을 벗어나 멀리 떠나려 했던 홀든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앤톨리니 선생님과 동생 피비이다. 앤톨리니 선생님은 자신의 진심어린 조언에 하품을 하는 홀든을 보고도 무례함을 나무라지 않고 허허 웃으며 그를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상투적인 조언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네가 인간 행위에 대해 당황하고 놀라고 염증을 느낀 최초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런 점에서 너는 혼자가 아니야.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네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한 사람은 수없이 많아.”라는 말을 건네며 홀든의 마음을 이해하려 한다. 홀든은 앤톨리니 선생님의 진심어린 조언에서 가슴 따뜻함을 느낀다. 그리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 피비의 말에서도 자신을 깨닫는다. “오빠는 어느 학교든 다 싫어해. 오빠가 싫어하는 것은 백만 가지는 될 거야. 그냥 싫어하고 있어”라는 홀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생 피비의 말을 듣고서, 사회에 의미 없는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이런 아주 직설적인 말을 피비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홀든은 어떠한 마음의 변화도 겪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홀든이 피비에게 가졌던 믿음과 사랑은 비록 직설적인 말이라고 하더라도 진심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평소에 상호간의 교감과 믿음, 그것은 어떤 화려한 수사가 있는 조언보다도 훨씬 영향력이 크다.


내 곁에 희망이 되는 삶을 위하여

인생을 살다보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에 휩싸일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음을 다시 확인시켜 줄 뿐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불안을 스스로 잘 견뎌 내지만, 어떤 사람은 혼자인 것만 같은 소외감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도 그렇다. 세상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방황하지만 그를 지켜줄 사람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다. 세상은 기존 질서만을 강요하며 현실이 이러니 순응하며 따르기를 강요한다. 그 속에서 홀든은 방황하며 길을 잃고 헤맨다. 물론 그런 상황은 아집으로 인해 홀든 스스로 만들어버린 굴레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곁에 그를 진정으로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방황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찬찬히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희망이 되어 주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내가 했던 그 많은 말들이 그들이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한 조언 또는 충고였는지 반성해 본다. 또한 배려라는 가면을 쓴 채 그들에게 상처만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본다. 그리고 홀든이 피비에게 했던 말을 되새기며 다짐한다. 내 곁의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삶을 살자고.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 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 밖에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 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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