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세 권은 대충 읽었고, 나머지 두 권은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인 것 같기도 하다. 소설에 몰입하기 어려운 시기.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을 때는 소설에 몰두하기가 어렵다. 아마 그래서일까? 아니면, 내가 판타지에 흥미를 잃은 것일까?
[눈사태 속에서 부르는 노래]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이기는 하지만, 아예 책 뒤에 대놓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감을 준다고나 할까? 내가 갖는 편견일수도 있지만 아무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이 주는 재난보다는 재난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부모와 가족을 잃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눈 속에 파묻힌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서 열사람이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생각하게 되었다. 전에는 나도 이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구조하는 사람들은 현재 살아있고, 죽을지 안죽을지는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눈 속에 묻힌 사람은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는데 그냥 버려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재난을 당한 사람을 구하는 행위는 나중에 자기 처지가 그렇게 되었을 때 구함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타적 행위가 인간 유전자에 기억된 것이 아닐까 싶다.
[믿음의 엔진]과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는 라디오 방송에서 듣고 읽게 되었는데, 재미있게 보았다. 회의적 사고,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밑줄 긋기에 인상깊은 구절을 기록해 두었다. 이런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데.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가 좀 더 술술 읽히기도 했고, 번역도 매끄러운 것 같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표기가 눈에 거슬려서 [믿음의 엔진]은 읽기가 껄끄러웠을 수도 있다.
맹목적인 믿음과 내 종교만이 유일한 잣대라고 믿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살아가기가 빡빡할 것이고, 특히나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층 인사에 많다면 더욱 힘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