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호감이 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시간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신 편안한 고요가 깃들었다. 가끔 운전석 쪽을 돌아보면 김장우는 눈을 크게 뜨는시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표시를 하곤 했다. 내가 고개를흔들면 그는 수채화 붓으로 긋듯이 씨익 한번 웃고는 다시 전방을주시했다. 나영규의 활짝 웃음이 옆 사람까지도 웃게 만드는 전염성 강한 것이라면 김장우의 수채화 웃음은 여운이 길어 웃음이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나게 만드는 묘한 웃음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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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우

희미한 존재에게로 가는 사랑.
이렇게 말하면 보다 정확해질지도 모르겠다. 강함보다 약함을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진한 향기보다연한 향기를 선호하는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문제는 김장우가 가지고 있는 삶의 화두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향해 직진으로 강한 화살을 쏘지 못한다. 마음으로 사랑이 넘쳐 감당하기 어려우면 한참 후에나 희미한 선하나를 긋는 남자.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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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건지..

"해질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이 저권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 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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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흑흑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당신이 접시를 가져오라고, 그것도 쟁반에 담아오라고 말했을때, 갑자기 무언가가 내 몸을 쇠사슬로 칭칭 동여매는 것 같았어.
정말이야. 참을 수가 없더라구. 안방 벽들이 나를 가두는 감옥 같았고, 달려온 당신은 나를 가두는 간수 같았어. 당신은 몰라. 그 절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헝클어질 것인지 감히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던 어머니는 흐느껴 울며 회개하는 남편이 가여워서 이렇게 위로했다.
"당신도 참 앞치마 두르고 설치는 간수도 있어요?"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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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들

내 마음대로 해석한 김장우의 전화 메시지 때문에 나는 쉽게 하늘색 전화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동전은 넘치도록 많은데, 뒤에서 빨리 끊어달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는데, 조용조용 꽃가지를흔들고 있는 라일락은 저리도 아름다운데, 밤공기 속에 흩어지는이 라일락 향기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은은하기만 한데…………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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