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 일상이 많은 정대.정대.정대...

정적 속에서 너는 정대의 얼굴을 떠올렸다. 연한 하늘색 체육복*바지가 꿈틀거리던 모습을 기억한 순간, 불덩어리가 명치를 막은것같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려고 너는 평소의 정대를 생각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정대를 생각했다. 여태 초등학생같이 키가 안 자란 정대. 그래서 정미누나가 빠듯한 형편에도 우유를 배달시켜 먹이는 정대. 정미 누나와 친남매가 맞나 싶게 못생긴 정대. 단춧구멍 같은 눈에 콧잔등이빈번한 정대. 그런데도 귀염성이 있어서, 그 코를 찡그리며 웃는 모습만으로 누구든 웃겨버리는 정대, 소풍날 장기자랑에선 복어같이뺨을 부풀리며 디스코를 춰서, 무서운 담임까지 폭소를 터뜨리게한정대, 공부보다 돈을 벌고 싶어하는 정대. 누나 때문에 할 수 없이 인문계고 입시 준비를 하는 정대. 누나 몰래 신문 수금 일을 하는 정대, 초겨울부터 볼이 빨갛게 트고 손등에 흉한 사마귀가 돋는정대. 너와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칠 때, 제가 무슨 국가 대표라고스매싱만 하는 정대.
천연스럽게 칠판지우개를 책가방에 담던 정대. 이건 뭣하러 가져가? 우리 누나 줄라고. 너희 누난 이걸 뭐에다 쓰게? 글쎄, 이게자꾸 생각난다. 중학교 다닐 때 공부보다 주변이 더 재미있었다뭐냐?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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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일상과 대비되는 시간들

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지난주에 너는 중간고사를 봤을 거다. 시험 끝의 일요일이니 오늘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 거다.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 다른 세상의 시간이 더이상 실감되지 않는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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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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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빠져나가는 어린 새는, 살았을 땐 몸 어디에 있을까. 찌푸린 저 미간에, 후광처럼 정수리 뒤에, 아니면 심장 어디에 있을까.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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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줍는 노인
식물을 잘 키워내는 사람
오래전의 한 사람을 생각하며 적는 꽃 목록

비가 계속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 그의 머릿속에는 그가 살아왔던 지난 세월의 일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무작정 집을 떠나 처음 도시에 왔던 일, 중국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팔뚝에 화상을 입었던 일, 그를 버리고간 사람들과 그가 버린 사람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일은 집세를 내지 못하고 쫓겨나 몇 년간 묵었던 여인숙에서 그곳을 청소하던 여자를 만나 함께 살았던 것이다. 여자는 오래오래 가난했고, 늘 남은 밥을 얻어먹어 갓 지은 밥을 먹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 그는 밥솥을 샀다. 김이 나는 하얀 밥을 보고 여자가 울었다. 노인은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 장롱다리 밑에 접어 괴어둔 종이를 꺼냈다. 내년에 심을 꽃목록 맨 아래에 여자가 좋아했던 금잔화를 적었고, 다시 접어 원래 자리에 두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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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단절되는 대화 _소희

"희경 씨가 너무 힘들어해."
남편이 무슨 말인가 하는 얼굴로 소희를 흘깃 보더니 말했다.
"아, 등교 거부한다던 거 때문에? 아직도 그런대?"
"웅, 다시 그러나 봐. 얼마나 힘들겠어."
"그거 그냥 토끼 하나 더 사주면 해결될 일 아니야?"
남편이 말했다.
"애당초 토끼는 잘 죽는데 그걸 왜 사줘서 그 사달인지." - P163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안 좋아 보여"

남편이 물어서 소희는 노인의 빈집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 나면 끈질기게 괴롭히는 상념들로부터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하지만 잠시후 소희는 남편에게 토끼 이야기를 했을 때를 기억해냈고,
마음을 바꿨다.
"아니, 아무 일도 없어."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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