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은 눈이 점점 멀어져 이때쯤엔 겨우 서너 발짝 앞에 떨어져 있는 물체만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대신, 그의 눈앞에 오래전 그가 고향마을에서 보았던 구름이 걸린 앞산의 풍경과 햇빛에 반짝이던 강물, 언젠가 그가 아버지를 따라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굴 속에서 발견한 승냥이의 새끼, 또한 오래 전 헤어진 가족의 얼굴과 고향 친지들의 얼굴이 또렷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文은 점점 더 말을 잃어가 하루 종일 사람들 틈에서 일을 하면서도 단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그는 현재로부터 과거로,
현실로부터 꿈으로,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이미 사라진 것으로, 사람들간의 대화와 교통으로부터 혼자만의 고독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있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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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은 금복이 또다시 자신이 닿을 수 없는낯선 세계로 달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달리 멈추게 할 방법이없었다. 그리고 이때쯤 그는 자신의 먼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불행의그림자가 자신에게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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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도 처음에는 춘희와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녀가 말도 못 할뿐더러 사람들이 하는 말을거의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그녀가 여느 사람들보다훨씬 더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구태여 언어가 아니더라도 서로•주고받는 미묘한 느낌과 감정을 통해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되었다. 그것은 文에게도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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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의 남다름을 알아보는 文


며칠 뒤, 춘회가 되는대로 이겨놓은 진흙을 본 文은 그녀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춘희가 비록 말은 못 하지만물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독특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녀에게 벽돌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춘희의 나이 열두 살이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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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옮기는 이들

文에게 소문을 전해준 사람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답 수백 마지기를 노름으로 몽땅 날리고 마누라까지 잡힌 끝에 결국 오갈 데 없는뜨내기 신세가 된 한 나이든 인부였다. 그는 한껏 조심스럽고 완곡하게, 언제나 소문과 함께 장식처럼 따라다니는 변명들을 장황하게 섞어. 예컨대, 자신은 결코 입이 싼 사람이 아니며, 본시 떠도는 소문을믿지도 않을뿐더러, 쓸데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싫어하며, 그런 짓은 앉아서 오줌누는 계집이라면 모를까 불알 달린사내로선 차마 할 짓이 못 된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못 들은 걸로 하고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당사자를 위하는 것이냐, 아니면 들은 대로 정직하게 알려주는 게 올바른 것이냐 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하다. 그래도 혹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소문이 사실일까 염려되어 만일그렇다면 혼자만 모르고 있는 文이 사람들로부터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다시금 얘기하지만 자신은 그저 오로지 文을 생각하는마음에 털어놓기는 털어놓되, 소문이란 건 어디까지나 믿을 게 못되는데다 나중에 알고 보면 결국 뜬소문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 그럴땐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게 상책이니, 구태여 진실을 캐고자 하면 못 캘 것도 없지만, 꼭 그렇게 해서 사달을 일으켸야만 속이 풀리는 건 아니더라도, 이왕지사 말이 나온 김에 한번 확인을 하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한데, 한편 생각하면 그저 술 한잔 먹고 잊어버리는 게 현명한 처신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게 아닌 게 아니냐며, 병을 주는 동시에 약을 주는 요사스런 화법으로 그 수상한 소문을 전했을 때, 文은 그 자리에서 소문을 전한 인부를 당장에 해고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말을 전한 인부 앞에서 욕을 하며 세 번 침을 뱉은 후 흐르는 계곡 물에 귀를 씻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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