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 책세상 니체전집 8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미기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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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진리 비판은 형이상학 비판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진리는 본래 명제의 참 거짓에 대한 언명이지만, ‘좋은 것 혹은 올바른 것’이라는 윤리적 의미로 해석되어 오기도 했다(‘전통적 진리’). 한편, 니체에게서는 진리는, ‘참‧거짓’이라는 문장의 진위판단이나 ‘좋은 것‧올바른 것’이라는 가치 판단이 아니라, ‘진리를 찾는 과정 자체’이다(‘니체의 진리’에서 ‘진리를 찾는 과정’에 대한 강조는, 기존의 가치를 해체하고 새로운 위계질서를 세우는 도정(道程)에 중점을 두어 진리 개념을 살핀 결과이다. 이때,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기존 가치의 해체 뿐 아니라, 새로운 위계를 세우는 일 역시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진리를 찾는 과정’이라는 표현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기존 진리의 해체와 새로운 진리의 생성이 반복됨’이다. 즉, 새로 세워진 위계 역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 가능하며, 기존의 가치가 무너진 자리에 또 다른 진리의 생성이 도래한다. 니체에게는 진리의 생성만이 중요한 것도 해체만이 중요한 것도 아니요, 그 둘 모두가 중요한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진리에서는 진리 자체의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만, 과정으로서의 진리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 그 자체라기보다 진리를 찾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이 둘 중 비판 대상이 되는 진리는 전자의 진리, 즉, ‘좋은 것 혹은 올바른 것’에 더불어 ‘불변하다’고 믿어지는 진리이다.
니체가 비판하는 ①좋은 것 혹은 올바른 것으로서의 진리와 ②불변하다고 믿어지는 진리는 각각 다음과 같은 ‘선행하는 믿음’를 가진다. 이 선행 믿음을 살핌으로써 우리는 니체의 진리 비판이 형이상학 비판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①진리가 ‘좋은 것 혹은 올바른 것’이라는 생각은 ‘목적론’에 대한 믿음과 연결된다. 이때, 목적론이란 세계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에 따라 “인류의 좁은 길이 외견상 모두 뒤틀려 보임에도 불구하고, 신이 세계의 운명 전반을 관장하고 결국 인류를 훌륭하게 인도해나갈 것이라는(1권 25절)”믿음이다. 그렇다면, 전통 형이상학이 가진 합목적성이 니체에게 문제가 되는 까닭은, 합목적성 아래에서 인간은 ‘참된 선험적 목적’을 설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합목적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참된 무엇‧참된 진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자유정신에 위배 된다.
다음으로, ②‘진리의 불변성’에 대한 믿음은 형이상학의 잘못된 믿음 중에서도 ‘불변하는 실체’에 대한 믿음과 연결된다. 니체는 “무제약적 실체와 그와 유사한 사물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로 모든 유기체의 근원적인 그리고 낡은 오류”라고 비판한다(1권 18절).
위의 두 단락을 통하여 살펴볼 때, 니체가 수행한 진리에 대한 비판은 형이상학의 오류를 토양으로 자라난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니체가 전통적인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형이상학이 소유했던 진리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는, 두 가지 진리 비판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겠다. 니체의 진리 비판은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먼저, ‘사물의 불변성’에 대한 믿음과 관련되는 진리 비판은 다음과 같다. 철학자들은 ‘반투명한 자, 불분명한 자, 노력하는 자, 예감하는 자’들을 혐오하면서 ‘개념의 명료성’을 추구하는 부류이다.(2절) 철학자들은 ‘개념의 명료화(2절)’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고 믿는 진리가 ‘삶의 최고의 가치(1절)’라고 믿으며, 도덕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가치 판단을 절대화 하거나(5절), 한 시대에서 가치 있게 여겨진 생각을 진리로 믿는 오류를 범하는 자들이다(5절). 그들은 절대화될 수 없는 것을 절대화함으로써 진리를 부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기존의 진리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향유하는 철학자들에 대한 니체의 비판이다.
다음으로 ‘합목적성’과 관련된 진리 비판을 살피자. 합목적성과 관련된 진리 비판은 철학자들의 ‘인격화하는 습관’과 관련된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진리에 대한 신념을 자연에도 적용하려하는 오류를 범한다. 자연은 본래 무목적적인 것인데, 인간은 자연에도 인격성을 부여하려한다. 따라서 “자연의 필연성은 이 ‘합법칙성’이라는 표현을 통해 좀 더 인간적인 것(9절)”으로 탈바꿈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연이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연의 합목적성으로부터 자연의 도덕성을 끌어내는 우를 범하게 된다.
더하여, 니체는 인간이 자연을 인격화시킴을 비판하는데서 나아가 자연안의 사물들 그리고 사상을 인격화시킴 역시도 비판한다(26절).

‘사물’에 대한 인격화 비판 → “인간에게 사물을 비인격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 이는 사물 속에서 그 사물만을 보고 인격을 보지 않는 것은 어렵다는 의미이다.(26절)”

‘사상’에 대한 인격화 비판 → “사상과 관련된 경우조차도 그리고 그것이 추상적인 사상일지라도, 인간은 마치 그 사상이 자신들이 그것과 싸우고 관여하고 돌봐주며 키워야만 하는 개인들이기나 한 것처럼 행동한다.(26절)”

그렇다면, 사물과 사상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격화는 왜 문제되는가? 니체의 이러한 비판의 핵심은 ‘인간이 모든 것을 인격화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적인 습관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 오히려 니체의 인격화 비판은 ‘진리’마저도 인격화 습관에서 발생한다는 점에 있다. 즉, 진리는 그 자체로 선하고 합목적적이며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니체에게 있어서 진리는 인간이 사물 사상 혹은 자연에 대해 자행한 ‘인격화의 결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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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과 논문 이학문선 3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이기상.신상희.박찬국 옮김 / 이학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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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대한 물음」에서 살필 수 있듯이 기술은 그저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탈은폐의 한 방식이다(18쪽). ‘테크네’라고 불린 고대의 기술은 ‘포이에시스’로서, ‘밖으로 끌어내어 앞에 내어놓음’이다. 그러나 현대의 기술은 포이에시스가 아닌 ‘도발적 요청’이다.
라인강이라는 존재자는 포이에시스의 한 방식인 예술을 통해 드러날 경우 ‘예술 작품’에서 노래하고 있는 “라인강”이 되고, 도발적 요청을 통해 드러날 경우 ‘전력 작품’으로 변조되어 나타난다(22쪽). 전자의 경우 라인강의 본성은 손상되지 않으나 후자의 경우 라인강은 발전소에 맞추어 변화되었다. [그러나 해당 예시는 예술과 기술에 대한 비교이기 때문에] 한 가지 예시를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농부의 일은 예전에는 “농토에 무엇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뿌려 싹이 돋아나는 것을 그 생장력에 내맡기고 그것이 잘 자라도록 보호”하는 것이었던 반면, 오늘날 농토경작은 “기계화된 식품공업”일 뿐이다(21쪽). 전자에서는 농토의 본성이 손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간에 의해 ‘보호’되고 있으나, 후자에서 농토는 도발적으로 닦아세워진다. 정리하면, 포이에시스로 기술은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에 의해 존재자의 본성이 보호되고 보존되지만, 도발적 요청으로서의 기술에서 존재자의 본성은 변질된다.
즉, 기술의 적용을 받는 존재자는 어떤 기술의 작용을 받느냐에 따라서 그 본성이 보존될 수도, 그 본성이 손상될 수도 있다. 문제는 단연 존재자의 본성을 손상시키는 기술에 있다. 도발적 요청으로서의 기술은 존재자의 본성을 발휘 시키는 게 아니라 “다른 어떤 요청에 의해 대비 상태”에 있게 만듦으로써 존재자의 본성을 밝히지 못하고 ‘부품’으로 머물게 한다(23쪽). 부품으로 존재자가 드러났을 때 우리는 존재자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다. 더 문제시 되는 것은 기술이 인간에 의해 수행될 때, 수행의 주체로 있는 인간마저 ‘부품’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발적 요청인 닦달 역시도 탈은폐의 ‘역운’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닦달을 탈은폐의 한 역운으로 경험(35쪽)”하게 된다. 이때 탈은폐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현실적인 것을 부품으로 주문요청 하도록 인간을 닦아세우는 그 도발적 요청 역시 드러나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 그러나 이때 받아들임이 ‘존재자의 부품화’에 대한 방치일리는 없다. 닦달의 역운을 받아들임은 그것의 닦달이 위험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 자각을 통해 인간은 기술과 자유로운 관계를 맺는다(9쪽). 하이데거는 “위험이 있는 곳에는 그러나 / 구원의 힘도 함께 자라네(47쪽)”라는 휠덜린의 시구를 인용한다. 하이데거는 닦달 그 자체가 ‘최고의 위험(36쪽)’인 역운이기에 그 자체로 구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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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관상학 그 긴 그림자 문명탐험 8
설혜심 지음 / 한길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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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역사학자들의스펙트럼이넓어졌다/미시사의유행과관련있는듯한데과거처럼정치사만다루지않는다/애완동물이나온천혹은도참서나민간속설까지학문적으로정치하게다루고있다/이책은서양의관상학수상학골상학등을역자적상황과관련지어해석하고있는데관상학강의에많은도움이된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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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답을 알고 있다 - DNA에 숨겨진 인간 재능의 기원
최창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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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형과남방형으로크게얼굴구조를나누고그에맞는특질을유명인들에게적용한과학책이다/관상학다강의하거나공부하는사람이라면과학적근거를갖춘연구서이기에필독서라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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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사전 - 미신이라는 창을 통해서 보는 인간사의 재미있는 이면
발터 게를라흐 지음, 정명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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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만든책이다/겸손하게미신이라고했지만민간에떠도는속설들을담았다/타로상징에대하여다양하게해석하는데도움이된다/타로에나오는동물식물들을많이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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